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활동보조인 모습.ⓒ에이블뉴스DB

당사자가 원하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는 것은 사회가 그를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장애자, 장애우에서 장애인으로 이름을 바꾸는 과정은 우리 사회가 그들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가는 세월이었죠.

“정부가 이름 붙여준 ‘활동보조인’이 아닌 ‘활동지원사’로 이름을 바꿔주세요!”

얼마 전부터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이하 활보노조)은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보도자료에 ‘활동보조인’이 아닌 ‘활동지원사’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활동보조인’이라는 이름은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할 뿐 아니라 노동자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이유입니다.

‘활동보조인’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지난 10년 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시작할 당시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라는 명칭으로부터 나왔습니다. 2011년 활동지원제도로 바뀌었지만 활동보조인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용되고 있죠.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제27에 활동보조인이라고 명시돼있다.ⓒ국가법령정보센터

현행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을 살펴보니, 제2조 정의 조항 속 ‘활동지원인력’이라며 ‘활동지원기관에 소속돼 수급자에 대한 활동지원급여를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음 ‘제5장 활동지원인력 제27조’에서는 활동지원인력을 이하 ‘활동보조인’이라 명시돼 있죠. 총 10개의 ‘활동보조인’ 명칭이 법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활보노조 측은 ‘활동보조인’이 달갑지 않답니다. ‘보조’라는 명칭이 노동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다는 건데요.

자신이 하는 일이 주된 일이 아니라 부차적으로 보조한다는 느낌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자존감은 물론 업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적극성을 떨어뜨립니다. 장애인에게 부속된 사람이 아닌, 장애인의 삶이 빛나도록 지원하는 ‘활동지원사’로 불리길 원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활보노조가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무작위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시민들 역시 존재 자체를 ‘보조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어떤 직업이 있으면 그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들”, “업무들을 도와주는, 보조해 주는 직업 같습니다.”, “주된 업무가 아닌 잡다한 일들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존재 자체가 보조적인 존재라는 느낌?”

활보노조는 지난 여름 활동보조인, 장애인이용자 등을 대상으로 ‘활동지원사’로 이름을 바꾸자며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현재까지 총 1280명이 참여했습니다.

활보노조 고미숙 조직국장은 “산모신생아돌보미의 경우, 전문성을 가진 산모신생아건강관리사로 이름 바꾸기를 요구해 실제로 이뤄졌다. 노동성이 담긴 활동지원사 이름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내년 지침에 보조인 대신 지원사로 바꿔주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28일 세종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모습.ⓒ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이에 기자는 최근 취재 장소에서 이들의 요구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뇌병변 1급 나혜리 씨(35세, 여)는 “활동지원사가 좀 더 전문적인 용어다. 사람들 인식에 ‘아 저 사람은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동의를 표했습니다.

지체 1급 서보민 씨(27세, 여)도 “노동성 확보가 된다면 아무래도 케어의 질도 높아질 것 같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만, “자격조건도 갖춰줬으면 좋겠다. 필기시험과 더불어 교육기간도 40시간이 아닌 3개월 이상으로 조건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지체장애인 A씨의 경우 “쓸데없는 소리다. 전문성을 갖게 되면 이용자를 통제할 우려가 높다”고 선을 긋기도 했습니다. 활동보조인 B씨도 “차라리 수가를 올려 달라”며 역시 부정적 반응을 보였고요.

이 같은 활보노조의 요구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알고 있을까요?

네, 최근 세종청사에서 면담도 이뤄졌다고 합니다. 1280명의 동의가 담긴 서명용지도 받아 봤구요. 하지만, 이름 바꾸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서비스과 관계자는 “활보노조가 요구한 내용은 내년 지침을 ‘활동지원사’로 바꿔달라는 부분인데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활보노조가 예를 든 산모신생아건강관리사의 경우 모법이 없기 때문에 임의로 이름 붙이긴 쉽지만, 활동보조인의 경우 법에 못 박혀있기 때문에 지침을 통한 임의 변경은 힘들다는 설명인데요.

그는 “지침은 법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지 별개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지침 자체가 법을 넘어설 순 없다”라고 난감함을 표했습니다.

올해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라고 언급하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등 파격적인 정책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자 노동’ 활동보조인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은 달라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유난히도 더웠던 이번 여름, “40도가 넘는 반지하에서 일하며 아무리 땀을 닦아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는 한 활동보조인의 하소연을 잊지 못합니다. 활동보조의 수가는 여전히 처우개선과는 거리가 멀고요.

그런 와중에 ‘이름 바꾸기’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는 것 또한 노동에 대한 인식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처우개선의 일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활보노조는 지침 변경이 어렵다면 내년부터는 법 개정을 요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필요할 경우 청와대 국민청원도 제기해보겠다고 합니다. 스스로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보조인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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