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의 장애인화장실이 가족사랑화장실로 바뀌고 있다. ⓒ이상우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특히 사회적 약자가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제공하여 연령, 성별, 장애 등으로 제약을 받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아빠도 편하게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다목적 화장실을 만드는 것은 환영할 일이고 더 많은 시설들이 설치되어야 바람직하다. 그러나 기존의 장애인화장실이 다목적화장실(가족사랑화장실)로 변모해버렸다.

이는 장애인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특성에 따른 장애정도를 반영한 정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정책은 다목적이라는 명분으로 장애인의 생명유지를 위한 생리적인 기본권을 지켜주지 못하고 이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사고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지체장애인이다.

척추를 다치거나 척추에 질병이 생겨 장애를 가지게 되면 수상부위의 하부는 신경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의 사례인데, 수상부위 아래에 위치한 내부 장기를 포함한 거의 모든 기관의 기능이 상실될 수도 있다.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모든 사람은 아님)은 시간에 맞춰서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한다. 특히 외출 시나 장거리 여행을 할 경우 특별히 신경을 써서 일정을 조정하고 생체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나 흔히 할 수 있는 여행 한 번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어쩌다 여행이라도 계획한다면 준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가능하다.

얼마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경험한 일이다.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가족사랑 화장실’로 향하였다. 그런데 이미 다른 사람이 사용 중이었다.

30여분을 기다려도 반응이 없어서 혹시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안에 누구 있어요?”라고 외치자 안에서는 “네, 있어요!”라고 대답을 하여서 계속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고, 온 몸은 서서히 미열과 함께 떨림과 무기력증으로 가라앉는 현상이 찾아와서 어쩔 수 없이 일반화장실의 한 쪽 벽면의 모서리에서 소변을 배출시켰다.(여기서 배출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자의적인 배뇨가 되지 않으므로 방광을 압박하는 수의적인 방법과 배뇨기구를 사용하여 소변을 빼내야하기 때문임)

이후 10여분이 지나서 문이 열리는데 일가족4명(아빠, 엄마, 어린자녀2명)이 나오는 것이었다. 일가족이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는 문화, 너무 아름답고 보편화되기를 바라지만 자의적인 배뇨·배변을 조절할 수 없는 장애인의 경우는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긴 시간동안은 거의 초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현실임을 이해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 당사자는 불안과 초조와 긴장의 상태로 몸이 점점 다운되는 현상을 경험하며 두려움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합병증을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그 고통을 알 리가 없다.

의학용어로 ‘신경인성방광, 신경인성대장’을 앓고 있는 장애인의 경우는 제때에 배뇨를 하지 않으면 방광 내의 소변이 요관, 깔때기, 콩팥실질 안으로 역류하는 현상이 생겨 요로감염증(특히 급성 깔때기콩팥염)을 합병하기 쉽다. 소아나 성인 여성은 발열 등 요로감염증 증상으로, 성인 남성은 단백뇨, 고혈압 등의 콩팥기능장애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심하면 콩팥기능을 완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공공시설의 장애인화장실은 언제나 장애인이 이용가능 하도록 보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장애인화장실을 ‘가족사랑화장실’로 탈바꿈시키면서 장애인의 기본권인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가? 장애인의 생명을 담보로 한 ‘가족사랑화장실’이 정말 사랑으로 운영되고 있는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족사랑을 실현해주는 ‘가족사랑화장실, 즉 다목적화장실’은 이대로 괜찮은 건지? ‘장애인화장실’을 ‘가족사랑화장실’로 용도를 변경한 우리나라 공공행정은 각성하길 바라며, 대한민국의 모든 공공시설의 ‘장애인전용화장실’과는 별개로 ‘다목적화장실’을 증축·운영하여야 비로소 바람작한 가족사랑을 위한 편의시설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간곡하게 부탁한다. ‘가족사랑화장실’을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장애인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공간, 장애인이 마음 놓고 사용하기에 제약이 없는, 장애의 특성을 반영한 독립된 공간으로의 ‘장애인화장실’을 용도변경하지 말고 ‘다목적화장실’을 추가로 설치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민·관·학계 전문가들의 자문과 장애당사자의 입장을 반영한 체계적이면서도 시설의 용도와 활용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 글은 부산광역시산업재해장애인협회 이상우 사무처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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