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오늘, 이 나라 장애인들의 생명권은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지난 11월 16일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차고에 딸린 방에 세 들어 살던 한 장애인이 화재로 사망했다. 불은 30분 만에 꺼졌고, 같은 건물에 살던 주민 10여 명은 구조되거나 대피했지만 장애를 가진 단 한 사람만 화마에 희생되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생명의 위협은 없었지만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생명을 앗아가는 재난이었다. 독거였던 그에게는 재난대피를 도울 소방당국의 관심도 활동지원사도 없었다.

그의 삶은 누가 방기했는가?

애초에 활동지원 대상이었지만 만65세가 되자 노인장기요양으로 넘어갔고, 올해 1월부터 활동지원 연령제한 폐지가 되었지만 그는 서비스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기왕에 노인장기요양을 받게 된 사람은 다시 활동지원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전동스쿠터와 목발을 사용해야 보행이 가능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있어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재난상황에서는 치명적인 복지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장애등급 폐지를 치적 삼아 마치 장애인복지정책의 발전을 이뤄낸 듯 말해왔다. 하지만, 장애등급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 등급을 통해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의 대상과 양을 통제한다. 그래서 장애인의 삶은 여전히 장애증명을 통해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안간힘과 비루함에 갇혀있다.

이 정부가 자랑하는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복지서비스’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그의 곁에 단 한 사람의 조력자만 있었다면, 아니 무려 1조원이 훌쩍 넘는 조력 정책에서 밀려나지만 않았다면 그는 오늘도 자기만의 일상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없다. 모두가 무사한 화재사고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가 되었다. 이러한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의 죽음은 있어왔고, 간과한다면 앞으로도 장애인들은 계속 죽어갈 것이다.

부디 그의 명복을 빈다.

어이없고 참담한 현실에 우리 한국장애인연맹은 분개한다. 그리고 우리는 문재인 정부와 국회에 촉구한다.

더 이상 우리를 발가벗겨 장애증명을 강요하지 말라. 더 이상 만65세라는 활동지원 대상 칸막이를 걷어내고 고령장애인의 활동지원을 제도화하라. 더 이상 재난의 결과가 장애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대책을 강구하라.

그리고 경고한다. 이 땅의 250만 장애대중 모두 국민이며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2021년 11월 23일

(사)한국장애인연맹(D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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