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 : “사또, 큰일 났습니다. 큰일, 봉사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지팡이를 두드리며 사또를 만나게 해 달라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사또 : “무슨 일로 나를 만나려고 한다더냐?”

이방 : “그건 잘 모르겠지만, 봉사들이 사또를 못 만나면 다 죽는다고 난립니다.”

사또 : “도대체 봉사들이 무슨 일로 다 죽는다 말인가? 일단 들라 해라.”

이방은 사또의 명을 받고 동헌 문을 활짝 열고 봉사들을 동헌 마당으로 안내했다.

사또 :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만나려 하느냐?”

봉사들 : “사또! 우리들은 이제 다 죽게 생겼으니 제발 우리 봉사들을 살려주십시오.”

사또 : “아니, 누가 너희들을 죽인다고 이 소란이냐?”

봉사들 : “누군 누구겠소. 눈 뜬 사람들이 눈먼 봉사들을 다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사또 : “당최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자세히 말해 보아라.”

봉사들 : “앞을 못 보는 우리 봉사들은 경을 읽어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소경 판수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봉사들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경을 읽는 바람에 우리 봉사들이 밥벌이로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사또 : “뭣이라! 눈이 멀쩡한 사람들이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눈먼 봉사들의 일을 빼앗는단 말인고. 참으로 괘씸한지고!”

사또는 대로하여 이방에게 지필묵을 가져와라 일렀다. 이방이 지필묵을 대령하자 사또가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글은 '有目人 誦經時 丈打殺'이었다.

봉사들은 이방이 읽어 주는 사또의 판결문에 흡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동헌 문을 나섰다.

有目人 誦經時 丈打殺(유목인 송경시 장타살)

눈을 보는 자가 경을 읽을 때는 지팡이로 때려죽여도 좋다.

이 글은 조선후기 동래부사가 써 준 판결문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有目人 誦經時 丈打殺’이라는 판결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산맹인역리학회에서 보관해왔으나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는 바람에 눈감은 사람들의 한계로 인해 안타깝게도 유실되었다고 한다.

김홍도의 지팡이를 든 두 맹인. ⓒ구글 이미지

필자가 장애인복지를 처음 시작할 무렵인 40~50년 전만 해도 간혹 비시각장애인(정안인)이 안마업을 하면 시각장애인들이 몰려가서 흰지팡이를 두드렸다.

조선시대의 경(經)이 시대상황에 따라 안마(按摩)로 바뀐 것이지만, 丈打殺(장타살)은 아니고 흰지팡이를 두드렸는데 오랫동안 전해 내려 온 有目人 誦經時 丈打殺(유목인 송경시 장타살)의 관습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비시각장애인들의 안마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 예전처럼 시각장애인들이 몰려가서 지팡이로 두드리는 행위는 별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자 비시각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법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만 안마사가 될 수 있다는 규칙은 일반인이 안마사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위의 글은 몇 해 전 헌법재판소에서, 그동안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되던 안마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 필자가 부산일보에 기고한 글의 일부분이다.

안마사제도는 시각장애인의 사회적 활동과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기 위해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법적 보장을 받아 온 독점적 지위로써 시각장애인의 자립기반이자 정당한 권리이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안마사제도는 일반인들의 의식에도 안마사는 원칙적으로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되는 업종이라는 법의식이 형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고, 시각장애인들도 안마업은 자신들에게만 허가된 업종이라고 여겨 그에 관한 정부 정책에 대해 신뢰를 형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헌재에서 시각장애인의 안마업에 위헌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이 들고일어났다. 그야말로 생사결단의 순간이었다.

결국 2017년 12월 28일 헌재에서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을 부여토록 한 「의료법」 제82조 1항 등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이제 시각장애인의 안마는 법에서 인정한 정당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9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재판부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비시각장애인 안마업체 대표에게 “모든 종류의 안마를 시각장애인 자격안마사가 독점하는 것은 의료법 위임 목적취지에 반하고, 처벌 범위가 부당하게 확장된 결과를 초래해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라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한민국헌법」

제34조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대한민국헌법」 제34조에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 제82조를 통해서도 일정한 자격 과정을 이수한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사 자격을 부여해 시각장애인들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법률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은 맹학교 고등부 3년 동안 이료과목(理療科目)에서 침술과 안마를 배우고 졸업하면 안마사 자격을 얻는다. 맹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중도 시각장애인은 중졸 이상의 학력으로 안마수련원에서 2년 과정의 이료과목에서 역시 안마수기 등을 배우고 안마사 자격을 취득한다.

「의료법」

제82조(안마사) ①안마사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시각장애인 중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로서 시ㆍ도지사에게 자격인정을 받아야 한다. <개정 2008. 2. 29., 2010. 1. 18.>

1. 「초ㆍ중등교육법」 제2조제5호에 따른 특수학교 중 고등학교에 준한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제4항에 따른 안마사의 업무한계에 따라 물리적 시술에 관한 교육과정을 마친 자

2. 중학교 과정 이상의 교육을 받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하는 안마수련기관에서 2년 이상의 안마수련과정을 마친 자.

맹학교 고등부 3년이나 수련원 2년을 졸업하면 「의료법」 제82조에 의거한 안마사 자격을 얻는다. 예전에는 안마사가 보건복지부 면허증이었는데 현재는 시·도지사 자격증이다.

헌재에서도 비시각장애인들의 반발로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위헌이라고 했다가, 시각장애인들이 반발하자 「의료법」 제82조가 합헌이라고 결정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자격 비시각장애인에게 무죄판결을 내리다니.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시각장애인의 고유영역인 안마를, 헌법에서도 보장된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저버린 채, 헌재에서 내린 합헌을 무죄라고 뒤집었으니 그 옛날 동래부사보다 못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을 과연 누가 신뢰할 것인가.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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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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