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활동지원 24시간 보장하라”면서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서비스지원종합조사 전면 개편을 요구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12년 10월 30일, 장애계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평생 장애인 자립생활을 꿈꿔왔던 고 김주영 활동가를 눈물로 추모했다.

“휠체어에 피켓을 앞뒤로 건 채, 대중들에게 장애인 자립생활을 홍보하겠다던 예쁜 주영아! 널 외롭게 죽게 해서 너무 가슴 아프다. 잘 가거라 주영아!”

중증장애인의 고달픈 삶을 외면한 정부를 향한 장애계의 통곡, 그 통곡이 투쟁으로 바뀐지 9년, 그들의 투쟁가는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19 거리두기 4단계 속 26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활동지원 24시간 보장하라”면서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서비스지원종합조사 전면 개편을 요구했다.

(위)2012년 10월 3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주영 활동가의 장례식장 속 환하게 웃고 있는 고인의 사진 (아래)장애인들은 당시 종로구에 위치한 보건복지부 건물로 향해 행진하며 ‘활동보조 24시간 제공’을 외쳤다.ⓒ에이블뉴스DB

■김주영 사망, ‘활동지원 24시간 투쟁’ 불씨

2012년 10월 26일 새벽, 서울 성동구 행당동 주택에서 화재로 세상을 떠난 중증장애인 김주영 활동가. 그는 당시 터치펜을 입에 물고 휴대전화 화면을 눌러 119에 “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동이 불편해 다섯 걸음에 불과한 현관으로 나가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당시 그가 이용하던 활동보조 시간은 하루 12시간. 지자체 추가제공시간까지 합쳐져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받았지만,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후 아무도 없는 불길 속 그는 무방비 상태였다. 33세의 짧은 나이, 너무나 허망하고 참담한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 당시 최중증 독거장애인이 추가급여를 적용한다 해도 월 최대 180시간, 하루 평균 6시간에 불과하는 등 서비스 시간 부족의 문제로 인한 장애계의 투쟁은 불씨가 올랐고, “활동지원 24시간을 보장하라”는 그들의 외침에 많은 언론도 주목했다.

국회와 정부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여 최중증 수급자의 추가급여를 확대하는 등의 법 개정안도 마련하며 장애계도 희망을 봤다. 현장에 있던 기자 또한 그때는 곧 머지않아 활동지원 24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장애등급제만 폐지된다면.

장애인 활동지원급여 구간별 수급자 현황 (2021년 7월 기준).ⓒ최혜영의원실

■사망 그 후, 장애인 일상 바뀐 게 없다

그리고 9년이 흘렀다. 2021년 10월 26일,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장애계가 염원했던 장애등급제 폐지가 2019년 7월부터 시행됐지만, 장애인들의 피부에는 하나도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등급제 폐지 후, 도입된 활동지원 수급량 판정 도구인 ‘서비스지원종합조사’를 통해 급여량이 하락하는 피해자만 더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의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비스 필요도가 높은 중증장애인의 경우, 하루 최대 16시간 받을 수 있는 1구간이 최상이지만, 올해 7월 기준, 활동지원 전체 수급자 8만7331명 중, 1구간은 단 5명(0.006%)에 불과하다.

또, 최중증으로 분류되는 1~6구간까지는 전체의 1.67% 수준이다. 반면, 85%의 수급자는 12~15구간에 집중돼있다.

2019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수급자격을 갱신한 5만7370명 중 급여가 하락한 장애인은 14.5%인 8333명이며, 평균 22시간, 최대 241시간까지 시간이 줄었다. 이들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3년간 한시적으로 기존 급여를 적용하는 ‘산정 특례’가 작동 중이지만, 내년 6월이면 종료된다. 그에 대한 복지부 대책은 발표된 바 없다.

26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측에 서비스지원종합조사 전면 개편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文정부 “말뿐인 등급제”, 이재명에게 희망을

김주영 활동가가 사망한 지 9년, 장애인들은 다시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을 요구했다. ‘활동지원은 중증장애인 생존권을 보장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원이다’, ‘활동보조는 생명이다’ 9년 전 통곡 속 외침과 같았다.

문재인정부를 향해 분노를 쏟아낸 장애인들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후보 측에 ‘종합조사표 전면 개편’을 요구하며, 다시 희망을 걸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은 “김주영 동기는 활동지원사가 있었다면 살아있었을텐데 너무 안타깝다. 당시 활동보조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사람들이 시간을 지원받지 못했고, 종합조사로 바뀌면서 달라질 수 있겠다는 기대와 소망을 가졌지만, 비참하게 무너졌다”면서 “종합조사에서 시간이 하락한 장애인에 대한 복지부의 대책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최 회장은 “활동지원은 중증장애인의 생존권이며 절대적인 서비스다. 장애유형, 특성에 맞는 종합조사표로 개편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노들장애인야학 김명학 교장.ⓒ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들장애인야학 김명학 교장도 “9년이 지난 지금도 보건복지부는 종합조사를 만들어 장애인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활동지원 24시간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종합조사표는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교장은 이재명 대선 후보를 향해 “모든 장애인에게 맞는 조사표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권달주 상임공동대표는 ‘예산’을 문제 삼으며, “수많은 민관협의체를 통해 논의했지만, 정부는 그저 자기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흉내만 냈을 뿐이다. 그저 수가 자연 인상분을 올렸는데 불구하고 예산 올렸다고 한다. 말뿐인 등급제 폐지”라면서 “이재명 후보가 바톤을 이어받아 공약에 종합조사표 전면개편 요구안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외쳤다.

만 20세가 된 중증 뇌병변장애인 딸을 키우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정순경 부대표는 “10년동안 부모운동하면서 사회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것은 시혜적 정책 뿐”이라면서 “전체적으로 풍선을 터뜨려서 예산 파이를 늘려줘야 하는데, 예산을 한정해놓고 저기 들어달라고 하면 저기 들어주고 하는 풍선현상이다. 너무 비참하고 힘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장애등급제 폐지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말만 바뀌었다”면서 “장애 개개인 요구에 맞춰서 지원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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