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할리스 커피전문점 앞에서 ‘1층이 있는 삶’ 플래시몹을 펼치는 장애인들 모습.ⓒ에이블뉴스

AM 11:00 11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 “장애인도 고객이다”,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화하라” 알록달록 피켓을 든 수상한(?) 장애인과 비장애인 20명이 모여, 장애인들에게도 ‘1층이 있는 삶’을 달라고 외쳤다. 이들 앞에는 커피전문점·편의점 등 생활편의시설 계단에 가로막힌 휠체어를 표현한 미니어처 모형이 놓였다.

“투썸플레이스가 계단에 막혀있으면 스타벅스에 가면 되고, 스타벅스가 계단에 막히면 잘 돼 있는 곳에 가면 됩니다. 근데 하나하나 포기하고 양보하면, ‘몸도 불편하신 분이 집에서 내려 드시는 것이 좋지 않냐’가 결론이 됩니다. 저는 가본 곳이 아니라, 가보고 싶은 곳에 가고 싶습니다.” -법무법인 한남 이재근 변호사-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된 지 20년 됐고, 2006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비준됐으면, 많이 기다린 것 아닙니까. 이 양심 없는 대한민국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입구에 계단과 턱이 있는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입니다! 내 돈 내고, 내가 사용하고 싶은 물건 사고 싶습니다! 이 문제를 모두에게 알립시다!”

11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엔젤리너스 커피전문점 앞에서 ‘1층이 있는 삶’ 플래시몹을 펼치는 장애인들 모습.ⓒ에이블뉴스

AM 11:30 수상한 그들은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30분이 지나서야 움직였다. 장난감 뿅망치를 든 채, 광화문광장 횡단보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엔젤리너스 커피전문점. 점심시간 즈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러 온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

‘뿅·뿅·뿅’.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계단 턱 앞에 멈춰, 사정없이 계단을 내리쳤다. “커피 먹고 싶어요.”, “들어가고 싶어요.”, “계단 없애주세요!”.

한 사람당 30여 초간 뿅망치를 두드리던 장애인들은 이내 바로 옆 건물인 스타벅스로 옮겨 휠체어를 막는 야속한 작은 계단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들어가고 싶어요.”, “커피 주세요.”

이들의 행동에 놀란 직원이 나와 “고객님, 촬영하시면 안 돼요”라고 구슬렸지만, “계단으로 차별을 하고 있다”면서 강하게 대응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뿅망치를 두드리는 시간 동안,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커피 한 잔의 여유, 우리도 가지고 싶다’는 피켓을 높이 들며, 침묵시위를 이어갔다.

‘커피 한 잔의 여유, 우리도 가지고 싶다’는 피켓을 든 비장애인 활동가.ⓒ에이블뉴스

PM 12:00 10여명의 장애인들은 할리스커피, 그리고 CJ에서 운영하는 화장품·생활용품 판매점인 올리브영까지 거쳐 ‘뿅·뿅·뿅’. 정오가 돼서야 수상한 퍼포먼스가 마무리됐다. ‘영업 방해’라며 항의하는 일부 직원의 태도는 씁쓸했지만, 커피전문점의 높은 콧대를 ‘쾅쾅’ 꺾으며 한풀이를 했다.

장애인들은 왜 갑작스럽게 나타나 턱과 계단을 없애달라고 주장하는걸까?

22년 전인 1998년 4월, 우리나라 정부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이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같은 법 시행령에는 ‘1998년 4월 11일 이후에 건축되거나 재축, 용도 변경된 바닥면적 300㎡(약 90평) 이상’의 공중이용시설들에만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즉, 90평 이하의 작은 커피전문점, 편의점, 약국 등 생활편의시설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없다.

비장애인은 인식할 수 없던 계단, 턱 하나로, 장애인은 손님 취급도 못 받는 것이다.

턱 때문에 전동휠체어가 접근하지 못하는 명동 커피전문점 입구.ⓒ에이블뉴스DB

이에 2018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7개단체는 ‘생활편의시설 장애인 접근 및 이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꾸리며, ‘1층이 있는 삶’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장애인 접근 차별 문제를 두고, 투썸플레이스, GS리테일, 호텔신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차별 구제소송을 제기했으며, 2년간 소송을 진행한 끝, 투썸플레이스는 조정 협의가 진행됐다. 나머지 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업체들과는 12월 10일 재판이 재개될 예정이다.

소송과 별도로 공대위는 이날 플래시몹을 시작으로 장애인등편의법에서의 300㎡라는 ‘편의시설 의무 기준’을 삭제하는 법 개정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플래시몹에 참여했던 배재현씨.ⓒ에이블뉴스

플래시몹에 참여했던 휠체어 사용 장애인 배재현 씨(42세, 남)는 “커피점은 간혹 턱이 없는 때도 있는데, 편의점은 거의 턱이 있어서 못 들어간다. 사람을 불러서 물건을 사고 있다”면서 “오늘 퍼포먼스를 펼쳤던 커피점의 턱은 조금만 깎아도 될 것 같은데 너무 아쉽다. 1층이 있는 삶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동휠체어를 탄 채 선두에 서 뿅망치를 두드렸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는 20년째 턱과 계단에 막혀 음식점과 상점을 멍하니 바라봤던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내가 들어가서 커피 한 번 우아하게 마시고 싶은 바람 거창하게 투쟁하셔 만들어야 하는 사실이 암담하다”면서 “턱을 부스고, 장애인등편의법을 개정하기 위해서 국회를 두들기고 책임지지 않는 사업주를 바꿔내는 투쟁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공대위는 매주 수요일 오후 12시 서울 신촌 등 도심지를 중심으로 장애인의 생활편의시설 접근과 이용을 위한 ‘1층이 있는 삶’ 수상한 플래시몹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올리브영 턱앞에 멈춘 휠체어.ⓒ에이블뉴스

스타벅스 앞에서 피켓을 든 모습.ⓒ에이블뉴스

장애인등편의법 개정하라 피켓을 든 모습.ⓒ에이블뉴스

11일 플래시몹을 마친 후 마무리 기자회견 전경.ⓒ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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