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한국장애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자신의 삶을 적은 원고를 읽고 있는 정신장애인 김미현 씨.ⓒ에이블뉴스

“스물네 살 아까운 청춘에 조현병이 발병한 이후 저는 마흔 두 살이 됐습니다. 18년이 지난 지금,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1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학회 추계 학술대회. 떨리는 마음으로 단상에 선 ‘천둥과 번개 자조모임’ 참여 당사자인 김미현 씨가 자신의 삶을 적은 원고를 읽어나갔다. 자살시도까지 겪은 고통을 지나 그녀는 “저는 잘 살고 있다”고 당당히 밝혔다.

스물 네 살이던 1999년,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가 조금 이상해졌다. 그해 봄부터 외로움을 많이 느끼더니, 급기야 경기방송의 한 디제이가 그만둔다는 소식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너무 가슴 아팠단다.

너무나 슬픈 나머지, 깊은 우울의 나락으로 뚝 떨어지며 자살기도까지 했다.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면유도제를 다량 구입해 페트병에 모두 담아 ‘꿀꺽꿀꺽’ 마셨다. 하지만 김 씨는 다음날 눈이 떠지며 자살에 실패, 우울한 날들이 이어졌다. 잘 안 마시는 술도, 담배를 몰래 피웠다.

모두들 나를 욕하고 비웃는 것 같아, 밤에는 길거리를 헤매고 눈물만 흘렀다. 이상 징조에도 혼자서 병원을 찾아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결국 그녀의 이상함을 느낀 가족들이 병원에 데려갔고, 그 해 11월, 조현병 병명을 받았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고, 병이 조금씩 호전 되며, 2003년 장애인 등록을 했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새로운 낯설었지만 기죽지 않았다. 구청 공공근로도, 장애인복지관을 통해 회사생활도 했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사회 경험을 하다가 병이 재발해서 여섯 차례 병원에 입원도 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았고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김 씨는 한 사회복지사의 권유로 지난 2011년 서울 봉천동에 있는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에서 정신장애인의 문학교실에 참여했다.

그 길로 그녀의 새 인생이 시작됐다. 그 해 양주김삿갓 전국문학대회에서 장원, 전국김소월백일장 준장원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룬 것. 그녀의 글솜씨를 눈여겨본 문학교사 강사의 추천으로 월간지 ‘한국산문’ 등단도 이뤘다.

“운이 좋아서였는지, 주님의 뜻이었는지 그동안 블로그에 써오던 시들을 묶어서 전자책 ‘눈을 감으면’ 을 출간했습니다. 한 때 베스트셀러에 올라 기쁨이 두 배가 됐기도 했죠.”

1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이블뉴스

현재 김 씨는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기획한 정신장애인들의 팟캐스트 방송 ‘10데시벨’에 참여하고 있다.

‘10데시벨’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소리를 뜻한다. 즉, 정신장애인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직접 정신장애인들이 대본부터 제작, 방송까지 맡는다.

김 씨는 지난 1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한 차례 고비를 겪을 듯 했지만, 관리를 잘 한 탓에 무사히 넘긴 채 어머니와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저는 종이로 된 책을 내보고 싶다는 꿈 외에 커다란 욕심이 없습니다. 그저 지금처럼 병이 재발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게 희망입니다. 좀 더 나은 글을 쓰고 싶고 좋은 시를 계속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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