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여성장애인연대 문애준 대표. ⓒ전남여성장애인연대

Q. 여성장애인 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나는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성장했다. 결혼을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가 출산 후 아기를 키우기 위해 친정집이 있는 목포로 다시 내려왔다.

6남매의 셋째로 태어난 나는 세 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되었는데 자매가 네 명이나 되어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특히 여동생이 가깝게 살고 있어 아이를 키우면서 큰 힘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집에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외공부)을 했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 장애인 모임에 나가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딸아이를 낳고 나니 갑자기 두려움이 생겼다. 우리 아이가 엄마의 장애 때문에 받을 상처가 너무나 걱정이 되어 불안한 마음도 달래고, 정보도 얻을 겸 해서 여성장애인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 가 보니 나보다 더 장애가 심한 여성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을 열심히 꾸려가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2002년 지역 여성장애인 자조모임 ‘소중한 사람들의 모임’의 구성원으로 2004년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지부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2005년 1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전남지부로 창립).

Q.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여성장애인 리더로 성장.

나는 단체 활동을 실무부터 시작했다. 2007년 전남여성장애인연대 사무국장으로 실무를 익혔다. 그리고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나 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 해늘 같은 전남여성장애인연대 부설 기관이 생기면 그곳 책임자로 가서 여성장애인들과 직접 소통하였다. 그리고 딱 10년 만인 2017년 전남여성장애인연대 대표를 맡았고 지난해 연임되어 다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2017년 2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로 선출되어 활동 영역이 전남에서 전국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더 많이 뛰어야 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여성장애인이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장애인계뿐만 아니라 여성계, 시민사회와의 네트워크 활동에도 부지런히 참여하고 있다.

Q.그런 활동을 하면서 일어난 변화는.

나는 내가 내성적이라고 생각했다. 사회활동을 한 적이 없어서 사람을 사귈 기회가 없었다. 결혼도 양가 부모님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결혼 후에는 남편이 장손이라 장손 며느리로서 할일에 충실하며 살았다. 매우 순종적으로. 그런데 여성장애인 운동을 하면서 내가 모르고 있었던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목표를 세우면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긍정적으로 접근하여 해결하였다. 처음엔 나의 사회활동을 남편이 반대하였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딸은 언니네 집에 맡겨 놓고 설거지는 잔뜩 쌓여 있고… 집안꼴이 엉망이니 싫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포기 하지 않았다. 남편을 설득했다. 우리 딸이 엄마 때문에 위축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남편과 동갑이라서 그런지 친구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남편의 지지가 가장 크다.

중앙장애인의료센터 장애인건강보건위원회에서. ⓒ전남여성장애인연대

Q. 카톡에 있는 사진을 보니 딸이 너무 예쁘다. 남편을 설득시킨 ‘딸이 엄마 때문에 위축되지 않는 사회’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가.

사회 변화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딸에게는 변화를 일으켰다.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는‘엄마 학교 오지마.’라고 했다. 만약 내가 여성장애인운동가가 아니었다면 그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가슴앓이를 했을 텐데 나는 그 말에 오히려 도전을 받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필요한 사명이란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딸이 5학년이 되자 딸이 오히려 나에게 요청했다. ‘엄마, 선생님이 엄마한테 인권강의를 부탁드리고 싶대.’그 후 나는 딸아이 학교에서 인권강의를 비롯해 성폭력 예방 강의나 상담 등 성장하는 학생들을 위한 자원 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Q. 딸이 아주 예쁘게 성장하였던데.

우리 딸은 2000년생이다.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21살 대학교 2학년이다. 경영학을 전공하는데 요즘 아이답게 춤도 잘 추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엄마를 닮았는지 나서기를 잘해 리더십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우리딸이 ‘엄마, 어디야?’, ‘엄마 언제 들어와?’ 이런 카톡을 보내다가 ‘우린 언제 같이 밥먹어?’라고 했을 때 일하는 엄마로서 가장 미안했다.

내가 하는 일이 경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가정에 도움도 되지 않는 워킹맘이라 엄마로서 아내로서 미안할 때가 많다.

회의 및 발표 사진 대표. ⓒ전남여성장애인연대

Q.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하셨던데.

장애인복지단체에서 일하다 보니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모사업을 통해 예산을 확보해야 해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내 주요 업무였다. 사회복지에 대한 이론을 모르면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06년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사회복지학과에서 공부를 하며 여성장애인 문제를 좀 더 전문적이고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저런 회의가 많아서 참석을 하다 보니 전국에 있는 교수님들을 많이 뵙게 되는데 대구대학교 조한진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장애학에 매료되어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데 목포에서 대구까지 다닌다는 것이 힘들어 2018년 전남 초당대학교 대학원에 장애학과를 개설해 달라고 요청하여 5명이 공부를 하였다.

Q.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일은.

성폭력으로 임신을 한 경우는 쉼터를 이용하고 사랑을 해서 임신했지만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한 경우는 미혼모 시설을 이용하게 된다. 여성장애인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는 있지만 여성장애인 미혼모 시설이 없어서 그들은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사각지역에 놓인 여성장애인들이 편안히 머물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이런 시설을 마련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 너무나도 잘 알지만 해야 할일이라면 부딪혀 헤쳐나갈 것이다. 회원 가운데 피아노를 전공한 분이 있지만 자신의 재능을 살릴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여성, 남성 또 모든 장애 유형이 함께 화음을 맞춰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 내는 합창단을 만들어 보고 싶다. 이제 복지도 예술로 더 멋진 화합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전남여성장애인연대 문애준 대표가 여성장애인을 위해 한 사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건강권 확보>

2009년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를 개소하여 여성장애인 고충 및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으며 특히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역 병원과 연계하여 사회 물리적, 경제적 어려움으로 건강관리에 소외된 여성장애인 건강검진을 매년 실시하여 여성가족부로부터 2010년, 2011년 연속 2회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전남 지역 최초로 여성장애인 건강 검진 필요성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도모하여 여성장애인 건강권 확보에 기여하였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

2013년 전남 지역 최초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해늘’을 개소하여 성폭력 피해 장애인 보호에 앞장섰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퇴소 후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사회 복귀를 위한 자립의 일환으로 ‘성폭력 피해자 체험홈’을 정책 제안하여 2020년부터 운영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모성권>

2015년 여성장애인 모성권 확보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전라남도에 공공산후조리원 2개소 확보, 장애인 거점산부인과 4개소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광주광역시및 타 지자체로 확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또한 2017년 6월 20일 전라남도에 여성장애인 임신, 출산, 양육 지원조례가 제정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또한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여성장애인 장애 유형별 몸에 대한 이해 의료현장에서 차별 실태를 알리는 등 인식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문화권 확보>

여성장애인 당사자가 문화 활동의 주체자로 오카리나, 플롯, 사물, 합창, 노래공연, 패션 쇼, 시낭송 등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해마다 여성장애인 인문학콘서트를 개최하여 여성장애인이 문화향유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013년 전국 최초 ‘여성장애인 인권저널 더~Ing’를 창간하여 여성장애인 당사자가 기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장애인 관련 이슈를 발굴하고 생산하는 주체 당사자로 여성장애인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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