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지난 5월 이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와 겨우 손에 쥔 땀의 산물이다. 그것을 정부와 교육부처에서 난도질을 해 규제를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법이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다시 한참을 뒤로 간 셈이다.

그래도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라 꾹 눌러 참고 이거라도 잘 시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현실은 냉랭하기만 하다. 언제 무슨 법이 시행이 되는지 관심도 없는 행정 당국과 학교현장. 그리고 법이 만들어 졌으니 이제 끝이라 여기는지 마음 놓고 관심을 끊는 부모들. 이 법이 학교현장을 바꿀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당장 학교에 찾아가 법문을 전달하면서 필요한 것이 많으니 순서를 정해 만들어 가자고 말을 하자 난색을 표하기만 한다. 교육청은 거창한 계획을 발표하고서는 실현 가능한 것을 골라 당장 실천해 가자니 멈칫거리며 난감해 한다. 법으로 정해진 것들은 의무조항이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니 안심하라는 국회의원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가 끄덕여 지는 것이 아니라 외로 꼬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대면 한정 없으니 보완을 해 나가는데 해당부처의 지침정도면 될 것이란 말을 들으면서 그것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란 생각을 가지는 것은 너무 소극적일까?

깃발은 나부끼는데 누구도 그 깃발을 움켜 잡으려들지 않는다. 바람만 요란하다. 특수교육지원센터의 운영목적에 가족지원과 부모교육이 들어 있지만 당사자 단체에서 부모교육을 위해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말에는 난색을 표하는 교육청 담당자와 학교 관계자들을 보면서 원론적인 이야기를 수도 없이 되풀이 하면서 목만 아프다는 생각이 드는 현실에서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제도인지 지원의 방식도 없고, 운영의 방식도 없이 그저 간판만 요란하게 흔들거리는 특수교육지원센터를 보면서 궁금증은 더해간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 법을 만들었는가? 그 필요성이 다 사라지고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알아서 하라는 것인지 모를 이 용감한 외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감시하고, 주장하고, 요구하고, 관철시켜가면서 법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법이다. 당장 내가 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법이 아니다. 아이들이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한 가지를 해 놓은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 나갈 일이 산더미로 널려 있다.

특수교육법과 장차법이 아무리 허술하고 마음에 안 들어도 그것만 잘 활용한다면 현장을 바꿀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어디를 어떻게 바꿔 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그리고 어떻게 실천해 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장애인교육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 교육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특수교육법을 다른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부모들 스스로 고난의 시간을 보내면서 일구어 놓은 결과물이 아닌가.

씨앗을 뿌렸으면 열매를 맺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씨앗을 뿌리기 위해 땅을 갈아엎은 것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좀 더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성과 땀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하다.

1963년 서울 생. 지적장애와 간질의 복합장애 1급의 아이 부모. 11살이면서 2살의 정신세계를 가진 녀석과 토닥거리며 살고 있고, 현재 함께 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내온 것이 무지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라는 것이 일반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즈음에 환상이란 것을 알게 돼 지금은 배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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