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행전안전부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관련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두는 안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 개편안(이하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조직개편안에는 청소년·가족·여성정책 및 여성의 권익증진 등 여성가족부의 주요 역할과 기능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여성가족부 폐지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혔다.

또한 국민의 힘 주호영 원내대표 발의로 11월 정기국회 때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를 목표로 하겠다는 기사까지 쏟아져 나왔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본격적으로 가시화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추진도 발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안은 ‘분산된 생애주기별 정책을 연계하여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보장을 강화하고 실질적 양성평등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제안 이유를 밝히고 있다. 더불어 김현숙 장관은 인터뷰에서 ‘효율성과 실용적인 관점’에서 여성가족부 폐지가 논의되고 있으며 그것이 ‘시대변화와 사회적 요구’라고 하였다.

도대체 포괄적인 성평등 정책의 구현이 어떻게 업무적인 효율성과 실용적인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구조적 차별금지와 성평등 권리 보장을 위해 투쟁해 온 장애여성, 한부모 여성, 청소년, 이주여성, 성소수자 등 수많은 소수자들은 언제까지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라는 제도적으로 규정된 지원대상으로만 위치해야 하는가. 그리고 언제까지 파편적인 제도속에서 ‘양성평등’이라는 구획 밖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성평등의 의미, 포괄적인 정책에 대한 인식과 방향이 전무한, 인권의 역사를 후퇴시키는 작태를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요구라고 함부로 포장하는 것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시대변화와 사회적 요구는 제도적 규정과 구획밖에서 역사적으로 투쟁하고 현재도 일상에서 치열하게 분투하고 있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이고 목소리이다.

장애여성운동은 이성애, 비장애, 가부장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정체성을 구분하는 불평등한 권력, 일상의 인권침해와 섹슈얼리티의 통제, 정상성을 강요하는 시설화된 삶에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더불어 장애와 젠더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장애와 여성이라는 단일한 정체성만으로 환원되는 것을 거부하는 동시에 ‘장애여성’ 이라는 주체성으로 재정의하고 정책과 제도 변화를 요구해왔다.

그러한 사회적 요구의 대상에 여성가족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성가족부는 젠더에 기반한 구조적 성차별과 폭력을 학교, 직장, 동네, 가족 등 일상의 곳곳에서, 친밀한 관계내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다양한 소수자 여성들을 지원해야 한다.

장애여성운동은 여성가족부가 지원제도의 한 켠을 할당하는 방식이 아닌 장애, 빈곤, 학력, 경제적 지위, 나이, 가족형태, 시설수용 여부, 인종, 출신 국가 등 복합적이고 교차적인 차별에 대해 인식하도록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또한 자기결정권, 성과 재생산권리 보장, 다양한 가족구성권 등 포괄적인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고 젠더에 기반한 불평등한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주요 책무임을 주장해 왔다. 도대체 무엇이 시대변화이고 사회적 요구인가.

실체없는 허상이 아닌 소수자들의 삶과 목소리에서 성평등 정책과 제도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제대로 듣지 않고 삭제해 온 것을 뼈아프게 통감하고 성찰해야하는 것이지 여성가족부 폐지가 대안이 될 수 없다.

파편적이고 분산된 몇 개의 시혜적 제도로는 구조적인 차별과 권력의 불균형 문제를 바로잡을 수 없다. 권력의 욕망을 앞세운 폭력의 목소리를 거두고 지금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 제도와 정책 방향 등을 새롭게 바로 세울 때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여성가족부의 책무와 역할은 청소년·가족·양성평등은 보건복지부, 여성고용은 고용노동부, 피해자 지원은 법무부 등 업무를 분산시키고 책임을 떠넘기는 직무유기가 아니다.

각 부처들이 성평등 관점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방향과 기조를 제시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내놓고 통합하는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포괄적인 성평등 관점에 기반하여 실천해야 할 정책들이 산재해 있다.

불과 한 달이 되지 않은 지난날 우리는 신당역에서 무고한 한 여성의 죽음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또다시 빼앗긴 목숨으로 말하고 있는 사회적 책무를 여성가족부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2021년 4월, 다양한 가족을 포용할 수 있도록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족 정의를 바꾸고, ‘건강가정’ 용어 등을 개정하겠다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해 놓고 현행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최근 입장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

낙태죄가 이미 비범죄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에서 아직도 모자보건법 제14조를 근거로 합법적·불법적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시행되는 현황을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은 수술을 불법이라고 말하는 한국사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반인권적인 현실의 반복이 장애인 거주시설, 지역사회 장애여성의 강제피임, 강제 불임 등 성과 재생산 권리 침해의 근거로 악용되어왔던 모자보건법 제14조가 즉각 폐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보건복지부는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등 현장의 요구에 대해 ‘입법공백’을 핑계로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답변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2022년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사업 안내서 [여성장애인 모성 보건사업] 내용을 보면 여성 장애인 지원제도는 임신・출산 중심으로 되어 있다. 전반적인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내용은 전무하다.

이 또한 국가는 가부장제-정상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여성이 요구받는 성역할을 수행할 때에만 공적인 지원제도를 받을 수 있는 국민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도대체 윤석열 정부는 무슨 근거로 보건복지부가 여성정책, 여성 권익증진을 위한 업무를 총괄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주요 부처의 방향과 입장, 윤석열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은 수많은 소수자들의 삶을 행정 편의적으로 삭제하고 임의로 넘겨도 되는 지원 ‘대상’, ‘여성·청소년·가족’이라는 문서상 ‘단어’로만 간주하고 있다. 더불어 ‘약자, 위기, 취약, 선별, 보호’라는 기준을 더욱 공고히 하고 그 기준에 들어오지 않으면 전혀 고려할 대상이 아니며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매우 분노스럽고 기만적인 내용이다.

장애여성운동은 소수자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차별과 낙인을 강화하는 기만적인 정책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인권과 평등의 가치없이 파편화되어 열거되는 지원제도와 무능·피해자다움을 입증해야 하는 기준들을 거부할 것이다. 더 이상 젠더에 기반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에 의해 부당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장애여성운동은 성평등이라는 방향을 통해 기존의 구조를 뒤엎고 모두가 동료시민으로서 공존하는 가치가 정책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분명하게 교육, 노동, 성과 재생산권리, 자기결정권, 돌봄 등 일상의 평등한 권리보장을 위한 사회적 요구를 차별받는 이들과 함께 투쟁해 나갈 것이다.

인권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우리의 분노와 연대로 윤석열 정부의 기만적인 정부조직 개편안을 반드시 막아내기 위해 싸울 것이다.

2022년 10월 14일

장애여성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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