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서울까지 약 500km를 걸어 온 이진섭 씨와 이균도 군. ⓒ에이블뉴스

“터벅, 터벅”

21일 오후 1시 50분. 때 이른 무더위에 세종로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출발해 율곡로(계동) 위치에 있는 보건복지부 앞까지 약 1km를 걷는 것만 해도 숨이 턱 까지 차 오른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약 300km, 일정에도 없는 인천 등의 지역에 방문한 거리까지 합치면 약 500km. 이들 부자에게 1km는 ‘새 발의 피’다.

지난해 직장암으로 투병 중인 이진섭(부산장애인부모회 부회장)씨와 아들 이균도(자폐성장애 1급)군은 ‘발달장애인 균도와 함께 세상걷기’ 시즌 1을 통해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에 큰 힘을 보태기도 했다.

21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열린 '광주에서 서울까지 도착 환영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 ⓒ에이블뉴스

포기하지 않고 다시 걸을 수 밖에 없는 이유

이들은 지난 4월 23일 광주에서 출발, 21일 동안 온 몸으로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폐지(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를 알리기 위해 또 다시 걸었다. 거세게 내려치는 폭풍같은 비와 때 이른 뙤약볕에도 이들 부자는 멈출 수 없었다.

21일 간의 일정을 마친 이날 보건복지부 앞에서 마무리 기자회견을 가진 이들 부자의 얼굴과 팔은 새까맣게 타버렸고, 고된 일정으로 인해 피로가 가득했다. 하지만 이들 부자의 눈동자는 이번 세상걷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한 중요성은 절실해 보였다.

이진섭 씨가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해 강력히 요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에이블뉴스

착잡한 마음으로 마이크를 든 이진섭 씨는 “현재 학교에서 적합한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학교를 졸업 한 이후에도 일자리를 가지기 어렵다.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서비스 조차 전무한 상황”이라며 “지금 우리나라는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도 그 부모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의지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발달장애인들은 신체적 장애인과는 다르게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며,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 및 의료, 주거, 고용 등 다양한 서비스와 권익옹호 등의 서비스 제공체계가 필요하다는 것.

이 씨는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걸 다 짊어져야 하는 부모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 된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부모가 18세 까지만 책임지게 하고, 그 이후에는 사회가 책임지고 있다”며 “부모가 있는 발달장애인은 소득이 없어도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비를 받을 수 없다. 왜 부양의 의무를 부모에게 모두 다 떠 넘기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초생활보장법은 소득이 최저수준 이하인 사람을 대상으로 현금급여를 통해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하지만 ‘부양의무자’라는 규정 아래 부모나 자녀가 있을 경우 수급자가 소득이 전혀 없더라도 수급자 대상에서 탈락하고 있다.

다시 걸을 채비하는 균도 부자

현재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와 각 당이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위한 논의를 활발히 가지면서 ‘발달장애인법’ 제정이 뚜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씨는 “각 당에서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위해 공약에 넣었지만,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설령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법 껍데기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며 “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발달장애인이 이 세상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 까지 나와 균도는 또 걸을 채비를 하고 있겠다”고 밝혔다.

돌아가는 이씨와 균도 군의 발걸음에는 미래를 그리는 희망만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씨가 균도 군에게 다시 묻는다.

“균도야, 또 걸을 수 있지?”

“네!”

발달장애인이 행복한 그 날까지 이들 부자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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