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양(민솔희)과 박군(박종균)의 러브스토리, 이른바 '민박집 러브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오대산에서 찍은 사진. ⓒ민솔희

“천 번이고 다시 태어난 데도 그런 사람 또 없을 테죠.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어느 날 내 귓가에 이 노래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이승철’이란 가수가 우리 결혼식을 앞두고 우릴 위한 노래를 불렀구나라며 남편과 웃었던 기억이 난다. 프로포즈에도 결혼식에도 우린 그 노래를 타이틀로 동영상도 만들어 사용했다.

#1. 만남, 내 인생의 멘토

지난 상처들…

나의 남편은 46세, 광산 매몰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됐다. KBS 사랑의 가족 출연 모습. ⓒ민솔희

나의 남편은 46세, 척수손상으로 인한 1급 장애인이다. 나보다 11살이 많은 그에게는 나보다 11살이 어린 딸과 그보다 세 살 어린 아들이 있다. 그는 1991년 경북 연화광업소에서 광산 매몰사고로 장애인이 됐고 그로 인해 가족들은 불행한 시절을 보내게 됐다. 시간이 흐르고 남편은 재활을 통해 휠체어도 타게 됐지만 그와 가족들은 심리적인 재활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에 결국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됐다.

나는 35세, 해동검도 관장. 검도장 개관당시, 난 최연소 그리고 전국 유일의 여성 관장이었다. ⓒ민솔희

나는 35세, 해동검도 관장이다. 1999년 검도장 개관을 할 당시, 난 최연소 그리고 전국 유일의 여성 관장이었다. 나는 언니 하나에 오빠가 넷, 그리고 남동생이 있는 칠남매의 여섯째이자 작은 딸이었다. 밝고 긍정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나는 독신주의자였지만 당시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자 오빠들은 서둘러 결혼을 진행시켰다. 5년간의 결혼생활, 나는 딸과 아들, 두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결혼생활은 그리 평탄치 못했고 그토록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던 내 속에는 부정과 우울과 좌절만이 가득했다. 급기야 병원에서 건강이 위험하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저체중에 우울증세 까지 보여 결국 가족들의 도움으로 이혼을 하게 됐다.

장애와 친구 되기

이혼 전, 나는 오후 시간은 검도장 운영으로 바빴고 오전은 비교적 여유가 있어 배드민턴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배드민턴을 좋아했지만 정식으로 배워 본 적은 없었다. 제대로 배드민턴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에 그리고 전 남편과의 스트레스를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배드민턴 교실 개강, 50여명이 넘는 회원들 속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 서너 명이 있었다. 난 그전까지 장애인들과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배드민턴을 하겠다고 휠체어를 타고 온 장애인들을 보면서 난 의아했다.

‘아니, 휠체어를 타고 어떻게 배드민턴을 하지? 어떻게 운동을 한다는 것일까?’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들은 휠체어를 밀면서도 셔틀콕을 뻥뻥 맞추는 것이 아닌가. 회원 중 막내였던 나는 자동적으로 총무 일을 맡아 보게 됐다.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도 그들을 아저씨라고 불렀지만 나는 위로 나이차가 많은 오빠들이 있어 그들에게 자연스레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그들도 편했던지 늘 ‘솔아, 솔아’하며 나를 불러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운동 중에도 날 불러 차에 가서 뭘 좀 가져다 달라거나 부탁을 하면 난 그게 신나서 그렇게 깡충깡충 뛰어다니곤 했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쉽게 친해졌으며 장애인들의 생활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게 됐다. 그토록 어렵고 딴 세상 사람들 같았던 장애인들이 어느 순간 나와 친구로 손을 잡고 함께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참 뿌듯했다.

만남, 인생의 멘토

1년이 지났다. 난 여전히 배드민턴교실에서 총무였다. 어느 날 휠체어 팀에 낯선 사람이 왔다. 조금은 깐깐한 듯 보이지만 귀여운 이미지의 한 남자. 신입회원을 소개 해주는 휠체어 팀의 오빠는 ‘종균이 형님이시다. 우리들처럼 그냥 오빠라고 부르면 돼’라고 말한다. 웬걸, 소개를 시켜주는 오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형님이란다. 여하튼 나는 그렇게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나게 됐고 여느 오빠들과 마찬가지고 막내 여동생으로 따르게 됐다.

회원들은 일주일에 5일 운동은 나오지만 그 사람은 한 달에 5일은 나오려나. 늘 그렇게 바쁘다는 것이다. 함께 운동하던 오빠들은 그런다. ‘형님은 원래 바빠. 늘 바쁘시지.’ 알고 봤더니 그는 저 사람이 장애가 있나 싶을 정도로 활동도 많이 하고 당당해보였다. 그동안의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나는 하나하나 깨기 시작했다. 기존에 같이 운동하던 휠체어 팀 오빠들도 다들 내게는 낯설었었다. 한 사람은 컴퓨터 전문가, 한 사람은 장애인스키 국가대표였다. 그것만도 내게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내 삶을 반성하듯 혹은 커다란 망치로 머리 한 대 얻어맞은 것만큼의 초특급 충격제였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나보다 더 했던 것이다.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 충주시 장애인체육 단체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했고, 산업안전강사로 활동 했으며, 방송통신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람들에게 산업재해 상담을 해주기도 했고 자신이 직접 사회복지를 공부하겠다며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 장애인복지를 공부하고 있었다. 또한 장애인 여행과 관련해 방송리포터, 여행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었으며 심리상담 관련 공부까지 하고 있었다.

산업재해 안전 강의를 하고 있는 나의 남편. ⓒ민솔희

검무 몽중인을 펼쳐 보이고 있는 나. ⓒ민솔희

마침 그가 모임에 들어오고 나서 장애인의 날이 있었다. 각종 방송사에서 그에게 인터뷰를 부탁했고 웬만한 학자보다 똑똑하고 논리적으로 웬만한 정치인보다 말 잘하는 그 사람은, 늘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삶이 결혼으로 인해 막혀있던 내게는 커다란 자극이 됐던 것이다. 그런 그 사람을 우리 모임의 코치나 회원들도 모두 좋아했다.

‘종균 씨는 장애인이지만 늘 자기관리를 잘하나봐. 사람이 참 깔끔해.’

‘종균씨는 공부를 많이 했나봐. 사람이 참 똑똑해. 어제도 아홉시 뉴스에 나오더라고.’

사람들을 지금의 내 남편에 대해 그런 관심과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모두들 그에게는 참한 아내가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워낙 깔끔하게 하고 다녀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아흔이 되신 홀아버지를 모시고 두 아이를 키우며 지내던 홀아비 가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기 보다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주기위해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늘 그 사람 주변에서 다른 장애인들이 둘러싸고 있다.

‘형. 그거 어떻게 해야 하죠.’

‘어 그건 말이지…….’

난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 ‘엄마는 해결사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제 보니 여기는 형님은 해결사잖아.’그렇게 나는 그 사람을 늘 신기한 눈으로 보게 됐다. 그는 일 년 동안 운동 나온 날이 십여회 남짓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임에 행사가 있을 때는 늘 함께 했고, 나와는 인터넷에서 가끔 대화하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워낙 강한 충격을 준 사람이라 사람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장애인, 내게는 내 인생의 멘토가 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2. 새로운 인연으로------------------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내 인생에 내 남편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대변해줍니다. 남편과 나, 우리 인생에 노무현 대통령은 또한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라는 말로 우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상에 그분에 대한 동영상이 많이 올랐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님! 새로운 세상에서는 원 없이 뜻을 펼치시길 기원합니다.

*'민박집 러브스토리'는 민솔희씨와 박종균씨의 러브스토리를 줄여서 만든 말입니다. 에이블뉴스는 민솔희씨와 박종균씨가 직접 쓰는 민박집 러브스토리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사랑도 코치가 필요합니다. 에이블뉴스는 장애인 러브코치를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러브스토리를 적어 보내주시면 됩니다.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ablenews@ablenews.co.kr

검도7단의 검도관장 민솔희와 척수장애1급의 박종균. 결혼이야기는 민(양)박(군)집 러브 스토리로 이미 알려졌다. 지금은 천안 나사렛대학교에서 더 많은 장애인들과의 희망 이야기를 꿈꾸며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강의를 하고 있다. 장애인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장애인체육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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