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등편의법상 편의시설을 모든 학교에 설치 해 주세요!' 피켓을 든 장애청소년 유지민 양.ⓒ협동조합 무의

장애-비장애청소년, 학부모, 일선교사, NGO, 법조인 등이 국회 간담회에 모여 초중고교 내 장애인편의시설과 장애지원 미비로 모든 학생의 교육권이 침해되고 있다며 ‘모두의 이동이 자유로운 학교’를 위한 법제도 정비를 촉구했다.

장애인이동권증진 컨텐츠 제작 협동조합 무의와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학교내 이동권 실태조사를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는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최혜영 국회의원실이 공동주최했으며, 장애청소년, 비장애청소년을 비롯해 실천교육교사모임, 세이브더칠드런, 법무법인 디라이트가 참여했다.

■학교내 장애차별, 편의시설·교육지원 배제

먼저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총장은 장애학생(졸업생 포함)-학부모 14명의 설문-심층인터뷰를 통한 ‘학교내 장애차별 실태’를 발표했다.

실태조사 결과, 90%의 응답자가 장애판정 후 “특수교육대상자 선정에 대해 교육청에서 미리 연락받지 못했고 직접 문의해 알아봤다”고 했으며, 편의시설이 미비한 학교도 전체 17%에 이른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문정복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교육부가 제출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현황 통계를 보면 올해 9월 기준 전국 1만1943개 초중고 중 2063개교(17.3%)에 승강기와 경사로, 휠체어리프트 등 장애인 이동 관련 시설이 없거나 적정하게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학교 진학 시에도 직간접적인 차별을 당한다. 응답자 95%는 “진학 전 교육기관에서 차별-거부하는 언어적, 비언어적 반응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이날 간담회에 참가한 장애청소년 유지민양의 부모인 무의 홍윤희 이사장은 “사립고등학교 3곳에서 ‘편의시설이 없어 다니기가 불편할 것’이라는 식의 안내를 받고 진학해도 찬밥 신세일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자녀 고교 진학 전 엘리베이터가 있는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갔다. 사례자 중에는 “100년 학교 역사상 장애인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노골적으로 학교에서 거부당한 사례자도 있었다.

응답자 전원은 “재학 중 정당한 편의 제공과 교육지원을 받지 못해 학업수행과 교육 과정 참여에서 차별과 불이익이 있었다”고 답했다. 입학 후에라도 법적으로 이동권 보장을 위한 편의시설 등을 설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수학급 전일제 수업을 강요하거나 장애인 학생만, 재학 중에 계속해서 일층 교실에만 배정하는 식이다.

예체능 수업에서 필요한 교실이동이나 실기 배제는 심각했다. ‘학교체육진흥법’에서는 일반학교 또는 특수학교에 배치된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해 적절한 체육활동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거나 위탁하게 되어 있으나 현장에서는 잘 이뤄지지 못한다.

안전교육을 할 때도 차별, 배제당한다. 응답자 전원은 학교 안전교육에서 배제당하거나 방치된 경험이 있었다. 학부모 역시 각 교육청에서 발간한 학생 안전 매뉴얼 존재를 대부분 알지 못했다.

이날 김 총장은 9일 인천장애인교육권연대 성명에 등장한 ‘장애학생이 생존수영교육에서 배제당한 사례’를 소개했다. 안전 시설 인프라 역시 부족하다. 전국 초·중·고교 1만 1943곳 중 2075곳(17.4%)은 각종 재난상황에 대비한 장애인 경보 및 피난시설이 설치되지 않았고(10.4%), 설치기준에 어긋난 부적정 단순설치(7%)로 나타났다.

울산 현대청운고 학생들이 지난 5월 8개 사립고 소속 1306명이 모인 학교내 교육기본권 증진 학생모임 ‘모이자’(모두의 이동이 자유로운 학교를 위하여)를 주도했다ⓒ협동조합 무의

■장애청소년 “편의증진은 전체 학생의 교육권 향상”

장애당사자와 비장애 학생 3명도 증언에 나섰다. 유지민 양(17, 전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 학생)은 장애인이자 학교밖청소년이다. 유 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사립학교에 지원하고 싶었으나 장애인은 안왔으면 하는 눈치를 줘 포기했다”며 “다수의 사립고등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교육기본권을 누릴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고교로 갈수록 특수반 설치가 안된 사립학교 비중과 공학 대신 남고-여고 비중이 높아져 지체장애학생들이 갈 학교는 더 줄어든다.

중학교 체육시간 때는 일부 교사가 “평가할 방법이 없으니 교실에 남아 있으라”고 말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칸막이 행정’을 지적하기도 했다. “미인가대안학교에 진학하며 특수교육대상자 자격과 교육청 치료비 지원 등을 자진 포기해야 했다”며 “장애청소년은 모두 교육청 등록 학생이라는 가정 하에 치료비 지원 등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장애 고교생들이 교육증진권 모임을 조직하고 교육감 면담을 한 사례도 소개됐다. 간담회에서 최민기(19), 천원영(18) 울산 현대청운고 학생은 지난 5월 8개 사립고 소속 1306명이 모인 학교내 교육기본권 증진 학생모임 ‘모이자’(모두의 이동이 자유로운 학교를 위하여)를 주도했다.

‘모이자’는 성명을 내고 ‘모든 학생들의 교육권 증진을 위해 장애편의시설 설치’를 주장했다. 비장애 학생들이 일시적 장애나 중도장애로 학교시설을 이용 못해 교육권이 침해된 사례를 발견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울산 노옥희 교육감 면담을 통해 ‘엘리베이터 설치 안된 학교에 우선설치 고려와 관리감독강화’ ‘장애학생 입학시 편의제공 답변서 의무화’ ‘장애학생 입학전형 확대’등을 요청했다.

실천교육교사모임 박현주 특수교사는 종합토론을 통해 “학교 건물 중 일부에만 승강기나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어도 ‘설치 적합’으로 파악되는데 실제 현장에서 장애학생들은 장애인화장실 숫자가 적어서 4층에서 1층까지 화장실을 다녀온다던지 특별활동실이 있는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학습권을 침해받는다던지, 전기세를 아낀다며 엘리베이터를 잠궈놓는 사례가 잦다”며 “편의시설 부족은 학생 모두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초중등교육법에 장애학생 권리와 차별시 제재 명시”

법무법인 디라이트 강송욱 변호사는 특히 사립학교에서 장애학생 배제나 차별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의 개선을 제안했다.

강 변호사는 “특수교육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장애인등편의법에 산재되어 있는 장애학생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권리를 초중등교육법에 통합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며 “사립학교는 임의 이행을 기대할 수밖에 없어 편의시설 설치나 장애학생 지원이 미비한데 초중등교육법에서의 장애학생 권리보장을 강화하면 사립학교의 의무 이행을 확보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초중등교육법에 의하여 장애학생에게 보장된 특수교육을 위한 기본적인 청구권의 이행에 불응하는 학교의 행위는 이를 그 자체로 장애학생에 대한 고의적인 학습권 침해행위로 보아 아동학대에 준하는 정도의 형사처벌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 강미정 팀장은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장애아동 삶의 질 조사를 소개하고 “지체장애학생에게 팔굽혀펴기를 하는 영상 제출을 요구하고 못하니 출석만 하라는 식으로 학교 수업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있다”며 “학교내 장애학생 편의제공은 이미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한국에 권고했던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 교육접근권 향유에는 획일화된 접근이 아닌 기능수준, 복합장애 여부 등 개별 특성을 고려한 교육과정과 환경적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며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는 삶의 질 차원을 넘어 장애아동-청소년의 안전이라는 기본권 측면에서 보다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현주 특수교사는 “초중등교육법에 장애학생 권리를 명시하는 것은 장애아동-청소년이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서만 교육받는 게 아니라는 시그널을 통해 진정한 통합교육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체 장애학생의 72%가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재학 중이다.

이번 행사를 마련한 무의 홍윤희 이사장은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사립학교일수록 장애학생 편의시설이나 지원제도가 부실해져 교육권 침해가 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무의와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는 법무법인 디라이트의 지원으로 2023년 초 ‘장애아동청소년-학부모를 위한 학교내 차별상황 대처 가이드라인’을 제작할 예정이다. 또한 향후 교육현장 차별 사례 구제를 위한 전문가 풀 구축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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