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1급 아들 권형수(가명,20)를 둔 이영선씨(가명,53)의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형수가 7살이 되던 해인 2000년, 병환으로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내고, 너무나 살기 힘들었던 영선씨는 딸 둘과 아들 형수를 데리고 죽을 각오를 했다.

엄마의 굳은 결심에 딸 둘은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형수는 아니었다. 형수는 “죽기싫다!”며 살고 싶다 절규했다. 그런 형수가 13년이 지난 지금, 전동휠체어를 탄 몸으로 달리는 트럭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장애가정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선씨가 보내온 증빙 자료들. 센터의 공개사과문, 구청의 민원답변서, 협회와의 메일 등이 있다.ⓒ에이블뉴스

■“우리집에 악마가 들어 왔어요”= 사건의 시작은 올해 초였다. 그동안 영선씨는 일반학교를 졸업한 형수의 활동보조를 해오던 여자 활동보조인 안 모씨에게 큰 감사를 느껴왔다. 꽁꽁 언 날씨에 짧은 거리에도 센터차량을 이용해 집에 데려오는 등 남다른 배려에 형수의 가족에게 큰 믿음과 신뢰를 쌓아온 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영선씨는 뜻밖에 소식을 들었다. 활동보조를 중계하던 도봉사랑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코디네이터로부터 기존에 하시던 안씨가 힘들어서 그만 둬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남자 활동보조인 김모씨(65세, 남)를 지정해 준 것.

알고보니 안씨에게는 영선씨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하니 딴 사람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귀띔한 것을 알게 됐다. 센터의 ‘못된’ 이간질에 영선씨는 큰 상처를 받았지만 꾹 참았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새로 온 활동보조인 김씨는 기가 막힐 정도였다. 가족의 사생활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지나치게 일상생활에 간섭을 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불쾌했다. 특히 7살에 아빠를 잃은 상처를 갖고 있는 형수에게 툭하면 ‘이러니까 아빠가 없네, 남편이 없네’라는 언행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던 3월11일 구내 재활치료실내에서 일은 벌어졌다. 다리가 굽어있어 이를 펴기 위해 형수는 월수금 3번에 걸쳐 치료를 받아오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치료실을 방문했다.

그러나 치료사들이 하지 말라고 극구 말렸음에도 활동보조인 김씨는 “내가 할 수 있다”면서 형수의 경추등을 발로 눌렀다. 비쩍 마른 아이의 몸을 두 배의 몸무게가 나가는 김씨가 두 발로 서서 밟은 것이다. 그 충격으로 경추의 염좌 및 긴장 등의 상해를 입었다.

영선씨는 화가 났다. 평소에도 목욕을 해달라는 부탁에도 거절해오고, 활동보조인으로써 역할을 제대로 못 해온 그였기에 이번 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센터에 이 사실을 알리고, 시정해달라 요구했다.

■악마의 습격, 박살난 장애인 가정=‘띠리리리’

다음날 영선씨의 핸드폰이 울렸다. “너 죽이러 갈거다! XXX” 다시는 듣고 싶지 않던 김씨의 욕설 섞인 보복성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겁이 난 영선씨는 불안한 마음에 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센터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그리고 저녁, 김씨는 두꺼운 흉기를 들고 영선씨의 집 앞에 찾아왔다. 영선씨의 딸이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자, 김씨는 딸을 밀치고 집안으로 쳐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딸은 상해를 당했다. 놀란 영선씨는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잡고 버텼다. 그 과정에서 김씨는 영선씨의 손목을 가격하고, 정강이 부위를 때렸다.

참다 못한 영선씨를 손잡이를 놔버리자,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그 와중에 방안에 누워있는 형수생각이 벌컥 났다. 형수를 보호해야 겠다는 생각에 영선씨는 형수에게 달려가 품안에 안았다.

형수를 품에 안은 영선씨는 김씨로부터 목 졸림까지 당했다. 결국 112에 신고된 활동보조인 김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일에 영선씨네 가족은 무너졌다. 형수는 너무 놀라 경기를 일으켰으며, 딸과 영선씨 모두 치료를 받아야했다. 설상가상으로 정신적 충격으로 세 명 모두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약을 복용하고 있다.

삶의 의지가 강한 형수였지만, 아이도 무너졌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사람을 피했으며, 자살도 여러번 시도했다.

영선씨도 죽고 싶은 건 마찬가지. 영선씨가 무너질 때마다 장애부모의 고충을 함께 나눈 가슴으로 이어진 10년지기 이순미(가명)씨가 함께였다. 죽고 싶다는 그녀를 안고, 순미씨는 영선씨를 달랬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해야 한다”라면서.

“여러가지 소문과 억측에 시달리고 아이들은 잠도 못자고, 악몽에 시달리고 통증에 시달리고,, 실의에 빠져 죽고 싶었어요. 그 모습에 제 가슴에는 또 다시 피멍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 마음을 더 아프게 한 점이 있어요. 진심이 담긴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적 없다는 거예요.”

도봉사랑길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홈페이지(위)홈페이지 윗 부분에 권익을 위한다는 인사말(아래).ⓒ화면캡쳐

■장애인 위한다던 센터, 상처만=누구보다 장애인과 그 가족의 어렵고 힘든 점을 아는 센터는 외면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정신과 약까지 먹게된 아이에게 위로해주고 미안하다고 한 마디 해주면 안됐을까. 하지만 영선씨는 끝내 이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활동보조인을 관리하고 교육시킬 책임 있는 센터는 영선씨의 도움에도 이를 묵과했으며, 결국 폭행사태까지 발생했다. 즉, 센터의 행동은 ‘나몰라라’였다. 더욱이 사건 이후 활동보조인 김씨가 한 교통방송에 활동보조인의 인권 문제로 출연했다.

“기자멘트 : 올해 초부터 활동보조인으로 일한 김씨 역시 그가 돌보던 장애학생 부모와 갈등으로 두 달만에 일을 접어야 했습니다.

김씨 Int : 최소 생계비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을 했는데, 주거 침입죄로 고소를 당했어요, 억울한 처지를 당했기 때문에 그만 둔 거죠.

기자 : 상황이 이러하자 장애인의 인권 뿐 아니라 이들을 돕는 활동보조인의 인권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방송 내용 발췌)

기가 막혔다. 우리 가족을 무너뜨린 폭행사건을 ‘갈등’이라고 표현하다니. 인터뷰 출연을 추천했다던 센터 측에 너무나 큰 화가 났다. 결국 인터뷰를 추진한 센터 소장, 해당 기자와 3자 대면을 한 끝에 사과를 받아냈지만, 센터장의 빈정거림은 계속 됐다.

도봉구청에도 민원을 알렸지만 소용 없었다. 구청에서는 “서비스를 이용하시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수행기관에 출장해 확인한 바 해당 활동보조인을 계약해지 조치했으며, 기관에 대해서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 촉구했다”며 “다시는 이런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변서가 날라왔을 뿐. 뚜렷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해당 센터가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의 지부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영선씨는 협회에 이 사실을 알렸다. 역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센터만 편들고, 무조건 참고 이해하라는 황당한 답일 뿐이었다.

협회 회장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협회로 찾아오라는 회장에 말에 영선씨는 이 싸움이 끝나리라 믿었다. 하지만 변호사와 함께 만나겠다던 대답은 사실이 아니었고, 말 한마디 없이 그녀를 계속 기다리게 했다.

협회 회장은 그 후 메일을 통해 형수 치료를 보험배상 처리하기로 결정했다며, 공개사과문을 통해 발표하고 처리하겠다는 답변을 해왔다. 덧붙여 “도봉사랑길센터와 협회는 재정적 능력으로 세워진 단체가 아닌 그저 열정과 미래에 대한 꿈으로 만들어진 단체”라며 끝까지 감싸기에 급급했다.

“약속과는 달리 변호사와 구청직원도 오지 않았고, 아무 문제도 해결된 적이 없었어요. 공개사괴문에 대해서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없는 변명이고, 향후 어떻게 처리해주겠다는 내용이 없었구요. 치료 보험배상 처리를 해주겠다는데, 제가 보험회사에 확인해보니까 폭행사건에 대해서는 배상이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구요.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 줄 건지 정확한 내용도 없이 센터 감싸기에만 급급한 모습에 치가 떨렸어요.”

허망한 영선씨는 지푸라기라도 잡을 곳을 찾았다. 인권 문제를 다룬다는 장애인 단체 측에게 전화상담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서울지역 한 자립생활센터 소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사건을 밝혔지만 “센터가 잘 못한 내용”이라면서도 결국 “이해하라”는 속 터지는 답변이었다.

장애인을 위한 수 많은 단체들이 있지만, 영선씨의 편은 단 한명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속상했다.

■“진심어린 사과만이라도”=영선씨는 현재 도봉사랑길 센터 소장과 해당 코디네이터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서에 고발한 상태다. 현재 양측 모두 조사를 다 마친 상태지만, 진심어린 사과를 해준다면 언제든지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돈이 목적이 아님을 못 박았다.

“제가 센터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고발을 하는게 아니예요. 센터 소장도 장애 당사자고, 장애인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사실에 감사하죠. 그런데 잘못된 건 고쳐야죠. 우리 아이가 다쳤으면 먼저 우리아이가 어떤지 물어봐야 하는거 아닌가요? 여러 군데 사과했다고는 하는데 저는 진심어린 사과를 들어본 적 없어요. 물질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니예요. 절대. 저는 진짜 진심어린 사과를 듣고 싶을 뿐이에요. 우리 아이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길 바랄 뿐이예요. 그리 해준다면 당장 고소는 취하할거구요.”

하지만 이에 대한 센터의 입장은 냉소하기 그지 없었다. 사과는 이미 충분할만큼 했고, 활동보조인의 폭행에 대해서는 그만둔 상태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센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 더욱이 영선씨가 돈을 요구하고 있어, 법적으로 맞고소도 가능하다는 답변을 해왔다.

우해중 센터 소장은 “사과를 여러번 했다. 골백번 더 했고, 무릎까지 꿇었다. 결론적으로 (영선씨가)고발한 것은 돈을 노린 것이다. 딸과 본인의 치료비로 200만원을 요구했다"며 "협회에서 중재메일을 보냈다는데 그것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활동보조인은 관련 교육을 충분히 이수했다고 말할수 있다. 폭행에 대해서는 잘못이지만, 그만 둔 상태에서 본인이 술먹고 가서 한 것을 우리 센터가 뭐 어찌할 바 있냐. 당시 그만둔 상태였다"며 "(형수의)보험배상에 대해서는 100% 된다. 안될리가 없다. 장담할 수 있다. 도의적으로 미안하다고 수십번 얘기했다. 돈을 요구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우리도 맞고소할 생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협회 관계자는 그간 충분한 중재가 있었고, 문제 소지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어머니가 중재를 요청하셔서 5월초 센터, 어머니, 구청간 중재가 있었고, 모든 책임을 센터가 지기로 충분한 사과를 했다. 치료비에 대해서도 보험처리 배상을 결정했다"면서도 "그후 사과문 작성안을 보내드렸는데, 어머니가 물질적 피해로 치료비 200만원을 포함시켰다. 중재된 사항과 차이가 있어 논의를 하겠다고 했지만 소통이 안돼서 진척이 안됐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요구하는 진정한 사과는 돈이다. 200만원을 요구하셔서 할부로라도 지급을 하겠다고 하니, '그걸 어떻게 믿냐'는 소리만 돌아왔다"며 "센터 측에서는 진정한 사과를 몇차례나 했고, 법적으로 가겠다면 맞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이 치료비 보험처리에서는 센터측에서 하겠다고 합의를 봤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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