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학교를 신설하는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교육청 하는 일이 늘 그렇듯이 무계획으로 툭 던져놓고는 그때부터 야단법석이다. 국제중학교가 왜 필요한지 그 이유는 모르겠고, 그렇게 할 여력이 있으면 번듯하게 고등학교를 세워 국가에서 최고의 교육을 시켜가기 위한 시범학교운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법인이 내야 할 재정분담금은 눈 딱 감고 모른 척 하는 놈들에게 퍼주지 못해 안달을 내고 있단 말인가. 고등교육까지 국가에서 운영을 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그만인 것을 왜 툭하면 특수목적학교를 만들려 하면서 교육의 전부를 국민에게 책임 지우려 한단 말인가. 지금 시점에서 국제중학교가 그토록 필요한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교육현실은 날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으며 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는데도 그런 것은 외면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전시적인 것들만 행하려 하는 저의가 무엇이란 말이냐.

진정 교육을 걱정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당장의 교육현실을 개선해 아이들이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입시에서 벗어나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고,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해 주는 것이 우선이지 ‘뚝딱!’하고 하나 만들어 놓고, 또 하나 만들어 내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이미 자사고, 특목고, 외고 등 별별 학교가 넘치지 않는가. 그런 학교들이 본래의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점검을 먼저 해 봐야 할 일이고, 그들 학교가 얼마만큼의 교육적인 효과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그런 중에 특수교육은 또다시 찬밥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특수교육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늘 입에 달고 살아간다. 마뜩찮은 표현이지만 그것 말고 달리 표현 할 만 한 말이 언뜻 떠오르지 않아 사용하던 것이니 그저 사용을 하고는 있다.

장애라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해서 특수교육이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일반학생들에 비해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어 특수교육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의미이건 간에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울타리 안에 가둔다는 생각이 들어 썩 내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굳이 사용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떤 의미로 특수교육이라고 하든 특별하게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은 분명하다. 그런데 정작 교육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 특별한 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대충 얼버무려 정책이라고 내놓곤 하는데 마음 상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누가 왜 특수교육이라 이야기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적인 교육의 범주 안에서 별도로 다루어야 한다는 뜻은 누구나 이해를 하고 있다는 말인데 정작 현장에서는 이 말이 마치 선심을 쓰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불쌍하고, 측은하고, 가여운 아이를 위해 학교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들을 한다.

속이 터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국제중학교를 신설하니, 영어 몰입교육을 실시하니, 방과 후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니 하면서 장애를 가진 학생을 위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 말이 없다. 새로운 법이 시행되고 부모들은 가슴에 훈장을 달은 양 어깨 좀 펴고 학교에 가려하지만 법은 이미 현장에서 외면당하고 있고, 교육청은 노력은 하고 있으나 현실이 그러하니 이해를 해 달라고 오히려 부모들에게 사정을 하고 있는 실정이니 특수교육이 가야 할 길이 순탄하지가 않다.

자갈길에 흙먼지 펄펄 날리더라도 제대로만 간다면 뭐 할 말이 있겠는가? 속이 터지고 답답함이 더해가는 이유는 뒷걸음질 하는 교육행정 때문이다. 교육이 획일적으로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장애의 유형에 맞게, 혹은 장애의 정도에 맞게 학습이 진행되지 못하고 우리 안에 가두고 사육하듯이 높고 낮음도 없고, 정도의 깊이도 없이 오직 한 길로만 간다. 말은 번지르르하니 통합교육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 정작 완전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만들어야 할 인프라는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일관한다.

통합이 왜 필요하고, 직업교육은 왜 필요하고, 개별화교육이 왜 필요한지 개념을 먼저 잡는 것이 아니라 무얼 하나 하려해도 예산을 먼저 생각하고 그 틀에 끼워 맞추다보니 교육환경 개선이나, 교육의 질적인 부분이 담보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끌려 다니다 판난다.

다시 길거리로 나서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안심하지 못하는 이유는 교육청에서, 국가에서 법을 만들어 놓고서는 예산문제를 들먹이면서 지킬 수 없다는 말을 너무도 뻔뻔하게 하고 있어 그렇다.

법치를 말하고, 법의 원칙을 말하고, 법질서 확립을 말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그렇게 말을 해 놓고는 자신들이 법을 위반하려 한다. 이처럼 모순된 행동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한다면 누가 ‘그러마’하고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법은 모두가 지켜야 하는 것이다. 권력을 가졌다고 비켜가고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죽기 살기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나와 있는 조항들을 국가가 나서서 실천적으로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주장이다. 그런 후에 법을 지켜야 질서가 바로 선다고 말을 해야 할 것이다.

1963년 서울 생. 지적장애와 간질의 복합장애 1급의 아이 부모. 11살이면서 2살의 정신세계를 가진 녀석과 토닥거리며 살고 있고, 현재 함께 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내온 것이 무지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라는 것이 일반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즈음에 환상이란 것을 알게 돼 지금은 배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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