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시청각장애인 도보관광에 참여한 시각장애인이 촉각체험하고 있다.ⓒ에이블뉴스

뜨거운 자외선 아래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돌’을 만지는 3명. 그다지 특별해보이지도, 더위 속 가마솥마냥 팔팔 끓는 ‘돌’을 만지는 이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나가는 시민들. 선글라스를 낀 채 손가락 하나하나 감촉을 놓치지 않는 이들은 빛만을 겨우 감지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다.

27일, 때 이른 무더위 속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덕수궁에 흰 지팡이, 선글라스를 걸친 50명의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이용인들이 모였다.

복지관 ‘건강걷기교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번 덕수궁 길에 나선 이들의 첫 일정은 준비체조. 구름 한 점 없이 뜨거운 자외선이 내리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손과 발을 하나하나 풀어주며 문화체험 준비 끝!.

시각장애인 문화관광해설가 유경숙씨(49세, 시각2급)의 뒤를 따라 첫 발을 내려놓은 덕수궁. “지금 북소리가 들리시죠? 수문장 교대식 소리랍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생생한 현장을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하며 관광에 들어갔다.

첫 코스는 덕수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조례, 외국 사신 접견 등 주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루는 ‘중화전(中和殿)’. 왕이 지나가는 길인 어도에 멈춰선 유 해설가는 “한 번씩들 만져보세요”라고 권했다.

가마를 통해 지나가는 길에는 네모난 돌로 장식되있었다. 그 안에는 용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대한제국 황제가 머물었던 곳이기에 유일하게 봉황이 아닌 용이 그려져 있다는 설명이다.

“어이구, 이게 용인갑네. 요곤 꼬리인가”, “네. 그게 용이고요,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어요. 지금 만지시는 건 아까 설명한 모란이구요.”

‘덕수궁 코스’ 가 담긴 점자지도를 하나씩 받아든 3명의 시각장애인들의 곁에는 일일 봉사자들의 숨은 노력이 돋보였다. “회사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왔어요”라는 이들은 시각장애인의 팔짱을 낀 채, 차근차근 덧붙인 설명과 함께 “계단이 있고요, 3개예요”라며 길안내도 수월하게 해냈다. 산책로를 걸어가는 동안에는 사적인 대화도 덧붙이며 친밀감을 높이기도.

“아이쿠, 그렇군요.” 해설자의 설명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송언석씨(시각1급)는 평소 걷는 것을 좋아해 이번 덕수궁 코스에 기대가 많았다. 송씨는 “1주일에 한 번씩 건강교실 프로그램으로 공원이나 문화재 등을 관람하는데 오늘 코스는 너무 재밌고, 신기하다”며 “같은 당사자가 설명해주니 이해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경숙 시각장애인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역사체험 중인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이용인들.ⓒ에이블뉴스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마이크를 낀 채 차분히 설명을 하는 유경숙 해설사의 설명에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처럼 여러 번 설명보다는 직접 만질 수 있도록 한다. 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촉감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선보이는 것.

작은 돌 하나, 비석하나 지나치지 않고 하나하나 촉감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유 해설사의 노력이 돋보였다. 또 “바로 앞에 있는~”이라는 설명과 함께 시작되는 일반 해설과는 달리 “여기서 하나, 둘, 셋… 열 발자국 떨어지는 곳에 있는~”이라는 설명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배려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마지막 코스로 방문한 광명문(光明門) 안에는 흥천사 범종, 자격루, 신기전기화차를 전시해놨지만 ‘들어가지 마시오’란 경고문으로 인해 간단한 설명만으로 끝낼 수밖에 없던 것.

유 해설사는 “저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직접 만져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쉽다”며 “음성해설만으로는 의미가 별로 없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현재 서울시 소속 시각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는 총 3명. 1회 해설당 3만원의 급여가 지급된다. 그러나 도보관광 프로그램 신청자가 많지 않다보니 수입 또한 적을 수밖에 없다.

2013년 서울시의 공고를 통해 선발된 유경숙 해설사는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다 문화해설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많으면 한 달에 2~3번 정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해설을 하고 있다”며 “많은 시각장애인분들이 신청하셔서 문화체험을 많이 해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시‧청각 장애인 도보관광은 시‧청각 장애인 서울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장애인들에게 서울의 역사, 문화, 자연 등 관광자원 전반에 대해 상세하고 알기 쉽게 전문적인 해설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신청대상은 시‧청각 장애인 및 장애인을 동반한 비장애인으로 운영 시간은 1일 2회(오전10시, 오후2시), 소요시간은 2시간이며 해설시간은 조정 가능하다. 시각장애인도보관광은 촉감과 체험위주의 음성해설이고 청각장애인 도보관광은 수화해설로 진행된다.

이용요금은 무료이며 휴관일은 월요일. 시각장애인 도보관광코스는 덕수궁, 청각장애인 도보관광코스는 덕수궁, 정동길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남산골한옥마을과 북촌한옥마을이 추가될 예정. 보다 자세한 사항은 서울도보관광(02-6925-0777)로 문의하면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의 안내를 도와준 봉사자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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