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휠체어 모습.ⓒ픽사베이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어쩌면 장애인 주차공간 정도가 아닐까. 그마저도 또다시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행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증 지체장애를 가진 10살의 하 모 양 가족은 지난달 한국을 떠났다. 2년 전,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그저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싶었던 작은 꿈은 교육당국의 무책임한 태도에 막막함으로, 급기야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보조인력 공백 속 다른 아이들이 밟고 지나가는 아찔한 사고에도 학교가 쉬쉬하자, ‘더 이상 희망은 없다’며 눈물을 삼킨 채 터전을 버렸다.

■근육이 약한 아이, 초등학교 입학 ‘큰 산’

하 양은 근이영양증으로 선천적으로 근육이 약하게 태어난 중증장애아동이다. 턱이 없는 실내 바닥에서 잠깐 스스로 걷는 것만 가능할 정도여서, 의자에 앉는 것은 물론 화장실 이용까지 모든 활동에 있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몸의 지탱 능력이 없어 넘어지기라도 하면 위험이 크다. 부모는 이 같은 아이의 상태에 대해 수도 없이 설명하고, 진단서와 소견서를 떼 지니고 다녔다고. 주문처럼 ‘좋아지리라 좋아지리라’ 외웠지만, 달라지는 건 하나 없었다.

불안한 하루하루 속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큰 산과 마주했다. 2020년 초,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된 하 양은 일반학교에서 또래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 통합교육을 선택해 경기지역 남양주 소재 A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8조에 따른 지원인력도 신청했다. 신체 장애로 교수학습활동 뿐 아니라, 용변 및 식사지도 등 신변처리, 보조기 착용 등의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탈락’. 교육지원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행정상 오류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부랴부랴 민원을 제기해서야, 4월부터 전담 보조인력(특수교육지도사)을 지원받으며 가슴을 쓸어냈다.

중증 지체장애를 가진 10살의 하 모 양 가정은 보조인력 미지원으로 지난달 한국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 입장문.ⓒ에이블뉴스

■전담 보조인력 꼭 필요한데, “1개교당 1명만” 거부

문제는 다음 해인 2021년이었다. 또 교육청 특수교육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전담 보조인력을 배치받지 못한다는 ‘청천벽력’같은 결과를 통보받았다. 교육지원청이 일괄적으로 관할 구역 내 학교들에 대해 ‘1개교당 1명’의 특수교육지도사를 배정하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교육지원청은 '특수교육지도사 배치 기준점수 설정심의(가점항목)' 지표 상당 부분이 전년과 다르게 변경했으며, 특히 '건강/안전문제' 항목 배점삭제 및 성별을 고려한 지원에 필요한 '여자 휠체어' 항목의 배점을 차감했다. 몸 상태가 나아지기는 커녕, 매년 성장하는 또래아이들을 쫓아가지 못 하는 수준인데, 전년보다 오히려 낮은 가점을 받은 것이다.

하 양이 다니는 A학교에는 이미 8명의 지적장애학생이 다니고 있어 1명의 특수교육지도사가 특수학급에 배치돼 있었다. 그 때문에 통합학급에 다니는 하 양만을 위해 추가로 인력을 배치할 수 없다고 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회원인 유연주 씨는 “교육청이 매년 예산을 제한되게 책정하기 때문에, 특수교육지도사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입학하면 다른 학교의 인력을 뺏어와야 하는 현실”이라면서 “매년 상황별, 장애별, 지역별 편차가 다를 텐데도 추가적인 예산 편성 없이 어떻게 통합교육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하 양의 부모는 원망스럽고 억울한 마음에 다시금 민원을 제기했지만, 장학사와 A학교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들이 내놓은 방안은 ‘학부모나 활동지원사 지원’ 또는 ‘특수학급 수업 참여’ 였다.

본인들의 부담해야 할 보조인력 부분을 학부모에게 떠넘기고, 일반학급에서 교육받는 데 문제가 없는 아이를 분리하겠다는 어이없는 태도에 부모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회복무요원을 신청해달라는 요청 또한 ‘관리가 어렵다’, ‘다른 학부모가 기피한다’며 거부당했다.

‘학교와 교육청은 본인들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학교의 기준과 편의에 아이가 따라올 것을 강요만 합니다. 문제제기하는 부모는 학교에서 기피 대상이 되어 버리고, 급기야 학교는 아이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음을 학부모에게 태연히 이야기합니다.’(하 양 어머니의 입장문 中)

17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특수교육대상자 초등학생에 대한 보조인력 미지원 차별 손해배상청구 기자회견 모습.ⓒ에이블뉴스

■내동댕이쳐진 학습권, 국가 상대로 싸운다

전담 보조인력을 배정받지 못한 하 양은 3월 한동안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3월 말에서야 특수학급 부담임·자원봉사자 등이 요일을 나누고, 2학기부터는 사회복무요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수업시간뿐이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

2학기에는 아이가 “근육이 매우 부족하다”면서 전동휠체어 사용을 요청했지만, 그마저도 거부당했다. 아무런 지원 없이 방치당한 하 양은 교내에서 넘어지고, 다른 아이들이 밟고 지나가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학교 측은 ‘쉬쉬’했다. 장애를 가진 게 잘못인가, 억울했다. 평범한 학교생활을 꿈꿔왔던 하 양은 결국 새 학기를 앞둔 지난달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베트남으로의 이주를 선택했다.

2년간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던 하 양의 가족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재단법인 동천 등의 도움으로 경기도(대표자 교육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특수교육법에 규정된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한 보조인력 제공 의무 및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취지에서다. 이들 단체는 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17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특수교육대상자 초등학생에 대한 보조인력 미지원 차별 손해배상청구 기자회견. 소송 대리를 맡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나동환 변호사.ⓒ에이블뉴스

소송 대리를 맡은 장추련 나동환 변호사는 “교육청은 특수교육법에 따라 장애학생의 교육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효율적인 교육에 필요한 인적서비스인 보조인력이 원활하게 제공될 수 있는 책무를 갖지만, 개별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합리적 근거 없는 일괄적 결정을 내려 전담 보조인력이 배치되지 못했다”면서 “제도적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아동과 부모들의 정신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법령 명시된 특수교육 대상자의 장애학생 학습권 보장 및 통합교육을 위한 정당한 편의 제공 책임을 망각한 채 장애학생을 사실상 교육현장에서 제한, 배제한 교육당국의 행태를 문제 제기하고, 당사자들이 입은 피해 회복을 도모하고자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면서 “교육당국이 통합교육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책임을 다하도록 각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7일 청와대 분수대 앞 기자회견에 하 양의 어머니 입장문을 대독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경미 국장.ⓒ에이블뉴스

■해외 이주 후 웃음 찾은 아이, “시설 열악하지만 행복”

한편, 베트남으로 떠난 하 양은 현지 학교에 입학해 등교 10일차를 맞았으며,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어머니는 장추련을 통해 ‘입학과정에서 교장선생님이 직접 만나러 나와 필요한 게 뭔지 꼼꼼하게 챙기고, 보조인력 또한 아이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며 지원하고 있다’면서 ‘체육·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이 잘 섞여 지내는지 확인하고, 항상 아이의 의사를 물어보며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고 학교생활을 알려왔다.

그리고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돈과 절차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보다 시설적인 것은 열악하지만 수용과 허용, 배려가 있으니 아이는 훨씬 더 학교를 즐겁게 다니고 있다’고 강조하며, 하 양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공놀이하는 사진을 보냈다. 하 양의 어머니는 ‘한국에 돌아올 땐 남들처럼 일상을 살 수 있길’ 꿈꾼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수정 서울지부장은 “특수교육법이 제정된 지 15년인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부모가 지원해야 하고, 결국 해외로 이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2022년 진행되는 상황이 맞냐. 그동안 법령은 어떻게 작동했는지 참담하다”면서 “2030년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내서 싸울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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