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광화문역 지하보도 농성장에 마련된 영정에 조문을 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 ⓒ에이블뉴스DB

1836일(8월 30일 기준). 장애인권 활동가들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요구하면서 광화문역 지하보도에 들어가 인내한 시간이다.

초기에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지 기준 폐지만을 외쳤지만, 장애인거주시설의 문제가 불거지자 폐지요구에는 장애인거주시설도 포함됐다.

만 5년, 이 기간 동안 2번의 정권이 바뀌었고 100만여명의 시민이 제도의 폐지를 염원하는 서명을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농성은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의해 잠정 중단됐다. 지난 25일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농성장에 방문해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 기준, 장애인거주시설의 폐지를 위한 민관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자는 제의에 화답한 것.

이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공동행동은 오는 9월 5일 농성을 잠정중단 하고, 보건복지부와 함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장애인거주시설 폐지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을 하게 된다.

이 같은 결과를 이끈 것은 매서운 추위와 무더위에도 광화문역 지하농성장을 지키면서 시민들에게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의 실상을 알린 장애인권활동가들의 역할이 크다.

‘광화문역 지하농성’ 5년의 기나긴 싸움을 마치는 장애인권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에이블뉴스DB

■광화문 농성장은 희망의 ‘진지(陣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광화문역 지하보도 농성장을 ‘진지(陣地)’로 표현했다.

진지는 방어전투를 위해 전투부대가 점령하고 있는 지역이나 장소다. 적의 총포탄에 의한 손해를 최소한으로 막으면서 공격할 때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특정지역에 실시한 공사나 구축물 전체를 가리킨다.

박 대표는 “광화문역 지하보도 농성장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뿌리는 진지 같은 곳”이라면서 “(이 곳에서) 투쟁을 통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장애인수용시설의 폐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에 광화문역에 농성장을 만들 때 12시간씩 싸웠다. 농성을 하면서 장애인들이 불타죽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등 제도에 의해 숨진 사람들의 영정사진이 늘어갔다”면서 “이 때 마다 굉장히 힘들고 아팠지만 반드시 승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구성될 부양의무자 기준과 장애등급제·장애인거주시설 폐지 위원회에 대해서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박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도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직접 약속했다. 박근혜 정권은 초기에 위원회를 꾸려 논의를 하겠다고 했지만 우리 단위들은 배제시키고 진행했다”면서 “박근혜 정권 시절처럼 위원회를 구성하면 위원회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폐지로 하자고 시작한 위원회가 개선을 하는 목적의 위원회로 변질됐다”면서 “실질적인 예산 확보를 하지 않고 기술적인 논의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번에 구성되는 위원회에서는 제도의 폐지를 전제로 하고 논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 이형숙 공동대표. ⓒ에이블뉴스DB

■광화문역 농성 잠정 ‘중단’ 투쟁의 끝 아냐=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 이형숙 공동대표는 “광화문역 지하보도 노숙농성이 중단되지만 우리의 투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광화문역 지하보도 농성장을 방문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장애인거주시설 폐지를 위한 위원회 구성을 제시했다. 공동행동은 복지부의 약속과 신뢰에 기반해 농성 중단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공동대표는 “보건복지부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장애인거주시설 폐지의 논의를 하던 중 제도 폐지를 위한 위원회 설립에 협의를 했고 (복지부의 약속과 신뢰에 기반해) 잠시 농성을 중단한 것”이라면서 “광화문 농성의 중단은 새로운 투쟁의 전환점이라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5년간 지속된 광화문역 지하농성장.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이 공동대표의 심정은 “실감이 안 난다” 였다.

이 공동대표는 “초창기 광화문역 농성장에는 현수막 하나도 걸지 못하게 했다. 은박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 말 그대로 노숙을 해야했다. 5년의 기간 동안 천막이 나무구조의 농성장으로 바뀌고 지금의 형태가 됐다”고 회상했다.

또한 “2000여일 간 광화문역 농성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다. 9월 5일이 지나야 알겠지만, 농성장이 없어지는 것은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공동대표는 “복지부와 제도의 완전폐지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회는 제도의 완전폐지를 방향으로 설정하고 이에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면서 “제도의 완화는 절대 안되고, 위원회는 완전 폐지를 목표로 운영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 ⓒ에이블뉴스DB

■힘겹게 만든 농성장 중단 논의에 눈물 ‘핑’ 돌아=“광화문역 농성장이 중단된다는 말을 듣고 그간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서울장애인자립생활협의회 최용기 회장은 9월 5일 예정된 광화문역 농성장이 중단을 두고 이 같은 감정을 나타냈다.

최 회장은 “새 정권이 들어섰고 투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농성장의 중단 논의가 이뤄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힘겹게 농성장을 만들고 지키면서 있었던 순간들이 생각나 눈물이 돌았다”고 말했다.

이어 최 회장은 “사람들은 광화문역 농성장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장애인거주시설 폐지의 대표성을 지니는 장소로 기억을 한다. 하지만 광화문역 농성장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활동가들이 꿋꿋이 지켰고 5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면서 “이들의 수고와 노력, 헌신을 기억해달라”고 피력했다.

마지막으로 최 회장은 “장애등급제는 국민명령 1호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만큼 폐지가 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양의무자 기준도 완전 폐지가 이뤄질 것 같다. 문제는 수용시설이다”라면서 “수용시설 권력이 존재해 문재인 정부도 쉽게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약인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폐지해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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