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활동가가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모습.ⓒ에이블뉴스DB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시외이동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한지 8년, 긴 기다림 끝에 대법원에서 나온 판결은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장비가 설치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지만, ‘즉시’ ‘모든’ 버스에 제공하라는 것은 과도하다는 ‘소극적 판결’을 내놓은 것. 원심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책임 또한 부인했다.

대법원(주심 대법관 노태악)은 지난 2월 17일 휠체어 사용 장애인 A씨 등이 버스회사 2곳, 대한민국, 서울시, 경기도 등을 상대로 낸 장애인차별구제청구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앞서 지난 2014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교통약자 이동권소송연대는 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장비가 설치된 버스나 저상버스가 도입되지 않아 교통약자들의 시외 이동권이 막대하게 침해받고 있는 점에 대해 대한민국과 서울특별시, 경기도 및 버스회사 2곳을 상대로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교통약자 이동권소송연대가 지난 2017년 6월 2심 판결을 앞두고 “시외이동권을 보장하라”며 500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했다.ⓒ에이블뉴스DB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휠체어 탑승을 보장하지 않은 버스회사의 차별행위를 인정하고 휠체어 승강설비 등 승하차 편의를 제공할 것을 명했지만, 교통행정기관에 대해서는 “이동편의 증진계획에서 저상버스 등의 도입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은 위법하지 않다”며 기각했다.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버스회사들에 대한 청구는 1심의 판단은 유지했지만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역시 버스회사들이 휠체어 탑승설비를 버스에 장착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교통사업자는 장애인을 위한 정당한 편의로 버스에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일정한 재정 부담이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사유를 쉽게 인정할 것은 아니다”면서 “누구든지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에 이르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차별금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 버스회사들에 ‘즉시’ ‘모든’ 버스에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도록 명한 원심은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에게 재정 부담을 지우는 적극적 조치 판결을 할 때는 피고의 재정상태, 재정 부담의 정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원심인 서울고법에서 피고인 버스회사들이 운행하는 노선 중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인 개연성이 있는 노선과 재정상태,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운임과 요금 인상의 필요성과 그 실현 가능성 등을 심리한 다음, 이후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대상 버스와 그 의무 이행기 등을 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현행법령 해석상 버스회사들이 저상버스 제공 의무까지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고,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지 않은 것과 관련한 대한민국, 서울시, 경기도의 차별행위도 기각했다.

2019년 1월 25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교통약자 이동권소송연대가 2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에이블뉴스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성명을 내고 “소극적 결정”이라면서 유감을 표했다.

연구소는 “대법원이 탑승설비 설치 대상노선을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 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제한한 것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정할 것을 포기한 판단”이라면서 “그동안 구제조치를 인용한 법원의 판결 중 이행 대상을 제한한 판례는 없었다”고 분노를 표했다.

이어 정부 책임을 부정한 판시에 대해서도 “정부는 연구용역을 하겠다, 계획을 수립하겠다 변명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수립된 바 없다”면서 “국가에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데도 차별행위 시정을 위한 조치를 전혀 하지 않는 정부에 끝까지 면죄부를 준다면, 정작 장애차별을 시정해야 할 국가의 책임은 부인하고 사인들 간의 분쟁으로만 장애차별문제를 치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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