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다. ‘아이보다 하루 더 살고 싶다’는 것. 남편과의 별거로 큰 딸 손은수(가명·여·지적장애 2급·30세)씨를 비롯해 3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는 김미진(가명·여·53세)씨 또한 마찬가지 심정이다.

김 씨는 최근 큰 딸의 핸드폰 가입으로 인한 휴대폰 기기 할부 비 및 사용 요금 때문에 속병이 났다.

손 씨의 휴대폰 신규 가입 신청서. ⓒ에이블뉴스

큰 딸은 동생 명의로 청소년 요금제의 폴더 폰을 사용하고 있던 중 지난해 6월 27일 성남시의 A통신사 대리점에서 장애인복지카드로 스마트폰을 구매했다. 조건은 스마트폰 기기 값 36개월 할부와 월 4만 5천원의 요금제 36개월 사용이었다. 이 요금제의 경우 무료통화 200분, 문자 300건, 데이터 1GB까지 제공받는다. 요금이 제한된 요금제가 아니기 때문에 기본 제공 이상이 넘어가면 추가 사용료가 나오게 된다.

김 씨는 “딸이 ‘무료’라는 말만 듣고 스마트폰의 인터넷을 계속 사용했고, 휴대폰 사용 3개월 후 나에게 요금 미납에 대한 전화 독촉이 걸려왔다”면서 “딸이 복지카드로 휴대폰을 구매했고, 3개월의 휴대폰 사용료와 할부 기기 값 등 약 70여만원이 미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딸과 형편상 같이 살지 못하고 있어서 휴대폰 구매 사실도 전혀 몰랐다. 알았으면 이렇게 3개월 동안 쓰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요금이 많이 나와서 막내 명의로 청소년 요금제를 해둔 것인데 이러한 상황이 발생되니까 너무 황당하다”고 말했다.

손 씨가 장애인복지카드로 구매해 사용한 스마트폰. ⓒ에이블뉴스

김 씨는 “지난번에도 딸이 주민등록증으로 휴대폰을 개통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동일한 명의로 가입했기 때문에 문자가 와서 알게 돼서 취소한 적이 있었다. 신분증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 장애인복지카드를 대신 갖고 다니게 했다”면서 “이번에는 장애인복지카드로 휴대폰을 또 구매했다. 지난번에는 휴대폰 금액을 내지 않았는데 금액이 70만원이 넘으니 부담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답답한 마음에 김 씨는 A통신사 성남지점(성남시 대리점 관리하는 지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지만 “장애 유무를 떠나 성인이 가입했기 때문에 별 다른 방법이 없다. 가입을 거부하면 차별에 해당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전했다.

얼마 후 미래신용정보(채권 추심하는 기관)로부터 휴대폰 요금 납부 재촉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후 김 씨는 인근 장애인단체, 국가인권위원회, 소비자보호원 등에 상담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 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재촉 전화가 올수록 김 씨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결국 김 씨는 딸을 ‘한정치산자’로 등록하기로 하고 법원의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죽고 나서 아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미안함에 판결을 받지 못한 채 나왔다.

‘한정치산자’는 심신이 박약하거나 낭비가 심하여 가정 법원으로부터 재산의 관리나 처분을 제한하는 선고를 받은 사람을 뜻한다. 이는 재산의 낭비로 본인이나 가족의 생활을 궁박하게 할 염려가 있다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

김 씨는 “지금 자신의 ‘장애’로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하는 아이한테 ‘한정치산자’를 신청하면 내 손으로 우리 아이를 두 번 죽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포기했다”며 “우리 아이가 한 행동이니 어느 정도의 책임을 물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모든 게 우리 아이의 탓으로 몰고 가는 게 억울하다. 대리점 측에서 ‘장애인’이니 부모에게 전화라도 했으면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아이가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쓸 수도 있고 또 휴대폰을 만들 수도 있는데 그 때마다 어떻게 다 요금을 내야하냐, 최소한 부모에게 전화라도 한 통 해줘서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피해 사례는 장애인 가정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신적장애로 분류되는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의 자발적인 가입으로 인한 장애인 가정의 경제적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법률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보완책이 없어 통신사의 사회적 배려와 선처만을 호소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하상장애인복지관 김재형 직업재활사는 “손 씨 뿐만 아니라 구직을 소개했던 지적장애 3급인 남성도 휴대폰을 가입했는데, 휴대폰의 가격이나 요금제 등 세밀하게 따질 수가 없어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온 적이 있었다”며 “그래도 그 분은 취업을 통해 일을 하고 있어서 요금을 낼 수 있었는데, 직업이 없는 경우 부모가 모두 책임져야 하니 부담이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이러한 피해 사례가 많아 얘기 된 것이 ‘성년후견인제도’(민법 개정안) 인데 도입이 되면 이러한 피해 사례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면서 “휴대폰 등 중요한 계약이나 법률행위에 있어서는 후견인과 부모의 동의를 받게 한다거나, 집에서 같이 있을 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증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도가 시행되면) 자발적으로 계약했을 경우에는 법적 효력이 없어진다”면서 “하지만 현재로써는 중재를 통해 요금을 경감해 지불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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