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남제. ⓒ김남제

김남제와 스키

김남제는 여섯 살 때부터 스키를 탔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스키 선수로 활동하며 1980년부터 1985년까지는 국가대표 선수였다. 학사장교로 입대하여 특전여단 중위로 전역하였다. 군 복무를 특전사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으로 군 생활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마치고 무주리조트 스포츠운영팀에 입사하여 스키 강습 등 열정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1992년 어린이날을 앞두고 무주리조트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준비하였는데 큰행사여서 기획사와 함께 진행을 하였다.

5월 4일 총리허설을 하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가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이륙을 하면 스키 리프트를 중지시켜야 하는데 이상하게 스키 리프트가 작동을 하고 있었다.‘아, 왜 저러지?’라고 생각한 순간 패러글라이더 줄이 리프트에 살짝 스친 후 빠른 속도로 추락하였다. 줄이 끊어진 것이다. 김남제에게 하반신마비 장애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특전사에 복무하며 낙하산을 수없이 탔던 그였건만 속수무책이었다.

한국 장애인스키의 전설

장애를 갖게 된 후 그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장애인스키를 접하며 1998년 한국선수로는 최초로 좌식스키로 나가노동계패럴림픽에 출전했다. 비록 앉아서 타는 좌식스키였지만 설원으로 돌아온 것이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이후 2002년 솔트레이크동계패럴림픽과 2006년 토리노동계패럴림픽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다. 김남제는 2002년 솔트레이크동계패럴림픽에서 감독으로서 한상민 선수를 장애인은 물론 일반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로 설상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게 하는 역사를 썼다. 그것은 동계올림픽에 약체였던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14년 소치동계패럴림픽 폐막식 공연을 하며 4년 후 대한민국에서 개최되는 2018평창대회를 홍보하는 역할을 하였다.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감독을 끝으로 체육계의 활동은 마무리를 하였다.

20년 동안 장애인동계스포츠에서 스키 선수로 시작하여 코치로 감독으로 독보적인 활약을 하며 한국 장애인 스키의 전설이 되었다.

휠체어댄스스포츠로 춤을 추다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김남제는 휠체어댄스스포츠에 도전하였다. 휠체어댄스스포츠를 처음 접한 것은 2005년이었다. 휠체어댄스스포츠는 콤비 라틴 5개종목이 있는데 보통 선수들이 단종 종목에 출전하지만 그는 2010년 일본에서 개최된 대회에 첫 출전하며 5개 종목에서 연기를 하여 강렬한 눈도장을 찍었다.

당시 일본 스즈키 선수가 일인자로 독식하고 있었고 한국 심판도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도 스즈키 선수를 꺾고 우승을 하여 이변을 일으켰다.

2012년 파트너 김나연 선수를 만나면서 김남제는 휠체어댄스스포츠의 최강자로서 떠올랐다. 아시아대회에서 1등을, 2013년 러시아세계선수권대회는 결승에 올라 아시아 최초로 프리 라틴종목에서 세계 3위, 콤비 라틴 5개 종목에서 세계 4위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휠체어댄스스포츠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스키를 한 것이 휠체어댄스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스키의 스윙, 턴 등의 리듬이 댄스의 리듬과 같았고, 스키의 각잡기도 휠체어로 춤을 출 때 필수적인 기술이다.

잠자고 있던 꿈을 깨우고

김남제는 1962년 누이가 4명이 있는 집안의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 물론 남동생이 있지만 어머니는 맏아들 김남제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래서 아들이 사고로 휠체어를 사용하게 된 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새벽 기도를 다니셨다.

그의 중학교 때 꿈은 가수였다. 노래를 아주 폼나게 불러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미 가수였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며 긴장을 풀었다. 그런데 사고 후 노래를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다 장애인스키를 시작하면서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되었다. 2009년 kbs 라디오 <이무송·임수민의 희망가요>에서 주장원, 월장원을 거쳐 kbs홀에서 열린 연말 결선까지 올랐었다.

그 후 군포시장애인가요제 대상, 군포시시민가요제 최우수상, 평화통일가요제 금상 등 가요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는 주로 트로트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가수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배은주 대표를 만나면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실현하였다. 킨텍스 공연에서 휠체어댄스를 해 달라는 섭외를 받고 배은주 대표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 자신이 가수였다. 드디어 가수의 길을 안내해 줄 은인을 만난 것이다.

김남제는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무대에 서게 되었다.

무대 공연 모습들. ⓒ김남제

가수 김남제로 무대에 서다

2019년 장애인스타 발굴 프로젝트 이음가요제에 출전하여 금상을 수상한 김남제는 부상으로 앨범 제작 기회를 얻어 첫 번째 디지털 싱글음반 <데스페라도>를 만들게 되었다. 1년여 동안 보컬트레이닝은 물론 가수 데뷔를 준비했다.

<데스페라도>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애정어린 가사로 황야의 무법자처럼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멈추지 않고 돌진한다는 남자의 박력과 사랑의 정열을 담은 곡이다. 정열적인 삼바풍의 트로트곡 <데스페라도>는 자기도 모르게 끌리는 강한 멜로디와 누구나 들으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성을 가진 중장년층을 겨냥한 노래이다.

김남제가 <데스페라도>를 부를 때 백댄서로 춤을 추는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부인이다. 밸리댄스를 하는 부인을 만난 것은 6년 전인데 결혼을 한 지는 2년밖에 되지 않았다. 김남제는 부인과 콜라보로 노래와 춤의 멋진 공연을 관객에게 선물하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 열심히 준비한다.

이제 그는 가수로 무대에 섰을 때 가장 행복하다. 사람들은 운동, 춤, 노래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좋으냐고 묻지만 그는 다 좋다. 그때 그때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한 가지 소망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곳이면 어디든 한걸음에 달려가 노래하겠다는 것이다.

김남제

#주요 경력

2013년 군포시 거리로 나온 예술제/찾아가는 콘서트(군포시)/일요예술축제(군포시) 2013~2015년 드림콘서트(대림대) 2014년 거리로 나온 예술(군포시)/우리 마을 찾아가는 예술무대(군포시)/ 희망콘서트(광주시)/힐링&토크콘서트(서울시) 2015년 코리아오픈댄스 페스티벌(더K호텔)/찾아가는 드림콘서트(노원구청).

2016년 일요예술 무대/거리로 나온 예술무대/장애인 예술제 축하공연/희망나눔콘서트(충남도청), 2017~2019년 충남지역 초중고 찾아가는 장애인식개선 공연/서울지역 초중고 찾아가는 드림콘서트 공연 정선 장애인식개선 콘서트 “The healing”, 2018년 충남지역 초중고 찾아가는 장애인식개선 희망콘서트 공연/이음바자회 공연/댄스 1분 59초를 춤추라.

2019년 해피콘서트 유진박과 함께/장애인식개선 콘서트 네손가락 이희아와 함께 이음 Happy Festival 콘서트/찾아가는 문화 활동 행복콘서트(고양시)/희망나눔 페스티벌(충남도청) 두정고등학교 찾아가는 드림콘서트 “The healing”/한마음 축제/성악가 최승원과 함께 콘서트 장애인문화예술인축제/테라스 콘서트/군포시장애인예술축제/당신이 있기에, 주보라 창립 30주년 기념 콘서트 김남제 쇼/크리스마스 행복동행 콘서트/사랑샘 송년음악회(부산), 2020년 트로트파티(이음센터 테라스 무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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