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2009년 8월 18일 '장애인장기요양제도, 복지인프라 추진단' 현판식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왜 장애인복지 인프라 개편사업은 쏙 들어갔을까요? ⓒ보건복지부

정부가 장애인등록제도를 대폭 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6일 장애등급 판정제도에 대한 개선 방향을 제시했는데요. 이 방안에 따르면 일선 의료기관의 의사는 더 이상, 장애인의 장애등급을 결정할 수 없게 될 전망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일선 의료기관은 장애상태만을 진단하고, 최종 등급부여는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에서 결정하는 방식의 제도 개선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인데요. 검토라는 표현을 썼지만, 정부 발표자료를 잘 보면 내년부터는 신규로 등록하고자 하는 1~6급 전체 장애인에게까지 확대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지부는 중증장애수당을 신규로 수령하는 장애인과 활동보조서비스를 신규로 신청하는 중증장애인에 한해 장애등급심사를 진행해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부터 신규로 등록하는 1~3급 장애인까지 장애등급심사를 확대했고, 올해 7월 도입되는 장애인연금을 받는 장애인들도 장애등급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차츰 장애등급심사 대상을 확대하더니 드디어 내년부터는 전체 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등급심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입니다.

일선 의사들, 부풀려 장애등급 적어?

이 같은 방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에서 1, 2, 3급 장애등급을 받은 사람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등급판정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입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9만3천건에 대해 심사가 이뤄졌는데, 일선 의료기관에서 부여한 장애등급 대비 국민연금공단 심사 장애등급 변경 비율이 40%로 나타났습니다. 즉, 10건 중 4건은 장애등급이 잘못 매겨졌다는 것입니다.

이중 등급이 하향 조정된 비율은 36.7%(확인불가, 결정보류 포함시 39.6%)로 나타났고, 상향 조정된 비율은 0.4%로 나타났습니다. 10명 중 4명 정도의 장애 등급이 실제 장애보다 높게 매겨졌다는 것입니다.

장애등급을 결정하는 권한은 일선의료기관의 의사들에게 주어져 있는데요. 의사는 장애진단을 받으러온 장애인등록신청자의 장애등급이 적힌 장애진단서를 밀봉해 해당 신청자 관할 주민센터측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 10명 중 4명은 장애인등록신청자의 장애상태보다 더 높게 장애등급을 매겼다는 것입니다.

복지부 “환자와의 유대관계 때문”

이와 관련해서 복지부는 과연 어떻게 분석을 하고 있을까요? 장애등급 하향조정의 원인을 분석했더니 장애진단서와 진료기록지상의 장애상태가 상이한 경우가 74.3%(5,589건)로 나타났고, 장애등급 판정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경우가 14%(1,052건)로 나타나서 두 유형이 전체의 88.3%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복지부는 이 통계에 대한 해석은 주의가 필요하며 추가적인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 여기에 대한 해석은 주의가 필요하며, 추가적인 심층 분석이 필요

- 1차 장애심사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에서 장애판정기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객관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장애진단서를 발급하는 경우가 있으나 모든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려우며,

- 일선의 많은 의료인들은 그간 진료를 해온 환자가 신청인으로 요구할 경우 그간에 쌓인 유대관계 등으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제도개선을 요구

특히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 메인에서 복지부는 “전문가들은 장애등급심사에 따른 높은 등급 하향율은 그간 장애등급을 높게 써주는 관행이 있었음을 반증하며, 장애등급을 평가받는 장애인과 이를 진단하는 의사간 인간적 유대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장애등급심사제도는 장애판정의 일관성과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발표 자료에 적었습니다.

해석 주의가 필요하다면서 편향적 분석

의문이 들었습니다. 복지부는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며, 추가적인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면서도 서둘러 편향적인 분석을 내놓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분석은 ‘의사들이 환자와의 유대관계 때문에 실제 장애상태보다 높게 장애등급을 적었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분석을 하려면 해당 의사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것입니다. 왜 장애상태보다 높게 장애등급을 적었느냐고 말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측에 이에 대해서 문의했더니 의사들에게 왜 장애등급을 높게 평가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밟지 않는다고 합니다. 업무 범위 밖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입니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의사들이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인데, 그냥 묻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대가를 받고 그렇게 한 것인지, 정말 유대관계 때문인지는 조사를 해봐야 알 것입니다.

실제 1년이면 몇 차례씩 검찰에서 ‘가짜 장애인’ 일당을 적발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병원 관계자와 장애인등록신청자, 브로커가 결합해 문서를 위조해 허위로 장애인등록을 했다는 것입니다. 으레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받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발표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통계는 가짜 장애인 일당을 적발할 수 있는 증거 자료가 확보된 것이기에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는 장애등급을 거짓으로 매긴 의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해야할 것입니다. 정부의 사업 추진 방식대로라면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선 의사는 불쾌하다는 반응

그런데 에이블뉴스에서 일선 의사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이 의사는 장애등급 2급을 판정했는데,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에서는 등급외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의사는 한 마디로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의학적 소견에 따른 판단을 한 것인데,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번 자료를 발표하면서 장애인등록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장애등급심사는 장애등급판정 기준에 의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장애등급 부여로 장애인복지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장애인복지를 지속적으로 확대, 강화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정부는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환자와의 유대관계 운운하는 편향적 분석을 왜 내놓았을까요? 이것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복지부 발표자료부터 신뢰를 회복해야할 것입니다.

장애인복지 인프라 개편은 왜 쏙 들어갔나

복지부는 장애인복지 인프라개편 모의적용사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사업의 취지는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맞춤형 복지서비스가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장애인마다 장애 유형 및 정도, 또는 개인적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복지서비스가 다르기 때문에 장애판정에서부터 서비스 연계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개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지금과 같은 단순한 장애등급판정과는 다른 것이기에 장애인계는 정부의 사업 추진에 환영하며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런데 2차 모의적용사업까지 끝내놓고, 정부는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습니다. 수년간 진행된 사업이 올해부터 중단된 것입니다.

정부의 장애판정제도 개편이 신뢰를 얻으려면, 애초 계획대로 장애인복지 인프라개편 사업과 연계해서 추진돼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객관적인 분석 자료부터 내놓아야할 것입니다. 현재 장애인들은 복지부의 발표에 대해 기획재정부의 파워에 밀려 복지예산 확보를 제대로 못하니, 중증장애인 숫자를 줄여서 적은 예산에 맞추려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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