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운동권의 화두는 아마 이동권일 것이다. 이동권은 사실 기본 권리 정도로 분류하지만 실은 내 생각엔 기본권이 아닌 ‘필수 권리’이기 때문에 그런 듯 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동권에 관한 주제로 기고해 볼까한다.

그러면 장애인의 평생 숙원은 무엇일까? 아마 십중팔구는 자립(自立)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인간이란 본래 부모 밑에서 자라다가 일정 시기가 되면 부모에 곁을 떠나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섭리이지만 장애인들의 경우 그러기 쉽지 않다.

자립에 한자가 ‘스스로 자’의 ‘설 립’이라 스스로 서기 어려운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에겐 어려운가하는 농담 섞인 생각을 해보곤 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유토피아라고 하는데 진정 그것이 유토피아라면 장애인들은 섭리의 영역조차도 침투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남들 다하는 흔해 빠진 짓이 과연 불가능할까?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난 자립이란 말의 의미를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자립이라 하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맞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적잖은 것 같다.

도움을 받아야만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 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큰 결심이 서서 ‘이제부터 난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낼 거야’라는 생각 후 자신이 (지금 당장) 불가능한 영역까지 시도해 보려고 애쓰다 큰 상처를 입었다면 그는 어떻게 될까?

아마 크나 큰 마음의 상처까지 입고 말 것이다. 게다가 그를 본래 돕던 가족이나 친구들은 그에게 격려대신 애정 어린 질책의 화살이 날아 올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한다니까 괜히 넌 공연한 일을 만드니?’

이런 말을 들으면 그의 마음속엔 이런 생각만 맴돌 것이다.

‘난 역시 무얼 해도 안 되는 놈이야….’

사람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누가 옳고 그른 건 없다. 그 판단의 영역은 신에게 있다. 사회에서도 조금 전 든 예와 같은 일이 내 앞에서 벌어져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자립은 분명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러나 쉬운 일 또한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신체적으로는 자립을 말하기가 힘든 상태이다. 허나 난 이미 자립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족들이 염려하지 않는 선에서 모든 일은 내가 결정한다. 누군가에게 끌려 다니는 수동적 삶이 아닌 능동적으로 살고 있다. 물론 그 영역을 더 넓히려고 애 쓰는 중이다.

도움을 받는다고 ‘덜 된 사람’이고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나은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최선을 다하고 도움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용기 있게 도움을 구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자립의 시작이다.

난 오토 다케 씨나 닉 부이치치 씨 같은 분들에게 박수 쳐 줄 수는 있지만 존경하진 않는다. 우리 사회에선 마치 그것이 정의이고 장애인의 필수 롤 모델화 되는듯한데 개인적으로는 그 사회 여론에 역행하고 싶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자신감 있게 주눅 들지 말고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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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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