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전고법은 ‘피부에 흰색 반점이 생기는 질환인 백반증이 얼굴에 발병할 경우 장애로 인정하고 국가에서 지원해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장애의 기준은 복지부가 고시한 '장애등급판정기준'이 아닌 장애 관련 법령의 해석에 의해야 함을 지적한 판결이다. 우리는 법원의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이를 계기로 장애범주 확대 논의를 당장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은행(IBRD)은 전세계 인구의 15%인 10억 명이 장애인구임을 ‘세계장애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인구대비 10%가 장애인이라는 추정치가 30년 만에 5%로 증가한 셈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청력손실 인구가 1억 2420만 명으로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으며, 심혈관질환 같은 만성질환과 노인층 인구가 늘어난 것이 장애인구 비율을 높인 원인이라고 한다.

이어 소득이 낮은 국가일수록, 남성보다는 여성이, 청장년층보다 아동과 노인층에서 장애인구 비율이 높으며, 선진국에서조차 장애인은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고용, 교육, 의료, 접근성, 빈곤, 사회적 인식 등으로부터 전세계 장애인은 누구나 자유롭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장벽을 깨기 위해 스티븐 호킹 박사(케임브리지대)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투자를 강조하고 있고,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각 국의 장애인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인구 및 대응노력 등에 대한 국제적 기준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자.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을 넘어선 것을 감안한다면, 약750만 장애인구라는 ‘거대한 소수자’가 있는 셈이다.

이는 사회로부터 제한과 차별을 당하는 인구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으며, 국민 누구나 예외가 아님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정치 사회적 영향력 측면에서 본다면 노인인구를 훌쩍 넘어선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제도의 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 지난 2003년 15개 장애영역으로 확대된 이후 현재 약 250만명이 장애인구이다. 전체 인구의 4.9%에 불과한 셈이다.

물론 국가마다 장애의 정의와 범주, 그리고 복지 정책 등이 다름을 고려할 때 일률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또한 국제적 수준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임을 충분히 이해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장애인’의 개념을 제도적으로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WHO의 권고에 따라 알코올, 만성 심혈관, 피부질환 및 암 등을 중심으로 몇 년 전 3단계 장애범주 확대논의가 있은 이후 시계가 멈춘 상태다. 그 결과 제4차 장애인복지5개년계획에 담기는커녕, 오히려 복지선진화란 미명하에 기존 장애인의 등급 재조정에 전념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등록 장애인의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복지부의 2013년 말 통계에 따르면 2012년 251만1천명이었던 등록장애인이 250만1천명으로 1만여 명 줄었다)

한정된 예산과 정책의 우선순위가 있음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장애관련 지표는 국제수준은 고사하고 아태지역에서 조차도 국가적 역량을 자랑하기가 초라할 정도다.

지난 2012년 UNESCAP(유엔아태경제사회위원회)은 아태지역 각 국가의 장애관련 기초자료를 토대로 장애보고서(Disability at a Glance 2012)를 발간하였다.

무엇보다 제3차 아태장애인10년의 인천전략에 대한 한국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향후 한국정부의 국제사회 책무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부터 논의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장애범주 확대 또한 그 일환이 될 것이다.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실태조사만 했지 실제 법제화하지 않은 것은 확대에 따른 예산 증가 부담 때문이겠지만 우리는 현 정부에서 장애범주 확대에 대해 매우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된다고 본다.

이것은 현 정부가 주장하는 ‘선택적 복지론’이나 또 다른 측면의 ‘보편적 복지론’ 어느 편에 서더라도 당장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의 문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장애범주 확대문제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문제, 단순히 ‘질병’, 그리고 개인의 문제로 떠넘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공론화할 것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장애등급 판정 체계를 ‘외형적 손상기준’이 아닌 ICF 모델과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자법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활동제약’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 논의를 보다 발전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장애인실태조사에서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원인 등을 다양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현재 진행 중인 제4차 장애인복지정책 5개년 계획에 포함되어 실행돼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법원의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장애인이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라는 장애인복지법 제2조의 조항이 그대로 실현되고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수준으로 장애인 범주를 확대할 것을 촉구한다.

2014. 7. 30.

한국장애인재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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