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내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 정부총지출은 428.8조원으로 올해 본예산 400.5조원보다 7.1% 늘었다. 복지 분야는 올해 본예산 129.5조원에서 144.7조원으로 11.7% 증가했다. 복지 분야 증가율이 정부총지출보다 높은 것은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등 문재인정부의 여러 복지정책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런데 내년 복지분야 최종 예산은 애초 정부가 제출안 원안에 비해 1.5조원 감액된 금액이다. 내년 예산 총액이 정부안에 비해 0.1조원 줄었는데 복지 분야는 무려 1.5조원이 삭감되었다. 반면 도로와 철도를 중심으로 SOC 분야는 정부안에서 1.3조원 증액되었다. 국회 막판 여야 협상과정에서 아동수당, 기초연금, 건강보험 등 복지분야 예산은 삭감대고 그 재원으로 SOC를 늘린 셈이다.

우선 아동수당은 설계도가 훼손되었다. 애초 정부안에서 아동수당은 7월부터 6세 미만 아동 모두에 매월 10만원씩 제공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야 절충과정에서 2인 이상 가구 기준으로 소득 하위 90%에게만 지급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아직 해당 가구 통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대략 현재 6세 미만 253만명 중 약 25만명이 아동수당 적용에서 제외될 것이다.

지난 무상급식, 무상보육 논란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복지가 시민의 권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새로 도입되는 아동수당도 모든 아동에게 제공되는 사회수당으로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현재 OECD 35개국 중 우리나라, 미국, 터키, 멕시코를 제외한 31개국에서 아동수당을 시행하고 대부분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 지급한다.

그런데 여야 합의 막판에 하위 90%에게만 제공하는 ‘이상한’ 제도로 변질되었다. 이렇게 되면 보편적 사회수당으로서 아동수당의 의미가 훼손되고 10%를 제외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크게 발생한다.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가구와 달리 아동을 가진 가구는 노동시장에서 지위 변동이 있으므로 매번 10%를 선별하는 행정과정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동수당으로 인한 소득역전을 막기 위해 90% 계층 경계 구간에선 0~10만원의 감액 구간도 발생한다. 아동을 가진 가구는 모두 아동수당을 권리로서 누리고 시민의 의무로서 소득능력에 따라 세금을 누진적으로 내는 게 정공법이다. 여야 절충과정에서 수정된 아동수당은 조속히 모든 계층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한편 아동수당의 재정 분담도 보완이 필요하다. 정부는 내년 아동수당 국고보조율을 71.8%로 정했다. 지자체가 나머지 재정을 대응예산으로 마련해야한다는 이야기이다. 한해 아동수당을 지급할 때 소요되는 재정 약 3조원 중 지자체가 약 8천억원을 조달해야 한다. 박근혜정부에서 지자체는 복지 확대에 따른 대응예산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 부메랑이 지자체의 자체복지 사업으로 전가되면서 취약계층의 복지가 정체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정부이다. 아동수당과 같은 전국적 현금복지는 모든 계층에 제공하고 재원도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바람직하다. 향후 중앙정부가 아동수당 재정을 전액 부담하거나 국고보조율을 상향하는 조치가 뒤따라야한다.

기초연금 25만원 인상이 애초 4월에서 9월로 연기된 것도 유감이다. 내년 6월 지자체 선거를 감안해 뒤로 미루었다는 게 국회의 설명이다. 물론 예산안 심의에서 선거 일정을 감안해 시행 시기를 조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초연금 인상 시기 수정은 지나치게 정략적이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법의 급여조정체계와 연동해 매월 4월마다 물가만큼 인상된다.

올해도 4월에 20만 4010원에서 20만 6050원으로 올랐다. 기초연금액 조정 시기는 선거일정에 영향받을 사안이 아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포함한 우리나라 공적연금의 금액 조정체계가 그렇다면 기초연금 25만원 인상도 원래 방식대로 4월에 시행되는 게 맞다. 여야 모두 따가운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기초연금 혜택에서 또 다시 40만 기초수급 노인이 사실상 배제된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현재 수급 노인은 매월 25일에 기초연금을 받고 다음달 20일에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삭감당한다. 이른바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다. 이 독소조항이 존재하는 한, 기초연금이 25만원으로 올라도 수급 노인은 또다시 25만원 공제당하고, 이후 30만원으로 올라도 그렇게 된다.

우리사회 70% 노인이 기초연금 혜택을 누리는데, 가장 가난한 노인이 여기서 배제되는 건 형평성에 크게 위배된다. 문재인 정부는 조속히 ‘줬다 뺏는 기초연금’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의 개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참고로, 99명의 기초수급 노인들은 11월 28일 헌법재판소에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노인 인권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국민건강보험 국고지원액이 2,200억원 삭감된 것도 부당한 감액이다. 매년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료 예상수입의 20%를 국고지원해야 한다(일반회계 14%, 건강증진기금 6%). 일반회계 관련 조항으로, 국민건강보험법 108조 “국가는 매년 예산의 범위 안에서 당해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공단에 지원한다.”고 명시한다.

이에 따르면 내년 일반회계 국고지원액은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53조 3,209억원)의 14%인 7조 4,649억원이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 예산안은 5조 4201억원으로 10.2%에 불과하다. 기획재정부가 법조문에서 ‘예산의 범위 안에서’, ‘상당하는 금액’ 문구를 악용해 지금까지 과소지원해 왔고, 내년에는 어느 때보다 더 낮게 편성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국회는 문제를 시정하기는커녕 오히려 2,200억원을 감액해 국고지원액을 5조 2001억으로 줄였다. 이러면 예상수입액의 9.8%에 불과하게 된다. 사상초유로 일반회계 지원이 수입액의 10%에도 미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과연 9.8%가 14%에 상당하는 금액인가? 국민건강보험 취지를 전면 무시한 황당한 예산이다.

국회 예산안 심의를 볼 때마다 세금을 내는 시민들은 분노를 느낀다. 언제까지 예산안 심의 막판에 벌어지는 황당하고 부당한 여야의 편법을 지켜봐야만 하는가?

민생과 직결된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SOC 예산을 챙긴 국회, 지방선거를 이유로 법에 정한 기초연금액 인상 시기까지 정략적으로 변경하는 국회를 강력히 규탄한다.

20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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