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상군의 부모 윤은철, 이혜진 부부 사진. 이들은 아들의 장애등록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에이블뉴스

에이블뉴스는 지난 6월 1일 “발달장애자녀 장애재판정 탈락 ‘날벼락’”이란 제목으로 지적장애 재판정에서 탈락한 장애인 부모의 목소리를 보도한 적 있습니다. 당시 국민연금공단에 장애재판정 이의신청을 넣고 기다리고 있다는 부모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잘못된 장애재판정 기준을 지적한 바 있죠.

5월 27일부터 6월 26일까지 진행된 국민청원에는 총 817명이 참여했습니다. 청와대의 답변을 받을 수 있는 20만명 기준에 못 미치는 숫자지만, 장애계에서는 이들의 사정에 공감의 목소리를 보내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2개월여가 흐른 현재, 해당 국민청원을 제기한 부모로부터 다시 한번 연락이 왔습니다.

“이의신청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최종 ’등급 외‘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관심 갖고 보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민청원을 통해 대대적 이슈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가정에는 큰 변화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자, 지난 30일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윤승상 군(20세, 남)의 가정을 찾아 승상 군의 부모인 윤은철(50세), 이혜진(49세) 씨를 만났습니다.

윤승상 군의 심리평가 보고서 등 서류들 모습.ⓒ에이블뉴스

“처음 장애판정을 받았을 때 너무 믿고 싶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에게 ‘나중에 장애등록 꼬리표 뗄 수 있냐’고 물어본 적 있었어요. 열심히만 키우면 장애 꼬리표를 뗄 수 있겠구나 했는데…지금은 피눈물이 나요.”

올해로 20살이 된 승상 군은 학교 졸업과 동시에 갖고 있던 장애등록이 취소되며, 전공과 이후 취업의 꿈도, 가족들의 희망도 모두 꺾였습니다.

2008년 만 6세 당시 지적장애 3급 판정 이후, 2012년 재판정으로 똑같이 지적장애 3급을 받았는데, 올해 초 실시한 장애재판정 결과에서 갑작스러운 ‘등급 외’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장애정도판정기준’ 고시에 따르면, 지적장애는 웩슬러 지능검사 등 개인용 지능검사를 실시하여 얻은 지능지수(IQ)에 따라 판정하며, 사회성숙도 검사를 참조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능지수는 언어성 지능지수와 동작성 지능지수를 종합한 전체 검사 지능지수를 말하며, 전체 지능지수가 연령별 최저득점으로 정확한 지능지수 산출이 어려운 경우에는 GAS 및 비언어적 지능검사도구(시각-운동통합발달검사:VMI, 벤더게슈탈트검사:BGT)를 추가 시행하고, 검사내용, 검사결과에 대한 상세한 소견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장애정도기준.ⓒ보건복지부

장애정도기준은 ▲지능점수 35미만, 일상생활과 사회생활 적응 현저히 곤란 ▲지능지수 35이상 50미만, 일상생활의 단순한 행동 훈련 가능 ▲지능지수 50이상 70이하, 교육을 통한 사회적·직업적 재활 가능 등에 해당해야 합니다.

승상 군의 장애판정 기록. 위부터 2008년 최초 판정, 2012년 재판정, 2020년 재판정.ⓒ에이블뉴스

승상 군의 장애판정 기록 내용은 이렇습니다.

▲2008년 언어이해 66점, 지각추론 84점, 작업기억 66점, 처리속도 86점, 전체지수 68점으로 지적장애 3급 판정 ▲2012년 언어이해 53점, 지각조직 74점, 주의집중 61점, 처리속도 97점, 사회적응 지수 69점, 전체지수 62점으로 지적장애 3급 재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020년 1월 언어이해 64점, 지각추론 84점, 작업기억 81점, 처리속도 100점. 일반지능지수(GAI), 전체지수 74점, 사회지수(SQ) 51점(만 8세 2개월)을 받았습니다. 장애등록기준인 ‘지능점수 50이상 70이하’를 초과한 74점을 받아 2월 말 ’등급외 처분’을 받은 겁니다.

승상 군의 부모는 ‘등급 외’ 처분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검사결과 평균점인 100점을 받은 ’처리속도’를 제외하고는 언어이해, 지각추론, 작업기억, 일반지능지수 모두 ’매우 낮음‘, ’평균 하‘ 결과가 나왔는데, ’처리속도‘가 평균값을 올렸단 이유로 다른 지수는 무시하냐는 지적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받은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장애가 있는 아이였는데, ’처리속도‘ 하나만 반짝 잘했다고, 모든 지수를 무시한다는 게 너무 억울하죠. 승상이는 낯선 사람들과 눈도 못 마주치고, 소통도,의사표현도 안 돼요.아이가 살아온 과정을 보고 평균을 나눠줘야 하는데.”

즉각 국민연금공단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회성숙도도 고려하긴 하지만 전체지수가 70을 넘어섰기 때문에, 사회성숙도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습니다. 판정결과는 바뀔 수 없으며,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밖에 대안이 없다는 그의 통화 내용에 부부는 절망했습니다.

“뭐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에 부부는 행정심판, 이의신청,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국민청원 댓글에 달린 방송사 취재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응할 정도로.

혜진 씨 부부가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13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후 인터뷰 중인 윤승상 군.승상 군이 얼굴이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 모자이크 처리함.ⓒ대한장애인체육회 공식 유튜브 캡쳐

“윤승상 선수만의 꿈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게 있을까요?”

“국가대표 선수나 프로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윤승상 선수 앞으로 꼭 좋은 국가대표 선수가 되길 응원할게요.”

-대한장애인체육회 공식 유튜브 인터뷰 中-

지난해 5월 제13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볼링개인전과 2인조에서 금메달을 딴 승상 군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56초의 짧은 인터뷰를 위해 아버지의 도움으로 여러 번 리허설을 거쳤습니다.

중원중학교 1학년(통합학급) 재학 당시, 방과 후 수업을 계기로 볼링에 흥미를 느낀 승상 군은 장애인 볼링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평소 말 한마디도 안 하는 아들이 볼링장에만 다녀오면 신나서 이야기를 쏟아놓는 모습을 보고, 부부도 아들의 꿈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기로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며 본격적으로 볼링에 뛰어든 뒤, 1년 만에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경기도 대표로 나와 개인전에서 1등을 하며, 볼링 유망주로 우뚝 섰습니다. 중흥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볼링부로 활약하며, 장애인 국가대표로도 선발됐습니다.

승상 군의 방은 온통 ‘볼링’ 천국이다. 볼링대회에 나간 승상 군의 사진, 수많은 메달, 장기판에 레고를 볼링핀 삼아 노는 모습.승상 군이 얼굴이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 모자이크 처리함.ⓒ에이블뉴스

승상 군의 방은 온통 ‘볼링’ 천국이었습니다. 수많은 메달과 트로피, 볼링핀 모형과 볼링을 치고 있는 사진들까지. 장기판에 올린 레고를 볼링핀과 공 삼아 온종일 노는 것이 낙이라고 합니다. 근처 볼링장을 찾아 3~4시간씩 혼자 볼링을 치는 시간이 승상 군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차마 아들에게 장애인 국가대표 자격이 박탈됐다는 말을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1년에 한 번씩 국가대표 갱신을 해야 하는데, 장애등록 취소로 아들의 꿈이 모두 물거품이 됐어요. 기업과 취업 연계까지 이야기되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무너진 거예요.”

윤승상 군과 그의 어머니 이혜진 씨 사진..승상 군이 얼굴이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 모자이크 처리함.ⓒ에이블뉴스

혜진 씨 부부는 다시 운동화 끈을 바짝 조여 맸습니다. 이번 국민청원을 계기로 부모들로부터 응원도 받았고, 장애인단체에서 행정소송을 도와주겠다는 손길을 받으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에이블뉴스의 기사를 보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온 장애부모단체 간부는 자폐성 장애로 다시 장애등록을 해보자며, 자폐 검사를 받을 병원을 추천해줬습니다. 그리고 인터뷰가 있던 당일, 혜진 씨 부부는 승상 군과 함께 첫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내년 말이면 승상이가 전공과를 졸업해요. 그 전에 꼭 아이가 장애등록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7~8세 지능을 가진 아이가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면 뭘 할 수 있을까요?”

장애인 볼링 국가대표에서 박탈된 승상 군은 지금도 볼링선수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사진은 굳은살이 박히고 손톱이 깨진 승상 군의 손가락.ⓒ에이블뉴스

앞으로의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해보자고 혜진 씨 부부는 다시금 손을 맞잡습니다.

마지막으로 혜진 씨 부부가 4월 행정소송을 진행할 당시 승상 군의 전공과 담임교사가 작성한 진정서를 덧붙입니다. 하루아침에 목표가 사라진 승상 군이 다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볼링선수로 꿈을 이루길 응원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적장애인으로 또 특수교육대상 학생으로 살아온 윤승상 학생이 하루아침에 일반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록 특수교육과 특수교육 관련 서비스를 꾸준히 받으며 본인이 가진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결과로 검사의 결과가 좋아질 수도 있으나, 결코 일반인과 같은 수준의 수행을 보일 수는 없습니다

학생의 특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 활동 및 사회적 지원을 통해 지적장애인으로서 장애를 극복하고 꿈을 이루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장애등록과 관련한 판단을 재고해 주시기를 담임교사로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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