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실시한 대피 훈련 모습. 재빨리 대피하지 않고 미적대거나 우왕좌왕만 하고 있다.ⓒ에이블뉴스

“불이야!” 최근 장애인단체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대피 훈련을 한 결과, 사이렌 소리가 ‘윙~’ 울려도 자신의 자리에서 미적대며 핸드폰을 만지는 등 재빨리 대피하지 않았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을 도와주는 비장애인 직원들은 밖으로 나와서도 어디로 대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훈련을 평소 해왔던 장애아 전문 어린이집은 ‘윙~’ 소리가 나자마자 교사들이 민첩하게 장애아동을 이불로 감싸거나, 안고 뛰는 등 신속하게 대피했다.

이처럼 장애인 재난을 대비한 매뉴얼 책자만 발간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불이 났을 때 재빨리 대피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충남대학교 이정수 건축학과 교수는 31일 한국장애인연맹(DPI)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 실제적으로 대피할 수 있는 장애유형별 재난 안전 매뉴얼과 이를 통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재난으로부터 장애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후 광주 한 아파트 12층에서 화재가 발생, 119에 의해 19분 만에 진화됐지만, 거동이 불편했던 발달장애인 황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1월에도 경기 화성의 단독주택에서 원인이 알 수 없는 불이나 청각장애인 A씨가 숨졌다.

현재 국내에는 장애인 피난 매뉴얼이 몇 개 발간돼 있지만, ‘장애인과 같이 혼자 대피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비상시 도움을 줄 동료를 반드시 지정해 둡시다.’라고 설명돼 있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충남대학교 이정수 건축학과 교수.ⓒ에이블뉴스

이 교수는 “매뉴얼 책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캐비넷에 보관함으로 통해서 심리적 위안에 불과하다. 불이 나면 일단 나가야 한다”면서 “건물, 시설별로 장애유형에 따른 실제적인 피난 방법을 담아내야 한다”고 피력했다.

실제로 이 교수가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와 장애아 전문 어린이집에 대한 화재 대피 훈련을 한 결과, 상황은 극명히 대비됐다.

이 교수는 현재 한국장애인개발원과 ‘이룸센터 맞춤형 장애인 재난대응 행동매뉴얼 개발연구’를 통해 장애인 입주 건물의 재난대응 행동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이 연구 일환으로 총 17개 장애인단체가 입주한 이룸센터에서 재난 대피 훈련을 실시한 결과, ‘불이야!’란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나도 직원들은 몸을 빨리 움직이지 않고, 심지어 핸드폰을 만지면서 천천히 나왔으며, 계단을 내려가는 과정에서도 우왕좌왕 했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과 이를 도와주는 비장애인들도 복도에서 어디로 대피할지 몰라하는 장면들이 영상에 기록됐다.

장애아 전문 어린이집 재난 훈련 영상.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마자 장애아동들을 안고 신속하게 대피했다.ⓒ에이블뉴스

반면, 훈련을 많이 해왔던 어린이집의 훈련 영상에서는 ‘불이야!’ 소리가 나자마자, 어린이집 교사들은 민첩하게 이불로 장애아동들을 감싸고, 뛰어서 안고 나가는 등 신속하게 대피했다.

이 교수는 “훈련을 많이 해왔냐, 안했냐에 따라 행동이 완전 다르게 나타난다”면서 “우아한 피난이란 없다. 훈련과 교육을 통해 기어서라도 나가게 해야 한다”면서 “하나의 표준매뉴얼이 아닌, 특수한 상황과 시설에 맞춘 재난행동매뉴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1일 서울 이룸센터에서 열린 ‘장애유형별 재난 안전 매뉴얼 연구 및 재난대응 방안을 위한 토론회’ 모습.ⓒ에이블뉴스

서울소방재난본부 구조대책팀 장충식 팀장도 "우아한 피난이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대피하지 못하면 다 죽게 된다. 화재현장에 가보면, 불에 타죽은 사람보다 연기에 질식해 죽는다"면서 "손수건을 갖고 다니면서 코만 막고 있어도 살 수 있다"고 안전 인식에 대한 중요성을 피력했다.

이어 그는 "평소 교육이 중요하다. 충북 제천 사우나에서 29명이 사망했고, 밀양에서 49명이 사망했지만, 같은 기간 세브란스병원 화재에서는 한 명의 사상자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합동 피난훈련을 여러 번 했다고 하더라. 교육의 효과"라면서 평소 재난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노태형 대리도 "이룸센터 각층에는 피난대피보조기기인 KE-체어가 비치돼있지만, 그 용도와 사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직원들이 손에 꼽는다. 아무리 매뉴얼을 잘 만들어도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고 더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 대리는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지켜야 하고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협회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직원이 함께 협력하고 훈련받는 체계를 구축하려고 한다"면서 "장애 관련 종사자들의 보수교육에도 안전과 피난 교육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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