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20일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강당에서 ‘등급제 폐지에 따른 시각장애인 대응 방안 마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에이블뉴스

“장애인복지 하는 양반들, 교수들이 시각(장애) 쪽에 아주 관심이 없다.”

“(종합판정표를) 슬쩍 봤는데 시각장애인들의 급여량이 깎인다. 약 7.6% 정도”

“안마사 위헌 판결 이상의 위기다. 종합판정표가 우리에게 맞지 않으면 찢어버리겠다.”

내년 7월부터 본격 장애등급제 폐지가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시각장애인계에서 복지 축소 부작용이 올 것이라는 날선 비판을 한목소리로 쏟아냈다. 특히 이들은 등급제 폐지가 ‘제2의 안마사 사태’라며, 정부를 향한 강력한 투쟁까지 예고 했다.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20일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강당에서 ‘등급제 폐지에 따른 시각장애인 대응 방안 마련 토론회’를 개최, 내년 실시될 등급제 폐지에 따른 입장을 표명했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현재 의료적, 행정 편의적 기준만을 적용해 획일적으로 주어졌던 서비스 방식에서, 장애인의 욕구와 주거환경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국정과제로 공식화 돼왔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밝힌 장애등급제 폐지는 내년 7월 우선적으로 활동지원, 보조기기 등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에 등급을 없애고 종합판정도구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2020년 이동지원, 2022년 소득‧고용지원 서비스 등 단계적으로 종합판정도구를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종합판정도구는 현재 복지부가 마련 중인 상태로, 아직 공개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강윤택 소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서울지부 윤상원 지부장,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조봉래 원장, 대구대학교 직업재활학과 조성재 교수. ⓒ에이블뉴스

■“시각장애인 불리, 목소리 큰 단체 집중되면 안 돼”

먼저 이날 시각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서비스를 판정하는 종합판정표가 시각장애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정부 논의 과정에서의 불만을 터뜨렸다.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강윤택 소장은 “장애등급제가 폐지 된다고 해서 재정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복지 욕구를 가진 당사자 조직이 늘어나면서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의 서비스 양 자체가 줄어드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면서 “종합판정표가 만들어지는 과정, 전달체계 등에서 시각장애인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민관협의체가 등급제 폐지 논의를 하고 있다는데, 종합판정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달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내용이 이야기되는지 우리는 전혀 모른다”면서 “재정이 확대되더라도 시각장애인의 복지서비스가 제대로 보장받기란 꿈”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윤상원 서울지부장은 “(종합판정표를) 슬쩍 봤는데 시각장애인들의 급여량이 깎인다. 약 7.6% 정도”라면서 “활동보조처럼 시각장애인 분야가 역차별 받는 일이 없도록 장애유형간 힘센 단체나 목소리 큰 단체에 혜택이 집중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조봉래 원장은 “등급제 폐지까지 불과 1년여밖에 남지 않은 현실에서 제도개편을 위한 준비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민관협의체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는데 어떠한 종합판정표를 사용할 것인지 대중에 공개된 사항이 거의 없다”면서 “어떤 사항들을 논의하는지, 과연 다양한 장애 당사자들의 의견을 민주적 절차 속에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만 더 커진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대구대학교 직업재활학과 조성재 교수는 등급제 폐지 이후 시각장애인의 불합리성에 대해 학계는 물론 시각장애인 대표 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 조차 관심이 적다고 질타했다.

조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는 없다. 요즘 발달장애인지원법이 만들어지면서 발달 쪽에 관심이 생겼지만, 거의 모든 것들이 지체장애인 복지와 지체장애인 재활만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면서 "장애인복지 하는 양반들, 교수들이 시각 쪽에 아주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었다면 종합판정표 만들 때 시각장애인의 목소리를 하나도 안 넣겠냐"고 꼬집었다.

이어 "제일 화나는 것이 연합회(한시련)다. 등급제 폐지와 관련해 정책 영향이 강해야 하는데, 선거에만 관심 있고 정책팀은 팀장도 없이 공석"이라면서 "등급제 폐지 이야기가 나온지가 6년인데, 보건복지부와 소통창구를 만든 적도 없고 분노감을 감출 수 없다. 시각장애인 대표 단체가 저러면 장애등급제 폐지를 어떻게 고민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20일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강당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 토론회’ 모습. ⓒ에이블뉴스

■제2의 안마사 사태, 시각장애인계 강력 투쟁 예고

이에 이들은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해 시각장애 당사자들이 피해 보지 않도록 한시련을 중심으로 공동행동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입 모아 말했다.

조성재 교수는 ”지금이라도 한시련 등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관련 주체들은 장애등급제 폐지와 종합판정표 개발 등의 과정에 적극 참여해 시각장애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배제와 무관심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동작자립생활센터 강윤택 소장도 ”시각장애인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등급제 폐지를 시각장애인에 대한 안마사 제도의 위헌 판결과 같은 위기로 인식하고 총력을 다해야 한다“면서 ”일차적으로 종합서비스인정조사표에서 서비스가 감소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그는 ”한시련에서도 등급제 폐지 이후 종합판정도구가 시각장애인들의 급여량이 하락한다는 결과를 알고 있다. 내부에서 등급제 폐지 발표를 무기한 연기시키고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면서 ”전문가들은 정책 제안에 힘을 실어주시고, 당사자들은 몸으로 강력한 투쟁해서 시각장애인 삶을 훼손하는 등급제 폐지가 이뤄지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촉구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 전 장애계를 모아두고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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