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장애인복지의 주된 화두는‘탈시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중증발달장애인(지적, 자폐성장애인)들은 탈시설의 당사자 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보지도 못한 채 그 변화를 직격탄으로 맞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에 저희 중증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으로 정부의 탈시설 정책을 규탄하며 문제를 고발합니다.

첫째, 탈시설 정책은 중증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탈시설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자들의 신규 입소를 제한하고 정원을 축소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인을 해체하여 시설을 통째로 폐쇄하려 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설에서는 정원을 줄인다는 빌미로 도전적 행동과 문제행동이 많은 장애인을 먼저 시설에서 퇴소하게 하여 중증발달장애인을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중증발달 장애인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사람답게 살게 해주겠다는 탈시설 정책이 그 가족까지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탈시설을 말합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탈시설입니까? 무책임한 탈시설 정책이 지금도 어렵고 힘든 장애인 가족을 위기가정으로 만들고 그 부모를 예비살인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탈시설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먼저, “중증 발달장애인과 하루만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째, 탈시설 정책의 문제점을 고발합니다.

지금이라도 내 자녀가 현재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질 좋은 서비스를 받고 살아갈 수 있다면 찬성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정부가 이야기하는 탈시설 정책은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탈시설만 하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탈시설 정책은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중증 발달장애인과 부모의 입장은 반영하지 않은 채, 반쪽짜리 정책을 내놓고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시설거주 발달장애인들의 부모들은 하나같이 시설이 존치되기를 원하며, 시설의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은 보완하여 더 나은 주거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을 잠정적인 학대의 공간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어주십시오. 대부분의 장애인거주시설은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확보하여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통합을 논하기 이전에 이 사회가 장애인에게 얼마나 야만적인 사회인가를 직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탈시설 정책’을 실행하시려면 먼저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사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특수학교 하나 만드는 것도 무릎을 꿇고 애원해야 하는 사회에서 지역사회로의 통합은 악몽과도 같은 것입니다.

셋째, 중증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실시해야 합니다.

탈시설을 논하기 전에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대책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자립지원주택에 입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고, 만약 입주하더라도 주변에서 제기하는 민원으로 계속 살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시설을 다 없앤 후에 자립지원주택에서 살 수 없는 중증의 장애인은 또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지속적으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부르짖어 왔습니다.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국가책임제가 선결되지 않는 한 그 부모와 형제까지도 무한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자식보다 하루 더 살다 죽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이 부모의 사후에도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는 헌법정신에 부합되는 정당한 요구입니다.

넷째, 중증발달장애인에게 더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현재 노인요양원은 전국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이용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큽니다.

그러나 장애인 거주시설은 점점 줄이고 폐쇄하는 쪽으로 진행하여 각 시설마다 대기자가 백명 안팎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만큼 시설거주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공급이 전무한 실정이니 중증발달장애인을 돌보는 보호자들은 몇 년째 과부하가 걸려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돌보고 치매어르신들도 요양원에서 돌보는데 왜 힘센 치매환자라고 불리는 중증발달장애인은 부모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다섯째, 야만적인 탈시설 정책 즉각 중지해야 합니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의 정원을 줄이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이 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의 종류가 다양하고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당사자가 있는 한 그 장애인들을 지원하는 여러 안전망이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중증 발달장애인도 가족 가까이에 있는 시설에서 살 수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사회 곳곳에 만들어져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도 있고 시설과 가정과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장애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탈시설 정책은 중증발달장애인 가족에게 죽음을 의미합니다. 정부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계획하면서 단 한 번도 시설거주장애인 부모의 의견을 묻지 않았습니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로 시설폐쇄를 감행하려 하고 있으며 장애인복지법을 수정하여 아예 거주시설의 신규설치를 금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시설에 입소를 하지 못해서 고통받고 있는 약 1만여명의 중증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고통을 모르시는 겁니까?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입니까?

2020년에 실시한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조사에서도 ‘시설에서 살고 싶다’는 응답비율이 60%였으며 거주희망사유도 ‘이곳에 사는 것이 좋아서’가 70%에 달하는데 왜 이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탈시설로 가야하는 것인가요? 이것은 누구를 위한 탈시설 입니까?

야만적인 탈시설 정책을 즉각 중지하고 중증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거주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장애인과 부모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이에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는 중증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탈시설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다음과 같은 우리의 의견을 반영해 줄 것으로 요구합니다.

하나. 중증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모는 탈시설 정책을 즉각 철회하라!

하나.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즉각 철회하라!

하나. 시설이용 장애당사자와 그 가족의 결정권과 선택권을 보장하라!

하나. 시설이용대기자 죽어간다. 신규입소 허용하라!

하나. 중증발달장애인의 국가책임제를 실시하라!

2021년 7월 26일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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