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어머니. ⓒ이복남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 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이 시는 박경리 선생이 타계 직전 현대문학 4월호에 발표하신 ‘어머니’이다. 누구라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회한의 눈물로 목이 멜 것이다. 참 기구하게 살았던 박경리 선생은 어머니에 대한 회한이 남달랐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통영을 두고 박경리 선생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가대교. ⓒ이복남

2012년 하사가의 문화향기 봄나들이를 정하면서 처음엔 ‘여수엑스포’를 생각했으나 하루 만에 다녀오기에는 마땅치가 않았다. 공룡축제가 열리는 고성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사람이 모여서 의논하기를 그래서 정한 곳이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였다.

그러나 케이블카 외에는 통영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했기에 통영시청 문화관광과로 전화를 했다. ‘문화해설사’가 가능할까요. 4월 말이었는데 5월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신청서를 보내라고 했다. 통영시 문화관광과의 주선으로 ‘강미정 문화관광해설사’를 소개 받았고 향후의 통영 노선은 강미정 해설사와 의논을 했다.

5월 26일(토)이 예정이었다. 문제는 26일이 주말인데다 토, 일, 월요일까지가 연휴라 케이블카가 엄청 붐빈다는 것이다. 케이블카는 왕복요금이 9천원인데 1~3급 장애인은 보호자까지 50%가 할인되어 4천5백원이므로 통영관광개발공사에 공문으로 장애인복지카드를 미리 보내라고 했다.

예산인원이 30명인데 대충 명단을 챙겨보니 1~3급 장애인이 20여명이 되었다. 그런데 20여명의 복지카드를 어떻게 받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세상 참 좋아졌다. 사무실에 들른 사람들은 복지카드를 직접 스캔했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복지카드를 찍어서 제게 보내 주세요”라고 전화를 했다. 휴대폰으로 보내기가 어려운 사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필자의 휴대폰으로 도착한 복지카드를 한데 모았다.

한데 모은 복지카드는 19장이었다. 케이블카 요금이 1~3급은 장애인 및 보호자까지 4천5백원이고, 4~6급은 장애인만 7천원이었기에 4~6급은 따로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통영케이블카는 예매가 안 되기 때문에 19장의 복지카드를 미리 보내놓고, 도착하면 그 때 표를 사서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

미수해양공원 즐거운 점심시간. ⓒ이복남

이번 봄나들이에 참가하기로 한 사람 중에는 케이블카는 물론이고 거가대교를 가 본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어 이왕이면 통영을 거가대교로 가기로 했다.

강미정 해설사는 관광버스로 오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승용차로 갑니다.’ 사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장애인들은 관광버스가 오히려 불편하다. 관광버스를 타려면 한곳에 집결해야 하는데 집결지까지는 또 어떻게 가야 되는가 말이다.

이번 나들이에는 김홍술 목사님이 봉고기사를 자원했기에 차가 없거나 봉사자 등은 지하철을 이용해서 부산역 부근 하사가 사무실 앞에서 목사님의 차를 탔고, 그 외 승용차가 6대였다.

자, 떠나자 통영 바다로!

경험자들에 의하면 을숙도대교로 가면 바로 통한다고 했는데 을숙도대교를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부산역에서 대티터널을 지나 당리동 주민센터에서 왼쪽 신평쪽으로 들어가서 대한제강을 지나면 을숙도대교가 나온다. 을숙도대교는 신평IC에서 명호IC까지 4.2km이고 요금은 1,000원인데 장애인은 무료였다.

을숙도대교를 나와서 신호대교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신항의 전경들이 보이고 가덕도의 눌차대교를 지나면 바로 거가대교로 연결된다. 거가대교는 부산 가덕도와 거제시 장목면을 연결하는 8.2km 구간을 해저와 해상으로 연결하는 해저침매터널이다. 그러나 육상구간을 지나 터널로 들어서면 다른 터널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해저인지 육상인지 알 수도 없다.

거가대교의 통행료는 10,000원인데 장애인은 반액이다. 거가대교를 지나서 통영으로 가는 길은 꼬불꼬불 굽이굽이 참 멀기도 했고, 더구나 차는 또 얼마나 막히는 지 제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

강미정 해설사는 점심 먹을 장소로 미수해양공원 다리 밑을 추천했었다. 12시 30분경에 미수해양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통영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열두시 반은 지나가고 있었다. 중간 중간 휴대폰으로 해설사에게 설명하기는 했으나 미수해양공원에는 1시 30분경에야 도착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강미정 해설사는 먼저 케이블카 표부터 끊어야 된다고 했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터라 일단 짐을 풀어 놓고 해설사와 함께 케이블카 매표소로 갔다. 매표소는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매표소에서는 미리 연락을 받은 모양. 우리 일행은 총 34명인데 케이블카를 안탈 사람하고 어린이 빼고 4,500원에 30장을 받았다. 그러나 탑승은 2시 반쯤이라고 했다.

케이블카 매표소를 나오는데 전화가 왔다. 세 사람의 밥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와 해설사 그리고 운전을 한 최영철씨의 밥이 없다고 해서 충무김밥 4인분을 샀다. 밥 때가 지났으니 모두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미수해양공원 다리 아래는 바닷바람도 시원하고 다리 그늘도 있어 먹고 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강미정 해설사님 좋은 곳을 추천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박경리 기념관. ⓒ이복남

박경리 기념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복남

박경리 연보. ⓒ이복남

점심을 먹고 박경리 기념관으로 갔다. 박경리 기념관은 전국에 3군데가 있다. 이곳 통영은 박경리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고, 하동군에는 토지문학관이 있고, 박경리가 말년을 보낸 원주에는 문학동네가 있었다.

박경리 선생은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났는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2008년 봄에 다시 통영을 찾았다는데 몇 달 후인 5월 5일에 생을 마감하여 고향 통영에 잠들어 있다.

필자는 젊었을 때 박경리의 불신시대, 시장과 전장, 파시(波市), 김약국의 딸들, Q씨에게 등을 읽으면서 박경리를 좋아했다. 토지는 1969년에 시작해서 1994년까지 총 5부 21권을 집필했다는데 필자도 토지는 15~6권 밖에 안 읽은 것 같다. 그러나 토지 이후 박경리 선생은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으신 큰 산(巨峰)이라고 한다.

박경리기념관은 박경리 선생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시와 소설 등 그의 저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경리 선생은 원래 시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기념관 곳곳에 시화가 즐비했다. 일행들은 강미정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기념관을 들러 보았는데 ‘박경리 기념관’이 2011년 제9회 경상남도 건축대상에서 대상으로 선정했다 한다. 그러나 필자가 건축에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복남

휠체어 장애인이 케이블카를 타고. ⓒ이복남

박경리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시간이 되어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주차장도 만차라 일반차량은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장애인차량은 허용이 되었으나 주차할 곳이 없었다. 겨우 주차를 하고 입구에서 탑승을 기다렸다.

통영케이블카는 2008년에 설치되었는데 미륵산 8부 능선까지 1975m로 한국에서는 제일 길다고 했다. 강미정 해설사는 믿거나 말거나 1975가 이순신의 칼길이라고 했는데 칼의 길이가 1.975m라는 것일까.

8인승 케이블카 47대가 회전하고 있는데 한 시간에 800명을 태운단다. 휴일에는 하루에 1만명 정도가 찾아와서 많이 기다려야 되므로 주최 측에서 밴드가 나온단다. 그러고 보니 한쪽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 순번인 8160여번인 차례가 되어 휠체어 1대와 자원봉사자 그리고 필자가 남았다. 한 칸에 8명씩 회전하는 케이블카에 휠체어를 어떻게 태울 것인가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그야말로 기우였다. 케이블카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는데 돌아가는 케이블카를 잡아서 8명씩 태워 보내던 직원이 능숙한 솜씨로 케이블카에 휠체어를 태우는 게 아인가.

“내 생애 이런 날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1급 지체장애인 김정욱씨는 미륵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감개무량해 했다. 케이블카 상부역사에는 이층전망대와 아래층 전망대가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있었다. 전망대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멀리 한려수도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맑은 날이면 저 멀리 대마도까지 보인다했는데 대마도는 잘 보이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갔는데 시간이 되어도 내려오지를 않았다.<2편에 계속

미륵산 전망대에서 보이는 한려수도. ⓒ이복남

미륵산 케이블카. ⓒ이복남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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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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