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집회! 장애인당사자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장애인은 방에 쳐박힌 채 아가리 벌리고 감 떨어지길 기다리란 말인가-

지난 2일 한국장애인부모회(회장 이만영)가 제24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에서 느닷없이 토해낸 ‘데모 만능주의 불식’ 발언을 접하면서 아연실색할 따름이며 안일한 현실인식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데모 만능주의’ 운운은 우리 시대 장애인 인권 투쟁의 역사에 대한 모독이며, 나아가 그들의 자식들을 포함한 전(全)장애인의 삶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꺾는 행위일 뿐이다.

집회란 다수인이 공동 목적을 가지고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는 행위다. 그래서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비폭력적이고 질서 파괴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단시간의 피해는 사회 구성원이 참고 받아들인다. 어느 정도의 불편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집회 없었으면 ‘정부의 적선하는 척’도 없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현실에 절망해본 경험이 있는 장애인이라면 장애인의 집회가 얼마나 소중한 희망의 신호인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장애인복지법 개정 등의 쾌거에는 이름없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피와 땀으로 점철된 투쟁과 희생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만영 회장은 이러한 역사적 바탕, 장애인이 처한 현실적 상황은 외면한채 장애인의 투쟁을 한낱 ‘떼쓰기’로 애써 폄하하고자 하는 것인지 자못 그 저의가 궁금할 뿐이다.

역사적인 의의를 떠나서 현실적인 ‘효용의 측면’을 두고 말하더라도 장애인의 집회를 통한 투쟁은 우리나라 장애인복지 발전에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매주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만약에 집회를 통한 장애인의 정당한 요구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보라. 장차법도, 이동편의증진법도, 장애인복지법의 개정도 요원한 꿈에 지나지 않았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장애인들이 무엇을 알아서 외치고 주장하겠느냐 하겠지만, 장애인들이 주도적으로 참가한 집회와 투쟁 때문에 결국 정부의 장애인에 대한 상황인식을 바꾸고 나아가 장애인 정책 입안을 신중하게 함으로써 그나마 ‘시혜적 정책’이라도 실시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해온 것이 아닌가.

이만영 회장이 생각하는 것처럼, 장애인집회 없이 오로지 현재의 한국 정치와 언론, 사회라는 제도의 관행적인 작동을 통해서 장애인 문제의 해결이 가능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러한 사회가 하루빨리 되었으면 하고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들은 장애인당사자들 일 것이다.

전문가가 깜깜한 밤길 걷는 장애인 발밑 밝혀줬던 적이 있었던가?

장애인은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슬픈 날짜를 세는 사람들이다.

2008년 우리가 처한 현실은 어떤가? 새 정부 들어 쏟아지는 ‘감세 폭탄’은 필시 장애인에게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복지 후퇴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이미 복지예산이 한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며 후퇴할 가능성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복지예산 증가분 6조4000억원 중에서 소외 및 취약 계층의 예산 증가는 1조원에 머물러 2%에 그치고 있다. 이는 전체 예산증가율이 7.4%임을 비추어보면 크게 감소한 수치다.

시각장애인들의 안마권 보장을 위한 투쟁, 2010년 LPG 차량 지원 전면 폐지, 예산확보 방안의 현실성과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전무한 그야말로 너덜너덜한 제3차 장애인정책발전 5개년 계획, 굴지의 대기업을 위시한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장애인 미고용 실태, 장애인교육 예산 삭감 등에 대해 소위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참을 수 없는 현실은 가슴 덜컥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에서 그 말많던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웬일인지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그 많던 사회복지교수와 사회복지사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런 현실에서 ‘장애인의 문제’를 전문가나 사회복지사에게 떠맡기는 것만이 능사인가. 우리의 생존권을 그들에게 위임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가. 장애인당사자가 더욱 궐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이만영 회장의 장애인집회 폄하 발언이 한국장애인부모회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그저 촛불집회에 혼쭐이 난 이명박 정부를 위로하려는 한 자연인의 돌출발언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장애인의 고결한 투쟁에 딴지를 거는 행위는 모든 장애인에 대한 분명한 결례(缺禮)이므로 마땅히 철회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분명한 해명과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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