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째 장애인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사실 20여년 전에 나의 머리에는 지체장애인 이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장애, 그것은 바로 지체 장애인이요, 지체장애인이 장애인의 전부였다. 지체장애인 중에서도 목발을 짚은 장애인이 지체장애인을 통칭하는 나의 언어였다.

그러던 나에게 세월의 변화는 여러 만남을 제공하였다. 1981년 즈음, 동대문 도서관에서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당시 동대문 도서관은 지체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배려하였다. 그곳에서 다른 장애인을 만날 수 있었다. 전국지체장애인대학생연합회(이하 전국지대연) 학생들을 만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정립회관 중심으로 지체장애인의 미래를 고민하는 장애인 틴에이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때 만났던 장애인 형제자매들이 현재 장애인 운동 현장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1987년 나는 정신지체인을 만나게 되었다. 발달장애인도 만났다. 얼마후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만났다. 청각장애인도 만났고, 시각장애인도 만났다. 참으로 다양한 장애인들을 만났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장애인의 범주는 범차 확대되다가 고정관념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1990년 다양한 장애인들이 모여 조직화하는 일을 시도하고 있을 때 나를 당황케하는 일을 경험하고 말았다. 장애인 분야에서 일하는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겪는 장애 이외에는 장애로 인정할 수 없어!" 그는 자신이 경험하는 장애 이외에는 어떤 것도 장애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장애 이외에는 어떤 장애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니까.

지체장애인은 지체장애인의 문제를 가장 잘 안다. 그리고 잘 대변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도, 청각장애인도 그리하다. 그러나 지적장애인(知的長愛人)은 그러한 위치에 설 수 없다. 누군가가 대변해 주는 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장애인 가족들이 나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시각을 살짝 바꾸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지체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의 문제를 대변할 수는 없을까? 시각장애인은 청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대변할 수는 없는가? 청각장애인은 지체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는가? 다시말하면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장애의 문제를 대변하고, 그러한 입장을 옹호할 수는 없을까?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을 주창한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통합을 말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다양한 범주의 장애인 간의 통합은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오히려 장애인 범주 간에는 통합보다는 균열이 더 심각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장애인의 사고 방식 안에서 특정한 장애의 틀이 무너지는 경험이 필요하다. 만일 내가 경험하는 장애에만 고착되어 형성된 장애관념이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변화되어야 할 장애의식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 장애인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지적장애인을 대변하고, 지적장애인의 가족과 함께 하나가 되어 통합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이것이 장애인의 힘이 될 것이다.

장애인들 간에 벽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한 벽이 현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안에 있는 벽이 허물어지고,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편견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장애인들이 원하는 통합된 사회가 아닌가?

보다 넓은 눈과 시야가 요청된다. 여러 단체, 기관, 운영체 등으로 인하여 파편화되고, 나뉘어지는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다양한 모습 속에서 혁명적으로 연합하고 대변하고 서로 격려하는 모습이 장애인 현장에서 일어나야 한다. 장애인 간에 통합된 모습을 통해서 사회통합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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