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 조직국장. ⓒ에이블뉴스 DB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더불어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등 후진적 복지환경이 함께 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장애등급제가 문제투성이라는 사실은 장애계의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하는 상황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장애등급제의 최대 피해자이다.

인간의 정신적 능력이란 인간생활의 다양한 요인에 의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영역이며,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복잡한 인간의 두뇌활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비교 가능한 기준을 설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할 수 있다.

현재 발달장애인의 등급은 학습능력정도를 추정할 수 있는 지능지수와 검사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높은 사회성숙도 등의 검사를 통해 이를 기계적으로 환산한 점수로 결정하고 있다. 결국 발달장애인에게 있어 등급을 나누는 것은 행정적 관리의 용이함 이외에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될 경우, IQ 1점 차이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못 받는 사태, IQ 1점 차이로 연금을 못 받는 사태, 어제까진 영 상태가 안 좋다가 등급검사 받는 당일 갑자기 상태가 좋아져 등급이 떨어지고 덩달아 서비스도 못 받는 사태, 마음씨 좋은 의사를 만났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사회적 생존과 직결되는) 서비스 수급여부가 결정되는 사태가 여전히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번 총선에서 모든 야당들이 장애등급제의 개선·폐지를 공약하였으며,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새누리당은 장애등급제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상황이다.

향후 새누리당의 장애정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록 당선자가 장애등급심사가 한창 문제가 되었을 때 장애등급심사 명예 센터장을 한 바도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에 대한 새누리당의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장애등급제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하지 못한다면 새누리당표 발달장애인법은 ‘1급만을 위한 발달장애인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편 현재 발달장애인과 관련해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장애자녀부모들은 자녀의 부양에 등골이 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모든 복지제도에 적용되고 있는 부양의무제로 인해 부모들은 자녀의 부양을 떠안고 있는 것과 동시에, 자녀들이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마저 가로막는 ‘원죄’까지 저지르고 있다. (부모가 이 사회에서 사라지고 장애자녀가 혼자 남게 되면 생활시설에서 발달장애인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이 복지공약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새누리당은 기초법의 부양의무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그 이후에는 감감무소식인 상태다. 따라서 부양의무제 폐지 또한 새누리당을 상대로 열심히 투쟁해야 실현 가능한 문제다.

이 같은 부양의무제가 폐지되지 않고서는 새누리당표 발달장애인법은 ‘부양의무자 없는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발달장애인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상태에서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를 당장에 폐지하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법에 있어선 해당 기준과 무관하게 시행하도록 법에 규정하고 점차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가 적용되지 않은 장애인복지서비스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가능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가 적용되지 않는 장애인복지서비스는 일정정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발달장애당사자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발달장애인법 제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바람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발달장애인들은 가지고 있는 손상 등으로 인해 자기 판단과 주장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 대부분 부모나 주변 관련자들이 의사를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한국의 입시위주의 교육환경은 발달장애인당사자가 자기주도성을 계발해나가는데 있어 상당한 제약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대안적인 당사자들의 자조모임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실정에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다 많은 발달장애인당사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법률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복잡한 개념의 이해와 다양한 판단이 요구되는 법률 논의에 발달장애인당사자들을 기계적으로 참여시킨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현재 이 같은 문제의식 반영한다면 제도를 설계하는데 있어 발달장애인에 대한 권리를 보편적인 수준에서 규정하고, 실제 운영에 있어선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체계를 구성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선 당사자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다양한 협력자들이 필요할 것이며, 이 협력자들과의 집단적인 결정이 정기적으로 평가받는 체계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체계의 구성은 의사결정에 따른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고,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당사자의 의견을 억압할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각 개별 상황에서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할 문제이며, 오랜 기간 수정보완을 거치며 완성해나가야 할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와 행복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설정하고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투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이제 확실히 발달장애인의 문제는 장애계의 주요 이슈가 됐다. 그리고 현재 이 이슈를 주도할 분명한 세력도 존재하는 상태다.

2012년이 보다 적극적인 요구, 적극적인 투쟁을 통해 우리사회 발달장애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진보신당 또한 작은 힘이지만 제대로 된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관심과 연대를 충실히 할 것이다.

*이 글은 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직국장 구교현(진보신당 장애인위원회) 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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