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원의 상속 재산이 있는 지적장애인 A에게 돈 냄새를 맡은 유부남 B가 다가왔다. 남자답고 친근한 B에게 마음을 이끌린 A가 B에게 재산을 막 퍼준다면 이를 당장 막아야 할까?

당장 이를 찢어놓고 다시는 못 만나게 하는 것이 A가 원하는 것일까? 장애계의 답은 이렇다. 유부남과의 만남 금지가 아닌, 만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고, ‘이혼하고 만나라’하는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

의사결정이 힘든 정신적장애인을 위해 ‘대신 다 해주는’ 제도가 아닌 ‘당사자에 의해 함께 도와주는’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하나로 모아졌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5개단체는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정신적장애인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에이블뉴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5개단체는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정신적장애인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먼저 이날 성공회대학교 이동석 외래교수는 의사결정지원제도의 개념과 필요성을 알기 쉽게 짚었다.

최근 장애인복지 키워드는 ‘자립, 사람중심, 이용자 참여, 자력화’ 등 ‘당사자 자기결정’이 강조되고 있다.정책 또한 신체적장애인을 대상으로 사회보장제도 조치에서 서비스계약으로, 바우처, 개인예산제도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지적, 자폐성, 정신 등 정신적장애인의 현실은?

헌법에 따라 평등권과 자기결정권을 향유하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 발달장애인지원법과 정신건강복지법 등의 법률에서 의사결정과 의사표현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가족 등 관계자가 대행 신청을 하는 의사결정대행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모든 것을 대행해주기 때문에 정신적 장애인의 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한편 학대나 착취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는 것.

특히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 대한민국에 대한 권고에서, 성년후견제도가 협약 제12조(법 앞의 동등한 인정)의 규정과는 달리 ‘조력의사결정’이 아닌 ‘대체의사결정’임을 지적하고, 대행의사결정제도를 의사결정지원제도로 전환하라는 권고를 내린바 있다. 이에 후견인 제도를 보완하는 의사결정지원제도가 세계적 추세다.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에이블뉴스

이 교수가 설명한 의사결정은 ‘논리성이 부족한 당사자에게 논리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지원을. 이후 자기결정에 따라 장애인을 대신해 주장해주고 실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의사결정 능력이 손상된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자율권을 촉진하고 대체의사결정에 대한 필요를 방지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의사결정에 관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기억 속에 유지할 수 있도록, 거식증 환자에게 ‘먹지 않음’에 따라 한 결과 정보를 이해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에이블뉴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의사결정 지원은 정당한 편의제공’이라고 표했다.

과잉보호에서 벗어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지만, 이를 감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 중증 의사결정능력 장애가 있더라도 미래설계를 권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교수는 “지적장애인을 시설에 보내는 사람은 대부분 가족이다. 가족이 무슨 권한으로 이를 결정하는 것이냐. 요양시설 입소, 생명, 신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료행위, 정신병원 입소 등은 독립의사결정 지원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즉 가족 또는 본인과 애착관계가 있는 의사결정지원자도, 시설장, 병원장 등 서비스제공자도 아닌 독립돼있는 사람의 지원이라는 것.

비사회보장영역의 경우 미래설계로서의 지속적 대리권의 활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재산관리 지원은 후견 대신 신탁으로, 후견은 최후의 수단으로 단기간에 국한해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권재현 국장,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노경희 사무국장,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석철 소장.ⓒ에이블뉴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권재현 정책홍보국장은 “의사결정지원은 대체의사결정의 우선 대안이자 핵심 지원체계로 인식돼야 한다. 지원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우선적 접근법이나 지원책이 돼야 한다”며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도입을 위해서는 법적 근거, 구체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노경희 사무국장은 “아직까지는 장애인단체 근무자나 시설 종사자에게 정신적장애인은 보호자 없이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사고의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며 “부모, 형제, 특수교사, 의료기관 등 서비스 제공기관 등은 물론, 사회복지학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인식전환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석철 소장은 “현재 정신장애인 삶 속에서 자기결정권을 존중받지 못했다. 자신의 결정에 대해 후회할 수는 있지만 성숙해지고 성장해나갈 수도 있다. 서구사회에서는 위험성 권리도 인정해준다”며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에 앞서 정신장애인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 어떻게 서비스를 반영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선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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