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느 척수장애인이 쓴 '어느 쪽이 더 중증인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똑같이 휠체어를 타는 척수(척수손상에 의한)장애인과 뇌성마비(소뇌손상에 의한)장애인을 놓고 봤을 때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나와 같은 뇌성마비장애인을 더 중증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겉으로 볼 때 척수장애인은 편안해 보이는 반면 뇌성마비장애인은 몸도 얼굴도 비틀려있기에 무지 불편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된 시각이라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뇌성마비장애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신경이 살아있는 반면 척수장애인은 다친 척수 아래 부분(편의상 하반신)의 신경이 죽어있기 때문에 대, 소변의 마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성생활 또한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물론 생물학적으로 볼 때는 “척수장애가 더 심한 장애다.”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뇌성마비장애인들이 얼마나 수긍할까? 내 친구들 중에는 척수장애인들도 있어서 그들의 그런 어려움들은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삶은 생물학적인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 난 그들이 부러웠고 지금도 그들이 부럽다.

그들의 상반신(역시 편의상)은 비장애인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바보 또는 어린아이 취급은 받지 않는다. 언어장애 또한 없기 때문에 의사표현 또한 자유롭다. 이성에게도 인기가 많다.(내가 볼 때도 뇌성마비장애인보다는 척수장애인에 더 호감이 간다.) 그리고 개인차가 있겠지만 양 팔 또한 자유롭기 때문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면 업무 능력 또한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가 없고 또한 그들은 자동차 운전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혼자 갈 수 있다.

직업 훈련원에서의 졸업이 가까워 왔을 무렵 척수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하나 둘 취업을 나가는데 나를 비롯한 뇌성마비친구들은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머리만을 가지고는 살기 어렵다”는 것을….

척수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이런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넌 그래도 여자랑 거시기는 할 수 있지 않느냐”고. 글쎄, 그럼 뭐 하겠는가 정작 여자들은 난 거들 떠도 안보고 그 친구(척수장애)들을 좋아하는 걸.

성생활의 가능여부를 떠나서 어차피 결혼(연애)하기 어려운 건 피차일반인데, 그리고 오랫동안 없이(?) 살다보면 그 기능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워 차라리 없었으면 할 때도 있는데….

이렇듯 “누가 더 중증인가?” 하는 문제는 지극히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견해일 뿐, 객관적이기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이 글은 에이블뉴스 애독자 강병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을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연락을 주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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