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인천지역 장애성인 교육권 쟁취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장애성인 교육권 문제를 풀기위해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에이블뉴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전날밤

경찰서에서 "불법 집회인지 알았느냐? 다음에도 또 불법집회하면 가담하겠느냐?"라는 질문에 저는 "저의 의지가 아니에요. 불법과 합법에 대한 저의 가치기준은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교육을 받아야하는 학생분들의 생각이 제가 생각하기로는 불법집회의 여부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불법집회를 하면 저도 응당 함께 해야겠지요. 이건 저의 잘못이 아니니까요"라고 답을 했습니다.

지난 10일 낮부터 그 다음날 새벽까지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장애인야학 학생, 교사 30여명이 경찰들과 한판 붙었습니다. 교육청 앞에 천막을 불법으로 치려고 했다는 이유로 장애가 없는 교사 몇몇이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윗 글은 이날 연행됐다가 풀려난 한 교사가 야학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장애인들이 제때 학교에 가지 못했던 것은 바로 차별이 원인이었습니다. 수많은 장벽들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올 수 조차 없었습니다. 어렵게 학교까지 가면 턱과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장벽은 '장애인이 공부해서 뭐하냐'라고 부모들에게 패배의식까지 심어주게 했습니다.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천막에 쇠사슬을 묶고 밤새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절박함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언론은 왜 거의 없는 것일까요? 뒤늦게라도 배우고 싶다는 그들의 요구가 이기적인 것인가요?

현장에서 만든 장애인차별금지법

오늘 주간브리핑의 주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입니다. 바로 며칠 전까지 총선기사로 도배됐던 에이블뉴스가 이제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벽지를 바꿨습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는 첫날이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긴장과 흥분이 조금 가라앉으셨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넘쳐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기사를 모두 소화하지 못해 갑갑할 따름입니다.(기자가 기사거리가 많다고 또 투덜대네요. ㅋ)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만든 법입니다. 어려운 말이지만 이 말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Nothing about us, but without us!'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저는 장애인의 문제는 장애인당사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이러한 정신이 가장 잘 담겨있는 법입니다. 대한민국 입법사에서 이렇게 의미있는 법이 얼마나 더 있을까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왜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기억하시는 독자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는데 에이블뉴스는 지난 2006년 1월 왜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인가라는 주제로 특별 릴레이기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에이블뉴스의 질문에 답을 해오신 분들의 목소리를 옮겨봅니다.

"장애인 관련 법안들이 선진국가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들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실질적인 강제수단이 없는 껍데기만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성문화되어버린 법안들이 때문인 것이다. 장애인편의증진법이 있긴 하지만, 아직 공공기관 조차도 장애인의 편의시설 설치율이 낮은 편이며 장애인 고용촉진법이 있지만, 고용촉진기금 고갈로 고용장려금 축소, 폐지가 되거나 장애인의 실업률이 일반 실업률에 비해 8배가 넘는 것도 이러한 것들을 강제할 만한 강제수단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강제수단이 없는 껍데기로 된 까닭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노동이나 교육이나 철저히 차별받는 중증장애인들의 욕구들과 목소리들을 모아 투쟁의 현장을 조직하지 못하고 그들이 스스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들이 미흡했다라고 생각한다."(박현)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의 차별의 문제를 다루어 왔던 것은 단순한 서비스 전달의 수준이었다. 인권이란 미명하에...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장애인은 역시, 철저히 대상화되어 왔다. 장애인은 인권 장사에 필요한 상품일 뿐이지 문제 해결의 주인은 아니었다. 장애인은 그들의 인권 요리에 좋은 재료이고 양념일 뿐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책참여와 결정은 비장애인 중심이었으며, 장애인은 어떠한 할당도 인정되지 않고 배제되어 왔다. 그것은 단순히 할당과 배제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가치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장애인당사자의 사회정치적 힘은 하찮은 것이며 시혜적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동안 증명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장애인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사회적인 힘을 평등하게 분배하고 무엇보다 장애당사자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진지한 논의와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구조를 해소해가는 첫 걸음일 것이다."(박경석)

"장애인의 경우에는 고용뿐만 아니라 교육, 주거, 이동권, 정치참여, 정보에 대한 접근성 등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총체적으로 차별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문제는 다른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는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 장애인 차별 문제는 인생의 한 주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생애에 걸친 문제이며, 버스 앞에서, 식당 안에서, 화장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상적이고도 종합적인 총체적 문제이다. 그리고 뭉뚱그려서 장애 문제라고 하지만 장애 유형과 중증의 정도 등에 따라서 그들이 겪는 차별의 내용과 감수성은 천지 차이로 다양하다."(변경택)

"아직도 50%를 넘나드는 장애인들의 초등학교 졸업률, 턱없이 모자란 특수보조교사들, 가까운 학교를 두고 멀리까지 학교를 가야하는 우리나라의 통합교육시스템. 또한 모든 사회생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이동권의 문제와 모든 정보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의 문제들, 단지 자기 표현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범인으로 몰리는 정신지체장애인들과, 교육시스템 조차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한 발달장애와 자폐장애인의 문제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장애인들이 살 수 없을 정도의 차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장애인들의 최소한의 생존만을 위해서라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꼭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김태현)

지난 11일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첫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박경석 장애인차별금지실천연대 공동대표가 참석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에이블뉴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을 기다려온 시민들이 적어놓은 반응들. ⓒ에이블뉴스

실효성 논란 잠재울 해결책 알고 있지만…

이미 정답은 나와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뚜렷이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종이호랑이로 만들지 않을 해결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굳이 독립 입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도 형성되지 않았던 그 당시의 얘기를 꺼내는 이유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을 겪고 있습니다. 어젯밤에서야 공개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은 온통 발효 시점을 늦추고만 있을 뿐이고, 그마나 곧바로 시행되는 사법·행정절차상 정당한 편의제공도 구체적인 조항들이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장애인당사자들의 힘겨운 투쟁으로 얻어낸 국가인권위원회 인력 20명 증원은 이명박 정부의 '작은 정부론'의 위세에 밀려 언급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축소되고, 약화되고, 김이 빠져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 실현이 됐고, 그냥 멈춰버릴 것만 같았던 유예기간 1년도 다 지나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은 희망을 이야기해도 좋을 때입니다.

박현씨의 분석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편의증진법이나 장애인고용촉진법, 장애인복지법이 유명무실한 법으로 전락했던 것은 단지 강제수단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당사자의 욕구와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장애인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장애인당사자가 스스로 변호사가 돼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조항들이 담긴 의미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장애인차별금지실천연대의 자료집은 너무도 적절했습니다. 에이블뉴스를 통해서 자료집 전체가 연재됩니다. 차별의 설움을 날려버리고 싶으신 분들은 꼭 클릭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은 깊이 새겨야할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장애인인권의 최소 가이드라인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국제장애인권리협약 비준을 서둘러야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인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은 우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담지 못한 보다 풍부한 것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그 존재의 이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옵니다. 시설에서 뛰쳐나와 오늘로써 18일째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내가 시설에 있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이들이 시설에 갇혀 살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에 귀를 기울여보니다. 사회복지시설 비리척결과 탈시설 권리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이 지난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한 '탈시설을 위한 시설생활인 증언대회'에서 한 장애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꿈이 어렸을 때부터 전파상 하는 거였어요. 집에 있으면서 하도 심심해서 누워서 라디오를 세 개나 조립했어요. 뜯었다가 원위치 하고 다시 반복 그런 거죠. 처음에는 안됐는데, 몇 번 하니까 되더라고요. 그땐 완전히 날아가는 기분이었죠. 누구한테도 배운 적이 없는데 내가 그걸 해낸 거잖아요. 나도 뭔가 할 수 있어요. 근데 시설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해요. 여건이 안돼요. 간단한 거지만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며 자유롭게 사는 거 시설에서는 못해요."

이들이 시설에서 살아야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 혹시 있나요?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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