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12기 달팽이날다 팀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시청각중복장애인 최초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하벤을 만나 인터뷰했다. ⓒ박관찬

‘장애’라는 것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남자와 여자, 긴 머리와 짧은 머리, 뚱뚱 또는 날씬한 몸매 등등. 같은 남자라고 해도 긴 머리와 짧은 머리가 있고, 몸이 뚱뚱할 수도 있고 날씬할 수도 있다.

장애 역시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가진 장애로 인해 조금 불편하고, 어려움이 있을지 몰라도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러한 장애인 중에서도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시청각중복장애인, 미국에서는 Deaf-Blind라고 법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Deaf-Blind가 법학을, 그것도 하버드 대학에서 전공했다는 것은 아무리 ‘장애’가 ‘다름’의 특징일 뿐이라고 해도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Deaf-Blind 최초로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하벤(Haben Girma)을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12기 달팽이날다 팀의 미국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 8월 25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나 또한 한국의 시청각중복장애인으로 법학석사를 취득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만큼, 이번 미국 연수일정에서 하벤 인터뷰만큼은 꼭 내가 담당하고 싶었다.

인터뷰 장소에 안내견과 함께 나타난 하벤은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참 편안하고 여유 있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역시 법학을 전공한 사람은 다르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먼저 우리 팀원 소개를 하는데, 팀원 한 명이 소개를 할 때마다 이어지는 하벤의 질문이 꽤나 날카로우면서도 신선했다.

우리가 소개할 때마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거기에 질문을 하는 것, 바로 법조인의 모습이다.

법학을 전공하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이 법조문인데, 법조문에서 단어 하나하나의 개념과 핵심에 주목하면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문장을 구성하는 작은 단어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꼼꼼함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팀원 중 한 명이 문헌정보학이 전공이고 도서관 사서가 꿈이라고 하니 요즘 도서관이 사라지고 있다며 걱정하는가 하면, 2년 내에 졸업한다고 하니 그때까지 도서관이 다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는 등 돌직구와 유머를 적절히 활용하며 발언하는데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우리 팀이 이끌려갈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난 그런 하벤의 거침없이 던지는 발언이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인터뷰를 해도 해당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고 끝내기보다 상대방도 적극적으로 질문하면서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분위기가 인터뷰 진행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하벤이 발언할 때마다 우리 팀이 하벤에게 이끌려가지 않도록 잘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하벤은 장애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도 나와 정말 비슷했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장애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장애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둘 다 법학을 전공했고, 장애인권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인지 전반적인 마인드와 철학이 비슷하게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았다는 하벤은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접근이 달랐기 때문에 교육에 관한 인터뷰에서는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아무리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체육 등 예체능의 경우에는 장애로 인한 한계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장애학생이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더라도, 체육시간에 축구나 농구 등의 운동경기에 함께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체력단련과 협동과정 등을 더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우리나라와 전반적으로 교육과정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통합교육의 실시에서 장애학생이 모든 교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학생이 학교에 들어가면 학생이 졸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학교의 의무이기 때문에 장애학생의 경우 통역지원 뿐만 아니라 컴퓨터 등의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통역 서비스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점자정보단말기 등 필요한 기구들도 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해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벤의 직업에 관한 인터뷰 부분에서도 혼란스러움과 미국과 우리나라의 다른 환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서 학습하는 경우처럼 장애인이 일을 함에 있어서도 자신을 고용한 단체에 통역인 등 필요한 서비스를 당연히 요청해서 지원받아서 일을 하게 된다. 장애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하벤은 그녀가 속해있는 기관에서 구해준 통역인들과의 ‘신뢰’ 형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했던 질문들, 예를 들어 일을 할 때 필요한 통역은 어떻게 지원받는지? 개인적으로 통역인을 구하는지 또는 정부로부터 지원받는지? 등의 질문들이 미국인인 하벤에게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필요한 지원은 당연히 요청해서 서비스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장애인이 일을 하게 될 때 필요로 하는 통역인 등의 서비스를 활동보조인 서비스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제도적인 차이로 인해 나의 몇몇 질문들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들이 되었다.

인터뷰 말미에 우리나라의 시청각중복장애인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장 개선되어야 할 점에 대해 질문을 했다. 하벤의 답변은 정말 현실적이었다.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좀 더 포괄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사람들이 다름과 차이에 대해서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해야 한다. 불편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미국과 우리나라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이 오래 전부터 달랐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깊게 뿌리내린 인식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장애로 인해 필요한 서비스를 당연하게 신청해서 지원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열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당연한 지원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기구의 경우라고 해도, 무료제공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대여의 경우에도 절차가 복잡하고 심사도 거쳐야 한다.

당장 미국처럼 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달팽이날다 팀의 미국 연수를 통해 파악된 미국 Deaf-Blind의 자립지원과 교육의 현황을 토대로 해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우리나라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자립지원과 교육 분야에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이 글은 2016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달팽이 날다팀의 박관찬님이 보내왔습니다. 달팽이 날다팀은 8월18일부터 26일까지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자립지원교육’을 주제로 미국연수를 진행했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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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의 존재는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 달이 외롭지 않게 함께하는 별의 존재도 감사합니다.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과 첼로를 연주하는 이야기를 통해 저도 누군가에게 반짝이는 별이 되어 비춰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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