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런던장애인영화제에 다녀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 DPI의 장애인인권 영화제와 한국농아인협회의 영화제가 있느니만큼 공연문화의 본산이라 일컬어지는 런던에서의 영화제에 대한 관심이 컸던 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회와 함께였다.

올해 6번째로 치렀던 제주 영화제보다 한해 먼저인 1999년부터,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기점으로 개최된다는 그곳은 드라마, 다큐, 애니메이션과 실험영화 등 매년 1000여개의 영화를 입수하여 장애인이 감독이나 배우 등 그 제작과정에 참여했거나 장애인을 주제로 만든 영화를 우선 선정한다고 한다.

매년 65개 정도 상영되는 것에 비해서 올해는 46개로 줄어들었다는데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지 못했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어서 장애인 분야의 예산 부족타령은 어느 나라나 별반 다르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영국국립영화극장에서 열리는 영화제 치고는 관객은 설렁할 정도로 작았고, 장애인 당사자들도 그다지 많지 않고 취재진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영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지력을 가지고 있느냐는 우리 질문에 영화제 총감독인 찰라(1브레이스 착용)는, 많은 숫자를 동원하는 것에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담담하고도 약간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영화제의 가장 큰 목표는 장애인 예술가를 육성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장애인 관객을 확대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홍보의 역할 또한 적지 않을 것인데 싶었지만, 하기야 한 해 동안 런던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의 숫자가 400개가 넘는다고 하니까 규모나 크기로 성공의 여부를 측정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실지로 많은 장애인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장애에 대한 영상물을 만들고 있지만 장편영화를 구하는 건 아직도 어려운 문제라고 하여 베를린 영화상을 받은 우리나라의 ‘오아시스’를 아느냐고 했더니 물론 알고 있지만 공주 역을 맡은 여주인공이 장애인 배우가 아니어서 선정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했다.

일반 영화에서 흑인을 백인이 분장하여 할 필요가 있느냐? 여성을 남성이 구태여 할 필요가 있느냐? 이건 장애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역할을 장애인 배우가 직접 맡는 것은 단순한 배역의 문제가 아니고 장애인의 사회적 존재에 대한 정치적인 문제이다.

그의 대답은 시의 적절한 것 같았다. 물론 모든 문화적인 매체 속에서 장애인 캐릭터를 장애인이 무조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장애’라는 본격적인 테마를 삼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스스로 그 역을 해내는 것부터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장애가 비장애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대상성에서 벗어나 어떤 형태로든지 그 주체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거기에서 상영되는 영상물들은 대체적으로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것이 많았다.

개막작으로 상영된 ‘댄스’라는 영화는 한쪽 다리가 절단된 주인공이 한 다리를 가지고 댄스계에 성공하기까지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이내믹하게 그렸는데 같은 춤꾼인 이복형과의 갈등 설정이나 폭력사건까지 유치하기조차 했지만 실제 주인공인 장애인의 춤솜씨와 스턴트 활약은 참신하고 경쾌했다. 인도 특유의 화려함과 음악이 가미되어 대중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였다.

그리고 나머지 작품들도 ‘장애’라는 것을 문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새롭고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에 있어서는 우리의 장애관련 영상물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이동권이나 자립생활 등 생존권의 해결을 위해 몸부림치는 영상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감추어지고 가려져 있던 장애인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모두 다 외부로 뛰쳐나온 상황이라면 그들은 오히려 그들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성숙한 문화적인 토양 위에서 독특한 영상미와 독창성, 미학적인 면에 더 중점을 두었다. 나 스스로 전문적이지 않아서 뭐라고 정확히 집어내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카메라 작업은 과감하고 능동적이어서 같은 사물을 포착해내더라도 기존과는 다른 주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즉, 사회가 중심에 서 있어서 그 관계에서 허우적거리는 개인의 비극을 드러내거나, 그러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의 일상은 안정되어 있고 내적인 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자기미학에 골몰하고 있었다.

물론 난독증이나 말더듬장애에 대한 홍보성 단편영화도 있었고 정신보건법에 대한 비판적인 다큐멘터리도 있었다. 그리고 에이즈, 동성애자, 노인문제 등 장애라는 개념을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시켜 나가는 의도도 돋보였다.

워크숍의 주제도 포스터모더니즘의 생활 음향이라는 세부적이고도 전문적인 것을 가지고 청각이나 시각 장애인의 접근권에 대한 모색을 하고 있었는데, 완전한 접근성에 대한 고민은 우리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런데도 대중적인 이념에 머무르지 않고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저변확대가 폭넓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느니만큼 부럽게 여겨졌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나 제 3세계에서는 해결해나가야 할 사회적인 문제들이 중첩되어 있고 이런 이슈들이 역동적이고도 적나라한 서사적인 문학을 만들어낸다면 유럽문학은, 특히 북유럽 쪽은 철저히 내면성을 지향한다. 사회 속의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개인 속에 모자이크된 사회를 조용히 그려낼 뿐이다. 나는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어디서 이런 조용함, 자기관조가 나왔을까, 의아해하곤 했는데 이번에 런던과 파리, 독일 여행을 통해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풍경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완성된 사회 속에 침잠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서양문명의 모든 기반이 된 기독교의 음과 양을 실컷 체험했고 앞서가는 물질문명으로 온 세계를 주물렀던 제국주의를 통해 그들의 힘을 마음껏 과시해보았고, 그리고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치루면서 물질의 허망함마저도 끝까지 경험했다. 그들이 의지하는 건 사회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고 힘도 아닌,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지는 개인의 자유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완결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길게 보면 끊임없는 반복을 역사적으로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다른 이미지와 다른 체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문화적인 의의가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그들이 장애인 세계관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라면, 그들의 미학적인 업적과 우리의 역동적인 현장성을 함께 아울러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인 공간을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가 거의 다 걸리는 여정을 통해 우리나라 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단이 런던영화제에 참석한 일은 우리한테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강한 문제의식과 활발한 추진력을 실어준 그 역할이 크다고 보여진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