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대항로에서 열린 ‘장애인 인권과 경찰 역할에 관한 토론회’ 전경.ⓒ에이블뉴스

언어장애가 있는 뇌병변장애인 A씨는 이웃 사람의 언어폭력 상황에 대해 신고하려고 지구대를 방문했으나, 경찰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은 채 ‘처리할 수 없다’면서 돌려보냈다.

역시 언어장애가 있는 뇌병변장애인 B씨는 ‘혼술’을 하러 술집에 들어갔지만, 술집 주인은 자리가 많이 비었음에도 ‘나가라’며 그를 거부했다. B씨가 항의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자, 출동한 경찰은 장애인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은 채, 억지로 전화기를 빼앗고 B씨의 어머니에게 전화해 ‘데리고 가라’고 대응했다.

그런가 하면, 자폐성장애 남성 C씨가 집 앞에서 잠시 가족을 기다리며 혼자 중얼대자, 지나가던 여성이 외국인의 성추행적 발언으로 오해해 그를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C씨에게 다짜고짜 외국인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하며, 강압적으로 뒷수갑을 채우고 경찰차로 연행했다.

해당 사건은 변호사 등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이 진행 중이며, 사건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C씨는 두려움으로 외출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나동환 변호사는 “현장출동 및 체포 연행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무리하게 범인으로 몰았다”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이라고 피력했다.

14일 서울 대항로에서 열린 ‘장애인 인권과 경찰 역할에 관한 토론회’에서 사례발표 중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나동환 변호사와 사단법인 두루 최초록 변호사.ⓒ에이블뉴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인척에게 수차례 성폭력을 당한 발달장애여성 D씨는 활동지원사의 지원으로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휴대폰 포렌식을 통해 문자, 사진, 통화 기록 등으로 수많은 증거가 밝혀졌음에도 가해자는 성관계 자체를 부인했다. 경찰 또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죄에 대해 ‘불기소’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단법인 두루 최초록 변호사는 “경찰은 성관계 여부를 증명할 수 없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범죄인지 여부를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 ‘합의’라고 안일하게 판단했을 것”이라면서 “인식개선이 없다면 계속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달 장애인권리 행진에서 경찰에 의해 낙상사고가 발생한 모습.ⓒ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회 시위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는 이어진다. 전동휠체어를 강제적으로 수동으로 변경해 이동하지 못하게 하거나, 휠체어와 장애인을 강제로 분리해 연행하는 등의 사건이 빈번한 것. 실제 지난달 장애인권리 행진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이 중증장애인 E씨의 선전 물품을 무리하게 빼앗는 과정에서 휠체어가 뒤로 넘어가는 낙상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필순 기획실장은 “이전에도 행진하는 활동가를 대상으로한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전동휠체어가 넘어지는 일이 여러차례 있었기 때문에 더 분노가 컸다”면서 “조직이 책임지고 인권교육 이수 등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3년을 넘겼지만, 경찰의 인권 감수성은 ‘깜깜무소식’이다. 심지어 의사소통이나 의사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에게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의사소통 조력인 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지지부진한 현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에이블뉴스

14일 서울 대항로에서 열린 ‘장애인 인권과 경찰 역할에 관한 토론회’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이 같은 경찰 형사 절차에서의 장애인 인권 현황을 짚으며, 장애인 인권보장 절차를 위한 가이드라인 명시, 인권교육 의무화 등을 제언했다.

김 사무국장은 신고과정부터 현장연행과정, 조사 진술 등 사건 진행 과정, 실종 처리 과정, 집회 시위 대응과정 속 장애인 인권침해 발생 현황을 들며, 이 원인을 장애 유형별 행동방식이나 의사소통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경찰조직 내 전담부서의 장애인에 대한 전문성 부족,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 매뉴얼 부재 등을 짚었다.

김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의 경우 다른 장애유형보다 개별적으로 의사표현방식과 소통방식이 모두 다름에도 이에 대한 경찰의 사전 내용 숙지는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서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불안한 상황에 놓였을 때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일 수 있는데, 경찰이 공격적인 행동으로 판단하고 강제적으로 제압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경찰 절차와 과정 속 장애인 인권보장을 위한 방안으로 ▲장애인인권보장에 대한 내용을 법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가이드라인 또는 지침 명시 ▲직무교육안에 장애와 관련한 인권교육 의무화(1년 1회 이상) ▲절차상에서의 장애인 인권침해 발생 시 문제 제기 방법 마련 ▲권위적인 형사사법 절차 개선 등을 제언했다.

김 사무국장은 “몇 년 전 ‘인권 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이라는 경찰관직무규칙 안에도 장애인의 인권보장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었지만 법체계 안에 정확히 명시되지 않아 적용이 어렵거나 사라진다”면서 “관련 법안에 필요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규정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가이드라인이나 지침 등을 마련해 강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왼)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은종군 관장(오)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진철 사무처장.ⓒ에이블뉴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은종군 관장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진철 사무처장은 각각 학대사건과 실종사건에 대한 경찰의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은 관장은 “옹호기관에서 학대 사건에 대해 수사의뢰를 하거나 고소 고발을 하는데, 비장애인 중심 조사와 차이가 없다. 장애인복지카드를 줘도 장애를 증명하라고 요구하거나, 쉬운말로 질문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 피해사실까지도 왜곡된다”면서 “접수에서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자의적 판단을 지양해 범죄사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확인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진철 사무처장은 “장애인의 실종사건에 대해서는 초기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골든타임이 12시간으로 설정돼있다고 하는데, 그 시간을 놓치면 장기미제가 되거나 사망한채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집단적인 특수성을 고려한 초기대응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실제 지난해 말, 어머니와 산책하러 나갔다가 실종된 발달장애인 장준호 씨는 실종장소에서 불과 8km 떨어진 지역에서 3개월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또 해마다 8000명이 넘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실종신고가 접수되지만, 5년간 총 200여명의 발달장애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는 통계도 있다.

이에 윤 사무처장은 “실종아동 등 조기발견지침을 포함해 실종장애인과 관련된 법제 및 제도에서의 발달장애인 고려가 전무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전담기관 설립 및 전문성 확보 등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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