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해서 다들 보는 토익시험을 못 볼 이유는 없잖아요."

뇌병변 1급 장애인 대학생 윤태훈(22) 씨는 지난달 28일 처음으로 토익(TOEIC)시험을 쳤다.

그는 몇 달 동안 서울 신촌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준비했지만, 시험을 앞두고 한때 고민에 빠졌다. 두 손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작은 동그라미를 채워야 하는 OMR 답안지 작성은커녕 시험지에 답을 표시하기조차 어려웠다.

국내 토익시험을 주관하는 YBM은 그동안 한 회에 10명 남짓 응시하는 장애인을 위해 고사장 한 곳을 별도로 정해놓고 시험을 진행해왔다.

손을 잘 쓰지 못하는 응시자가 시험지에 점을 찍는 등의 방법으로 표기하면 시험이 끝나고 감독관 한 명이 답안지에 옮겨주는 대필 작업도 지원했지만 심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윤씨는 그것마저도 어려웠다.

윤씨는 시험을 이틀 앞두고 YBM에 전화를 걸어 "단독 고사장에서 답안지를 대신 써줄 보조감독관과 함께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답안 작성 능력'이 아닌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인 만큼 비장애인과 최대한 비슷한 조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재화ㆍ용역 등의 제공자는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 아닌 사람과 실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수준의 편익을 가져다주는 물건, 서비스, 편의 등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례 없는 요구에 처음에는 주저하던 YBM은 장애인인권단체와 상의한 끝에 결국 윤씨 한 명만을 위해 보조감독관을 지원하기로 했다.

독해 평가 시간은 배로 늘리고 단독 고사장을 내주는 한편 전지 크기의 `중간 답안지' 15장을 만들어 윤씨가 편하게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장애인인권단체는 "시행 3년째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드디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며 크게 반겼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조은영 활동가는 "법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 좋은 선례를 남겼다"며 "특수학교에도 수화할 줄 아는 교사가 배치되지 않는 등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 제공이 여전히 부족한데 윤씨 같은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법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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