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거리에서 경찰에게 둘러쌓여 시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소형 플래카드를 들고 차별없는 세상을 외치고 있는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공동대표. ⓒ에이블뉴스

추노 마지막회에서 좌의정을 암살하고 나서 관군에 붙잡힌 노비 업복(공형진 분)의 모습. ⓒKBS

이번 주 끝난 KBS 드라마 <추노>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추노 종영에 대한 기사들이 넘쳐나고, 블로거들의 블로깅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추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새삼 느끼고 있다.

<추노>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장애인들에겐 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추노> 줄거리의 한 축은 노비당이 끌고 갔다. 대길(장혁 분)에게 잡혀온 업복(공형진 분)을 비롯해 수많은 도망 노비들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며 밤마다 일을 벌였다. 새끼를 꼰다는 이유로 모여서 어떻게 하면 양반을 죽일지 공모하고, 실제 총까지 입수해 양반 소탕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의 세력은 차츰 늘어갔고, 대동미 등의 출납을 관장하는 기관인 선혜청 습격에 나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노비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장례원까지 습격하려고 나섰지만,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노비당을 이용해온 그분(박기웅 분)의 배신으로 인해 결국 몰살을 당하고 만다. 이들은 결국 좌의정 이경식이 정국을 쥐락펴락하는데 이용당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홀로 남은 업복은 궁궐로 홀로 쳐들어간다. 총 네 자루를 들고, 정문을 뚫고 들어가 배신자 그분과 또 다른 배신자 조선비, 좌의정 이경식을 차례차례 죽이고 결국 잡히고 만다. 이때 세상에 순응하고 살던 반짝이의 아버지는 업복의 모습을 보고, 힘주어 주먹을 쥔다. 세상을 전복하려던 노비들의 꿈이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어제 집회를 보면서 <추노>의 노비들과 정말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점심식사를 하면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주최한 제6회 전국장애인대회 취재를 다녀온 후배 기자가 꺼낸 말이다. 세상을 바꾸자고 외치면서 거리로 나온 장애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추노>속 노비들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실제 집회 현장에서도 마치 현대판 노비와 같은 장애인들의 삶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도 한다.

보건복지부 청사 아래서 차별에 저항하라는 깃발을 들고 전국장애인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모습. ⓒ에이블뉴스

세상이 바뀌었고, 수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의 삶은 곤궁하기만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본인부담금이 올라서 대소변에서부터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속출하고 있고, 가족과 친지에게까지 성폭행을 당하는 장애여성들도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교육받지 못하고, 취직하지 못하고, 결혼하지 못하는, 평생을 시설과 골방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현대판 노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가오는 4월은 장애인의 달이다. 4월 20일은 30회째를 맞는 장애인의 날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 아니고, 장애인차별 철폐의 날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엄존하는 장애인차별을 없애지 않고는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고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차별을 철폐하기 위해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차별에 저항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올해도 현장투쟁을 벌인다고 한다.

그 시작이 바로 어제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열린 전국장애인대회이다. 이날 모인 장애인들은 뒤로 가는 MB정부의 장애인정책에 대해 성토했다. 장애인들의 생존권이 4대강에 빠지고 말았다면서 울분과 한탄을 쏟아냈다.

"MB정부는 장애인을 위한다고 하면서 기초장애인연금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이 연금이 과연 장애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연금인가? 정부는 장애인들에게 쥐꼬리 만한 연금을 주면서 우리를 위한다고 한다. 사기정부인 것이다. 정부는 장애인들의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이 규정하는 의무고용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MB정부는 완전히 거짓말 정권이다. MB정부는 가진 사람들만의 정권이다.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면서 온갖 정치적 수사는 다 쓰지만, 정작 실상을 알고 보면 4대강에 우리의 생존권을 다 빠뜨리고 있다.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 보장하지 않는 MB정부를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MB정부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민주화’, ‘자유’, ‘시민권’인 것 같다. MB정부는 장애인수당만으로도 장애인들이 살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장애인수당의 이름만 바꿔 기초장애인연금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고, 이마저도 한나라당의 날치기 예산 통과과정에서 반으로 뚝 잘랐다.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편의증진과 관련한 예산도 각 지역에서 모여든 요구를 반영해 예산이 만들어졌지만 이 역시 날치기 예산 통과과정에서 대폭 줄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워 실현하려다가 국민들의 반 이상이 반대하자 대운하사업을 4대강 사업으로 말만 바꿔 추진하고 있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기초장애인연금 예산을 깎으면서까지 하고 싶은지 묻고 싶다. 여기 있는 분들은 6월 2일 지방선거 때 꼭 투표하러 가야 한다. 형제, 부모, 자녀까지 다 데리고 가서 이 정부를 심판했으면 좋겠다."(경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송정문 공동대표)

장애인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는 전국장애인대회 참가자들. ⓒ에이블뉴스

이들은 100인 선언단을 조직하고 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철폐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1만원을 후원하면 장애인차별철폐 1000인 선언단에 참여할 수 있다.

"장애인민생예산을 죄다 삭감하면서 날치기 통과한 4대강 예산, 자연증가분도 채우지 못하면서 장애인의 본인 부담만 증가시킨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예산, 법조차 지키지 않는 장애인이동권 예산, 소득보전 수당을 전액 삭감해서 오히려 이 전보다 못한 생활비를 쥐어주며 장애인연금 도입했다고 말하는 사기 예산 등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친서민,장애인복지 정책이 대국민 사기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장애인의 날 특별한 행사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 하는 사회구조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자들은 이날 하루의 행사로 자신들의 행위에 면죄부를 받으며, 장애인의 현실을 저 깊은 땅 속으로 묻어버리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 '1000인선언단' 모집 공고문)

한국 사회에는 아직 차별을 당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중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가장 공고하고, 뿌리 깊다는 점에 대해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거리로 나선 장애인들은 스스로의 운동을 장애해방운동이라고 부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까지도 해방을 외치며 살아가야하는 장애인의 삶이 여기 있다. 4월 장애인의 달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 4월에는 제발 장애해방의 열쇠를 찾아보자. 더 이상 장애인 문제를 다음 순위로 미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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