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중학교 가는 것을 좀 늦추더라도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서 운동하고 몸이 다 나으면 학교에 가는 것이 어때?”

중학교 입학을 기다리고 있던 2월의 어느 날 밤, 가족들과 함께 마루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오랜 침묵을 깨고 조용히 한 마디를 던졌다. 학교에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 뼈와 근육이 굳어지기 전에, 건강한 몸을 만들어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초등학교 때와 같은 왕따는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시설에 들어가라”는 이유였다.

“그래도 학교에 갈 거예요. 다른 애들은 다 중학교에 가는데, 왜 나면 장애인 시설에 가야 해요? 그런 데에 가면, 잠도 거기서 잔다고 하던데, 난 우리집에서 같이 살고 싶어요.”

그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내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있었으나, 아직 아이에 불과한 나이, 논리적으로 어른들을 설득하기보다는 “이러이러한 것이 싫어서 안 간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한참동안 나를 타이르던 아버지의 입술에서 고함이 터져 나온 것은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말한 다음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학교에 간다고 치자, 너는 평생 장애인으로 살다 죽을래? 네가 지금 이 몸으로 어디 직장이나 제대로 들어갈 수 있겠어? 걸음이나 제대로 걸어야 회사에 가든 장사를 하든 할 거 아냐! 그런 몸 가지고 어느 여자가 너한테 시집을 와? 잔소리 말고 시설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시키는 대로 운동 많이 해! 그래서 장애인 신세 빨리 면해야 돼!”

성인이 된 장애인들이 듣기에도 조금은 거북한, 초등학생이 듣기에는 너무나 싫은 얘기였다. 더군다나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남이 아닌 가족이었고, 누나도 아닌 아버지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고함이 이어지면서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키우면서 어찌 편안한 날들만 있었겠는가. 장애인이 거리를 지나가면 길을 가다가 멈추고 뒤돌아 쳐다보는 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그때, 다른 집의 건강한 자식들과 어쩔 수 없이 비교를 하게 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초등학생에 불과한 자녀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TV에 재활원 같은 데 있는 아이들이 산에 올라가는 것 봤지? 그런 데 가면 그렇게 운동을 시킨다는 애기니까 너도 금방 나아질 수 있을 거야. 힘들더라도 딱 1년만 떨어져 있자.”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장애인의 이미지는 ‘신체적인 장애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며칠 동안 이어진 어머니의 설득 끝에 시설에 들어가는 것은 없던 일이 됐고, 아버지 역시 그 때를 잊어버렸겠지만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장면 중 하나다.

신체적 장애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장애, 그리고 시설에 대한 환상

신체적 장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회적 장애라는 것을,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알지 못했다. 장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아도 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은 맞지만,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소위 말해 ‘끼리끼리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도, ‘몸이 불편하니까 무조건 양보하며 착하게’ 살 이유는 없다. 다만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대화, 토론 논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비장애인을 포함한 지역사회와 함께 공유하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지내는 방법은 몸의 일부 혹은 전부에 장애가 있더라도 꾸준한 참여와 학습을 통해 느리지만 조금씩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가지면 사회에서 어울릴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한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장애인 시설 안에서, 규칙적이고 꾸준한 운동을 통해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부분 역시 기성세대가 버려야 할 편견 중의 하나다. 규칙적이고 꾸준한 운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장애 유형별로 그룹을 나누어 그 특성에 따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나 실상은 장애 유형에 관계없이 많은 장애인들이 치료와는 거의 관계없는 시설 내에 프로그램에 따라 매일 ‘관리’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우리가 사는 사회를 프로구단에 비유한다면, 지역사회를 1군, 장애인 시설을 2군으로 비유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2군의 목적은 1군에서 뛰기에는 기량이 조금 부족한 선수들에게 경기 감각을 쌓게 하고 약점을 보완한 뒤, 1군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다. 만약 2군 감독이 어느 선수에게 기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약점 보완 등의 훈련조차 없이 2군에서 방치한다면 그 선수는 영원히 2군에서 세월을 보내다 사라질 수밖에 없다.

만약 시설이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지금과 같은 탈 시설화 운동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은 또 다른 감옥’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나는 지금 서른둘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나의 아버지는 가끔씩 텔레비전에서 비춰주던 장애인의 산악 등반 모습을 “재활원이나 장애인 시설에 가면 매일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셨을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시설에 가지 않고도 잘 지내고 있으며 나 같은 몸에도 불구하고 함께 평생을 살기 원하는 사람이 있고, 이 몸에도 평범한 사회인이 됐다. 하지만 아직 가족과 이웃들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내일도 나는 근무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현재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고 있는 독자인 정현석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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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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