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진행된 토론회(망막색소변성증 시각장애인 '장애연금미해당처분취소소송'을 중심으로)에서 발제자로 나선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배진수 변호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망막색소변성증과 같은 유전·진행성 질환으로 장애인이 된 사람은 한국에서 장애연금 수급자 대상이 되기 매우 어렵다.

장애연금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연급법 상 '의사의 초진일' 기준을 만족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장애연금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일부 선진국은 의사의 초진일 등 기준보다는 국민연금을 장기간 가입했는지, 국민연금 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했는지 등을 지급의 잣대로 삼고 있다.

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2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토론회(망막색소변성증 시각장애인 '장애연금미해당처분취소소송'을 중심으로)를 갖고 장애연금제도의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한국의 장애연금 수급 및 자격요건 변화=우리나라의 장애연금 지급기준 및 수급요건 등은 국민연금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과거 개정 전 국민연금법은 장애연금 수급요건을 '국민연금에 가입한 후 장애의 원인이 된 질병이 발병해야 한다("질병발생요건" 이라 함, 2016년 5월 29일 국민연금법 개정 후 폐기)'로 정했다.

즉 국민연금에 가입을 한 상태에서 장애의 원인이 된 질병이 발병해야 하고, 가입 전 장애의 원인이 된 질병이 발병한 경우 장애연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요건은 망막색소변성증(이하 알피)과 같이 점진으로 진행되는 유전적 질환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유전적 질환의 경우 어느 시기를 기준으로 발병시기를 판단해야 하는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20세 무렵 군대 입대를 위해 징병신체검사를 받았던 남성들이다.

알피의 특징인 시력저하나 시야협착 증상의 발현이 없지만, 망막의 색소변성은 쉽게 관찰되기 때문에 (군의관들은) 이들의 병적기록부 등에 알피의 기록을 남겼고, 수십년이 지나 시력저하 및 시야감소로 시각장애를 가진 후 연금신청을 하면 공단은 병적기록부에 진단기록이 있음을 이유로 국민연금 가입 전 이미 질병이 발생했다고 판단해 장애연금 미해당 처분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법무법인 디라이트 김용혁 변호사와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배진수 변호사는 이런 사례로 장애연금 미해당 처분을 받은 시각장애인의 변호를 맡아 소송을 진행했고, 현재 대법원까지 올라간 상태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배진수 변호사에 따르면 국민연금법이 개정(2015년 5월 29일 개정, 2016년 11월 30일 시행)되면서 수급요건인 '질병발생요건'이 삭제됐고, 수급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건으로 의사의 초진일이 생겼다. 초진일이 있는 장애인들의 장애연금 수급요건이 크게 바뀐 것이다.

개정법은 국민연금 가입자가 신체정신상의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장애의 원인이 된 질병의 ▲초진일 당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기간이 가입대상 기간의 1/3이상일 것 ▲초진일 5년 전부터 초진일까지의 기간 중 연금보험료를 낸 기간이 3년 이상일 것 ▲초진일 당시 가입 기간이 10년 이상일 것으로 했고 이 중 한 가지 요건을 갖춰야 장애연금을 수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초진일을 기준으로 장애연금 수급여부를 판단하다보니 초진일이 언제인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초진일은 장애의 주된 원인이 되는 질병이나 부상에 대해 처음으로 의사의 진찰을 받은 날을 뜻한다.

특히 여러 질병이 경합하는 경우 장애를 초래한 직접적인 질병이 무엇인지, 장애를 직접적으로 초래한 질병에 대한 최초 진단이 언제인지 등의 이견이 있을 수 있어 초진시기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커졌다.

■장애연금 시행 해외선진국 '선정' 어떻게=독일은 장애연금 자격요건을 장애가 근로활동 시작 후 최소 1년 이상 국민연금에 가입한 후 발생한 경우, 최근 5년 간 3년 이상 보험료 납부요건과 최소 총 5년 이상의 생애기여기록을 요한다.

장애발생 당시 최소한 5년 이상 연금에 가입해 3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면 장애연금을 수급할 수 있는 셈이다.

독일은 나아가 한국과 달리 선천성 장애인에 대한 특례조항도 두고 있다.

한국은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장애인의 경우 국민연금에 당연가입이 됨에도 가입 중 장애발생요건을 갖추지 못해 연금을 수급할 수 없다.

반면 독일은 선천성장애인이어서 가입 당시 이미 장애가 있었거나, 보험료 납부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도 20년 이상 가입한 경우 장애연금을 수급할 수 있도록 특례규정을 두고 있다. 단, 장애는 완전한 장애가 해당되고 연령에 상관없이 20년을 충족한 시점부터 장애연금 수급이 가능하고, 최근의 보험료 납부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장애연금의 지급요건으로 초진일 기준을 두고 있지만 장애연금 특례제도를 두고 있는 차이점이 있다.

일본은 20세 이전에 장애발생 상병에 대한 초진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20세에 달한 때 장애 1급 또는 2급의 장애상태에 있는 경우, 노령연금 수급연령인 65세 이전에 장애 1급 또는 2급에 도달하면 장애기초연금을 수급할 수 있는 제도(장애기초연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장애연금을 수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례제도 '특정장애인에 대한 특별장애급부금 제도'도 두고 있다.

이 같은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초기 일본의 국민연금이 가입을 강제하지 않은데서 비롯됐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 중 장애를 갖게 됐음에도 장애연금을 수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례제도가 생긴 것이다.

특례대상에 해당하는 경우 65세 이전 장애기초연금 1급 또는 2급 상당의 장애인에 해당해야 한다.

캐나다의 장애연금 수급은 장애요건과 함께 장애발생시점이 18세 이상 만 65세 미만 사이에 발생할 것을 조건으로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과 같이 장애발생시점에 '가입 중' 혹은 '보험료 납부 중'을 요구하지 않는다.

장애가 국민연금제도의 최초적용연령(18세) 이후 65세 사이에 발생하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일정한 소득활동을 했고, 이에 기초해 최근에 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하고 있었는지 여부다.

보험료 납부충족요건은 연간 4400달러(2009년 기준)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는 근로활동을 수행하고, 최근 6년 중 이러한 소득에 기초해 보험료를 납부한 기간이 4년이상 되는 경우다.

배 변호사는 "독일은 장기가입 특례제도를, 일본은 초진일 요건을 두고 있지만 20세에 1, 2급 장애인이 되면 장애연금을 주도록 특례조항을 두고 있다. 캐나다는 연간소득과 보험료 납부이력 기간을 따져 장애연금을 주고 있다"면서 "개정법의 초진일 규정을 삭제하고 (외국처럼)진행성 선천성 장애인에 대한 장기가입 특례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본인이 갖고 있는 질병이 어떤 것인지 진단하는 기술은 빨라질 것이다. 장애에 대한 초진일 빨라지면, 장애연금 받을 수 있는 사람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장애연금의 요건으로 초진일을 두는 것은 통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 이용하 연금제도연구실장이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

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 이용하 연금제도연구실장은 "장애연금과 관련한 몇몇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장애연금 지급수준은 선진국과 비교가 안된다.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연금은 장애로 인해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아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제도다. 결국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외국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병원 입원을 하는 시점을 연금을 줘야하는 중요한 시점으로 본다"면서 "우리나라도 그렇게(외국처럼) 판단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알피와 같은 진행성 질환들은 초진일을 특정하기가 어렵다. 이런사람들과 선천성 장애인은 연금공단이 특례규정을 도입해 장애연금에서 구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이러한 논의와 문제제기가 있으면 장애연금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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