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별 화가. ⓒ박찬별

맹학교 미술시간

박찬별은 무홍채증으로 녹내장, 백내장, 안구진탕(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빠르게 움직이는 상태)이있다. 그녀는 빛이 강한 낮에는 사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여느 아이들처럼 일반학교에 입학하여 미술학원도 다녔다. 초등학교 1, 2학년은 철이 없던 시절이라서 그런 대로 잘 보낼 수 있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저시력으로 수업을 받을 수 없어서 방치되어 점점 소외되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한빛맹학교로 전학을 갔다. 특수학교 미술 수업을 받으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 미술 수업은 시각장애인 미술교육 사업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눈’ 엄정순 선생님이 진행하였다.

어린 찬별은 미술 시간이 기다려졌다. 커다란 테이블 2개에 한쪽은 미세한 흙이 쌓여 있어서 흙을 갖고 놀면서 만든 것이 작품이 되었다. 다른 한쪽 테이블에는 다양한 미술 재료들이 있어서 그것으로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일종의 물감놀이였지만 손으로 느껴지는 물감의 촉감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주었다.

학창 시절은 미술 수업이 큰 즐거움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진로를 정해야 했는데 시각장애 학생의 진로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진학과 취업 두 갈래 길에서 진학을 선택한다 하여도 선택할 수 있는 학과는 사회복지나 특수교육 전공이 대부분이었다.

작업 모습. ⓒ박찬별

미대 진학하기

찬별은 진로상담을 받으면서 미술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맹학교 학생으로 음대에 가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미대에 진학한 사례는 없어서 적지 않게 당황을 한 상담선생님은 찬별의 뜻을 미술 수업을 진행했던 ‘우리들의 눈’ 엄정순 선생님과 의논을 하였다.

엄정순 선생님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저희가 할게요.’라고 대답했다. 엄 선생님은 화가이자 디렉터로 현재는‘우리들의 눈’대표로 우리나라에 시각장애인 미술교육을 처음 시작한 분이다.

엄 선생님은 미술 수업을 하며 ‘너희들 꿈이 뭐니?’라고 물었을 때 순간 흘렀던 침묵에 가슴이 아팠다. 꿈이란 것을 생각해 보지 못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시각장애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로상담교사 얘기를 듣고 엄 선생님이 찬별이와 미대 진학에 대한 상담을 했을 때 찬별이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때 엄 선생님이 찬별이한테 한 얘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찬별아, 네 눈을 믿어.”

시각장애는 사회적으로 만든 장애이지 당사자들은 자신의 지각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시각장애 때문에 미술을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술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인데 장애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 선생님과 함께 박찬별 미대 진학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다. 그래도 대학 입시를 위해 고3 4월부터 입시학원에 다녔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시각장애 때문에 할 수 없는 실기가 있었다. 바로 정밀 묘사였다. 주위에서는 시각장애인이 무슨 미대에 진학을 하느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찬별이도 그런 소리를 들으면 의기소침해졌지만 그럴 때마다 엄 선생님이 용기를 주었다. 부모님도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가보자고 지원해 주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있는 대학을 찾아 대구까지 가게 되었다. 대구대학교 현대미술학과 입학시험 면접에서 면접관들은 시각장애로 인한 수업의 어려움보다는 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가를 걱정하였다.

맹학교는 학생들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육 과정을 함께하기 때문에 다양한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기에 찬별은 대학에 가면 비장애인 친구들과 교류하고 싶다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하였다.

전시회에서. ⓒ박찬별

화가의 길로

주위의 걱정과 걱정을 넘어선 비난을 이겨 내고 찬별은 시각장애인 최초로 미대에 도전을 했고 결국 2015년 대구대 현대미술학과에 입학했다. 찬별은 미대 수업의 대부분을 이루는 실기를 즐겼다. 그동안은 안 보이는 상태에서 그림을 발견하게 되고 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면 대학 생활은 무엇을 그림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찬별이 시각장애 속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해하는데, 찬별은 아주 작은 캔버스를 왼쪽으로 들어 눈에 바싹 대고 오른쪽 손에는 붓을 들고 캔버스를 거의 얼굴에 대고 그림을 그린다. 조금 큰 작품을 그릴 때는 허리를 잔뜩 굽혀서 캔버스에 얼굴을 갖다 대고 작업을 한다.

찬별은 작업노트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세모꼴의 좁은 시야를 가졌다. 아마 5센티 정도 아닐까? 어렸을 적부터 나의 취미는 쉽게 보지 못하는 달과 별들을 사진에 담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밤하늘의 빛은 형태가 없고 특정한 색깔이 뚜렷하게 있지 않지만 자연의 색을 품고 있다.

산이나 건물 뒤로 넘어가는 은은한 빛과 수많은 색들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남아 편히 볼 수 있고 형태가 없기 때문에 무엇인지 맞추지 않고 보이는 대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형태를 세밀하게 그리는 것은 내겐 의미가 없었다. 전체적으론 뚜렷이 보이지 않아도 나눠지고 번져 보이는 어지러운 일상 안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낀, 그 대략적인 생김새·형 태만을 나타내 힌트로 이것이 언제 어느 시간 때의 풍경인지 기억하여 상기해 낼 수 있는 즐거움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주로 좁은 시야를 작은 캔버스를 손에 쥐고 그리는데 사진과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 사포로 갈아 매끈하게 하고 약간의 스푸마토 기법과 붓 터치를 다르게 하여 질감 느낌도 살려 보고 싶었다. 대학에서 유화를 배우면서 색의 깊이감이 나의 밤하늘 어둠과 빛을 더 돋보이게 해 주는 유화의 매력에 빠졌었지만 약품으로 시력에 더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아크릴로 유화를 흉내 내고 있다.

나를 표현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수업에서부터 나의 다름을 특별한 강점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굳혀진 그림의 콘셉트다. 또 요즘은 색과 함께 질감 표현의 다양성을 가지고 새로운 방향으로 시도 중이다.’

찬별은 지나간 흔적을 찾아가며 그림을 그린다고 설명했다. 그림에 유독 하늘이 많은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항상 하늘을 좋아했어요. 저에게 어제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은 달라요. 구름 위치도 모양도 색도 다르죠. 그날의 일기처럼 항상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둬요. 제 그림에 밤 풍경이 많은 이유가 있어요. 제가 선천적으로 홍채가 없어서 빛이 한 번에 들어오면 앞이 밝기만 하고 보이지 않아요. 저녁때는 은은하게 잘 보이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별이나 달 보는 걸 좋아했어요.”

남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찬별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꿈을 향하여

4년 후 박찬별은 졸업을 하였다. 졸업 후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가 되어 작업실이 생기자 작품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앙대 학생동아리에서 실시한 시각장애예술인을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시각장애인들은 무궁무진한 창의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편견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걸 도전하지 못해요. 그래서 기회를 주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들의 눈에서 실시하는 맹학교 학생들이 코끼리를 직접 만지고 이를 작품으로 만들 수 있게 돕는 ‘코끼리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눈을 너무 혹사하여 2020년 각막이식 수술을 하였다. 의사는 눈을 피곤하지 않게 하라고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다. 요즘은 뭐하냐고 물으면 취준생이라고 하지만 찬별은 그림을 평생 그리고 싶다.

현재 부모님과 떨어져 자립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작업실이 따로 없어서 집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핸드폰을 이용해서 단순한 선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핸드폰에서는 빛이 나오기 때문에 눈을 바싹 갖다 대지 않아도 된다.

박찬별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며 자신의 꿈을 얼마든지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1995년생 스물일곱 살의 젊은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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