지난 2일 용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정금 선수. ⓒ에이블뉴스

‘마부작침(磨斧作針)’.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사자성어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노력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 사람이 있다.

바로 한 가정의 살림꾼이면서 한 아들의 어머니인 한국 휠체어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 강정금(여·48·지체1급·경기도 용인시)씨다.

강정금 선수는 2남 4녀 중 넷째 딸로 태어났으며, 화가의 꿈을 갖고 있던 소녀였다.

제주도 출신인 그는 육지로 나와 22살 어린 나이에 장애를 가진 남편과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장애인 부부가 살아가기에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1997년 터진 IMF로 굴지에 대기업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고, 그의 집안에도 여파를 피할 순 없었다.

남편이 하던 렌터카 사업은 무너졌고 빚 독촉이 시작됐다.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내몰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손을 댄 사채는 그의 숨통을 더욱 조였다.

희망의 빛이 안 보이는 나날들 속에서 남편은 세상을 등지려 집을 나가 행방불명됐고, 그는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하면서도 홀로 경제활동을 하며 아들을 보살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을 찾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있던 그는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강정금 선수가 상대편 코트로 셔틀콕을 넘기고 있다. ⓒ강정금

지난 1999년. 운동은 우연하게 그에게 다가왔다. 지역의 복지관을 다니던 그에게 휠체어 마라톤 대회에 한번 출전해보라는 권유가 들어온 것.

“저에게는 생활의 여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속사정을 말할 친구가 있던 것도 아니었죠. 일상의 탈출구가 필요했는데 운동을 하면 될 것 같았어요”

평소 땀을 흘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서울국제휠체어마라톤 대회에 참가했고 15위를 기록했다. 첫 출전 치고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특유의 ‘승부욕’ 때문에 휠체어마라톤 대회에 거듭해 도전하게 됐다.

그는 집착을 보일정도로 휠체어마라톤에 매진했다. 일주일에 4일은 꼬박 꼬박 2~3시간씩 운동을 반드시 했다.

퇴근을 하면 피곤해 쉬고 싶은 마음이 생길 법 한데, 지친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한 것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담금질했고, 성적은 수직 상승했다. 15위에서 시작한 성적은 어느덧 2위까지 올랐다. 휠체어마라톤에 발을 들인지 7년만이다.

“저는 한 분야에 몰입하면 끝을 보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휠체어마라톤 분야에서도 끝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운동을 통해 한번 성취감을 맛본 그는 심신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소심했던 성격은 적극적이고 쾌활하게 변했고, 근력이 생기는 등 건강도 좋아졌다.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를 내던 가족들도 든든한 ‘응원군’으로 바뀌었다. 회사 동료들도 그가 메달을 따면 현수막을 걸고 축하를 해줬다고.

“처음에는 남편이 반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수상도 많이 하고 그러니까 응원을 하더라고요. 저한테는 가족이 많은 힘이 됩니다”

지난 2007년. 휠체어마라톤 종목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낸 그는 휠체어 배드민턴으로 눈길을 돌렸다.

휠체어 배드민턴을 치기 위해 퇴근 후 1시간 30분 거리인 서울로 오고갔다. 그가 살고 있는 용인에는 휠체어 배드민턴을 칠 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력이 무기인 그는 배드민턴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지역 배드민턴대회, 전국장애인체전 등 각종 경기에 출전해 상위 입상을 한 것.

그리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던 그는 지난해 11월 열린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하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경기도에서는 남녀 통틀어 최초다.

운명의 장난일까? 그는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일과 운동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난관에 부딪혔다.

국가대표가 돼 오는 9월 8일부터 13일까지 영국에서 열리는 세계장애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이천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서 60일 간 합숙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회사에서는 사정을 받아주기 힘들다고 한 것이다.

그가 선택한 것은 국가대표였다.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간다고 해서 경제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나이를 보면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아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

“제가 직장을 20여년간 다녔어요. 제가 없으면 일이 안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죠. 회사에서도 그만두지 말라고 많이 잡았어요.”

직장을 정리하니 그에게는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지도자가 돼 용인 지역에서 많은 휠체어 배드민턴 선수들을 배출, 지역 장애인체육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 경제적 부담이 되는 장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휠체어 배드민턴 장비는 고가에요. 휠체어 하나에 400만원 정도가 하죠. 운동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하는 실정이에요. 후원단체들이 나서서 지원을 해준다면 훨신 운동하기 좋은 환경으로 변할 거예요.”

현재 이천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서 세계대회 준비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가 제2의 꿈을 부침 없이 이뤄나가길 기원한다.

지난 2013년 열린 제3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강정금 선수(좌)가 배드민턴 2위를 한 후 기념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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