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꽃도 피고 새가 운다. 새가 우는 것이 아니라 새가 노래한다. 그러나 하늘은 미세먼지로 뿌옇다.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먼 나라 전설 같은 왕소군까지 갈 것도 없다. 코로나19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봄 같지 않은 봄을 맞고 있다.

봄 같지 않은 봄 속에서도 많은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아니더라도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이나 하얗게 하늘거리는 이팝나무꽃도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한 가지를 더 첨가하자면 무언 중에 내뱉는 장애인 비하 의식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4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는 '청맹(靑盲)과니 외교'이다. 이것은 두고두고 엄청난 국익의 손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감성과 이념, 시대에 뒤떨어진 편향된 사고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했다. ⓒ네이버 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4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는 '청맹(靑盲)과니 외교'이다. 이것은 두고두고 엄청난 국익의 손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감성과 이념, 시대에 뒤떨어진 편향된 사고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했다.

청맹과니(靑盲과니)는 한자 '청맹'과 우리말 '과니'가 합쳐진 말로 '청맹(靑盲)'이란 눈뜬장님'이란 뜻이다. 눈은 떠 있어도 실제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우리말로 시각장애인을 이르는 말이다.

안철수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가 눈을 뜨고도 앞을 보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청맹과니’ 외교라고 한 것 같다. 외교가 굴욕적이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꼭 청맹과니에 비교해야 했을까. 결국 장애인은 정상(?)이 아니므로 비정상이라는 말을 하려니까 장애인을 가져와서 빗댈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추미애 전 장관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정치편향 논란과 관련, "외눈으로 보도하는 언론과 달리 양 눈으로 보도하는 뉴스공장을 타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외눈'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비판을 받자 "시각장애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며, 장애인 비하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했다. "진실에는 눈감고 기득권과 유착돼 '외눈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편향성을 지적한 것"이라며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오히려 유감이라고 반박했다.

추 전 장관이 말한 ‘외눈’이 장애인 비하가 아닐 수도 있고, 안철수 대표의 ‘청맹과니’도 장애인 비하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추 전 장관의 ‘외눈’이나 안철수 대표의 ‘청맹과니’에는 장애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이 그 말을 할 때는 조금도 장애인을 의식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어느 마을에 대추나무가 많은 집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대추나무집이라고 불렀다. 대추나무집 아들이 월남전에 참전했는데 팔을 하나 잃고 돌아왔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대추나무집이 아니라 외팔이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집에는 여전히 대추나무가 많아서 가을이면 빨간 대추가 주렁주렁 열리는데도 왜 대추나무집에서 외팔이집이라고 바뀌었을까? 아마도 외팔이집이라고 부르는 게 사람들에게 각인하기 더 쉬웠던 모양이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오래전부터 장애인은 보통 사람들보다 열등하고 못났다는 편견과 차별의식이 들어 있다. 그래서 장애인과는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친구로도 사귀지 못하게 해서 오히려 놀림의 대상이 되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사돈으로도 맺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장애인은 결혼하기도 힘들었다.

모든 것이 비장애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장애인에 대한 의식이었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장애인에 대한 비하 의도 없이 무심코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단순한 실수라며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는 잘한다.

물론 추미애 전 장관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조차도 잘 모르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도 "'청맹과니'는 눈은 떠 있어도 실제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라고 부연 설명까지 하면서도, ‘청맹과니’가 시각장애인을 지칭하는 비하 용어라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황금 거북. ⓒ이복남

‘외눈’으로 문제가 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번에는 ‘청맹과니’라니 우리 사회 지도자(?)들의 장애인 인식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잊게 한다. 물론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사과 외에 그 어떤 벌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무심코’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보고 듣고 자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 깊숙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이 자리 잡게 된다. ‘장님 잠 자나마나’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애인 관련 속담들이 그 반증이다. 시각장애인은 눈을 감고 있으니 잠을 자는지 깨어 있는지도 잘 모른다는 그야말로 세 살 아이도 알 수 있는 어이없는 속담을 만들어 낸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지난해 1월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는 “선천적인 장애인은 후천적인 장애인보다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라며 정말 얼토당토않은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이같이 무의식중에 나오는 장애인 비하 발언은 대부분이 비장애인들이지만, 가끔은 같은 장애인이라도 유형이 다르거나 등급이 다르면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 속에 자신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상만사는 언제나 ‘내로남불’이 우선하므로. 이처럼 ‘내로남불’이 만연하자 교수들이 뽑은 2020년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는 ‘내로남불’ 즉 ‘아시타비(我是他非)’다. 나는 바르고 너는 아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왜 모두가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만 내세우는 것일까.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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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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