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극복, 위기 극복, 불황 극복, 가난 극복. 극복(服)이라는 단어는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내는 것이자 적을 이기어 굴복시킨다는 뜻이다. 장애 극복이라는 말은 결국 장애가 악조건이나 고생이고, 적이라는 뜻이다. 편향이다.

구식적인 사고방식은 장애인이 변해 사회에 맞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갖고도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사회와 환경이 변해야한다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도입된 지 이미 오래다. 그렇다. 장애 극복은 구식적인 사고의 잔유물이다.

올해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경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15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남도의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장애극복상 조례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우리는 장애가 악조건이 되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 행정기관·도의회가 이를 위한 방법은 찾지 않고 장애인이 혼자서 상처투성이로 수렁을 빠져나오는 것에 박수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자치법규정보시스템을 검색해보니 장애극복상 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목포시, 전라남도, 충청남도, 제천시, 의왕시, 광주광역시 동구, 인천광역시, 대구광역시 남구, 서울특별시 송파구, 서울특별시 양천구 등 10곳이었다. 서울특별시,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는 조례 없이 장애극복상을 매년 시상하고 있다.

장애극복상은 중앙정부에서 1997년 처음 만들었는데, 1996년 9월 15일 우리나라가 제1회 루즈벨트 국제장애인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정부는 1997년부터 올해의 장애극복상위원회를 설립하고, 4월 20일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명의의 장애극복상을 시상해오고 있다. 상금도 주는데, 1인당 1천만원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달라졌다. '장애 극복'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많자 위원회 명칭을 올해의 장애인상 위원회(위원장 변승일)로 변경하고, 장애극복상이라는 명칭도 올해의 장애인상으로 고쳤다. 먼 길을 돌아 이제 제자리로 온 것이다. 명칭을 수정한 만큼 상의 취지도 다시 살펴보고, 적합한 인물을 찾아 칭찬해야할 것이다.

이제 각 지자체의 장애극복상도 달라져야할 때가 됐다. 장애인권상을 시상하자는 의견도 있고, 장애자립상을 시상하자는 의견도 있다. 장애인들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면 상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고, 좋은 명칭도 찾을 수 있를 것이다. 언론도 이제 장애극복의 신화는 그만 쓰고,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사회환경 개선에 주목해야할 때가 됐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