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최창민·장규석 기자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집에서 투표하는 '거소투표' 제도를 악용해, 장애인 시설에서 대리투표와 강압투표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초 국정감사에서 서울 모 장애인 시설에서의 대리투표 의혹이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4.11 총선 당시 해당 시설에서 거소투표를 신청한 24명 중 17명은 인지능력이 부족해 투표할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굳이 신청을 했고, 투표를 한 7명에게는 특정후보를 찍으라 강요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장애인분들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분들일텐데 거소투표를 신청해놓고 그 거소투표가 안 돼서 백지로 보냈다는 말을 납득하기가 어렵고, 투표를 한 7명에게도 누구를 찍으라고 강요가 있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진 의원은 직접 해당 시설의 장애인을 인터뷰한 동영상을 공개한데 이어 문제의 시설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 인사들이 자주 방문했다며 같은달 26일에는 방문기록까지 폭로했다.

결국 검찰이 시설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벌였지만 이 사건은 최근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서부지검 관계자는 "현장까지 확인했지만 증거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 대리투표 의혹, 검찰에선 "무혐의"…그렇다고 없는 일일까

사실 장애인 시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외부에서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장애인 활동가 여준민(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씨는 "시설이 워낙 폐쇄적인 곳이어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인이 감지하기 어렵다"며 "거주인이 내부 이야기를 하면 더 이상 거기에서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밖으로 문제가 새어나가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대리투표와 강요투표 경험을 이야기 하는 지체장애인들(진선미 의원실) ⓒ노컷뉴스

실제로 장애인 시설에서의 대리투표는 과거에도 여러차례 의혹이 제기돼 왔지만 이번처럼 증거가 없어 번번이 묻혀버렸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 충북 도의원 선거에서 불과 11표 차이로 패한 김모 후보가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충북 음성 꽃동네 유권자 1,000여 명이 부재자 투표를 했는데 이 곳에서 특정 정당에 몰표가 나와 대리투표와 투표 강요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군수 후보였던 박모 후보도 부재자투표 개표에서 역전패하자, 꽃동네에서의 투표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경찰은 수녀 6명을 입건해 조사했지만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선관위는 그해 12월 대선에서 논란을 막기 위해 꽃동네 주민들을 외부 투표장에서 투표하도록 했다. 그 결과 무효표가 거의 나오지 않았던 6월과 달리 해당 지역의 무효표가 인근 지역의 3배에 달했다.

앞서 2000년 10월에는 대전의 한 시설 직원이 시각장애인 30여 명의 투표를 직원들이 대신했다고 폭로했지만 사건은 결국 무혐의 처리됐고, 직원만 시설에서 쫓겨났다.

◈"시스템 안 바뀌면 부정투표도 계속될 것"

지금도 장애인 시설에서 대리투표가 있었다는 주장은 끊이지 않고 있다.

김포의 한 시설에 있었던 지체장애인 한모 씨는 "5년 전 대통령 선거 때도 시설장이 노골적으로 특정 정당을 찍으라고 했다"며 "지금과 같은 선거 시스템에서는 이런 행위가 계속 벌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시설 장애인 김모 씨도 "원장이 옆에서 말로 (특정후보에 대한 투표를 강요하며), 너 안 하면 밥 없다…밥 없다"라고 자신의 기억을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거소투표를 신청한 시설 장애인은 7,600여 명에 달하고, 신고되지 않은 시설까지 감안하면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민주주의에서 장애인의 한 표와 대통령의 한 표는 똑같이 평등하다.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시설장애인들의 한 표가 왜곡되지 않도록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장애인 시설에서의 투표 행위에 대해 감시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장애인 운동가들은 되도록 시설 장애인들이 밖에 나와서 투표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여준민 활동가는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 장애 때문에 못한다면 그것을 보완해주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이 가야 한다"며 "시설이 거소투표를 자꾸 권장할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 투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hahoi@cbs.co.kr/에이블뉴스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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