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하게 책을 보는 시늉을 한다. 세상의 것들과 담 쌓은 녀석이 '척'은 무척 잘한다. 하도 소리를 질러 얼굴에 핏줄이 다 터졌다. ⓒ최석윤

힘든 걸음을 옮긴다. 아침에 경기를 몰아서 하는 녀석은 학교생활이 엉망일 것이 눈에 선하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침을 주르르 흘리는 녀석을 손 꼭 잡고서 집을 나선다. 마음에서는 그저 집에 틀어박혀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삐죽삐죽 머리를 내밀며 유혹을 하지만 꾹꾹 눌러 참으며 손을 더 힘 있게 잡는다. 힘들어도 꾸역꾸역 따라오는 녀석을 데리고 가면서 온갖 장난질로 유혹(?)을 하면서 웃음으로 간다.

아이는 고개 숙인 채 질질 끌려가는 것처럼 걸음을 옮기고, 발은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영 힘들어 보이면 그 자리에 둘이 주저앉아 잠깐 쉬기도 하면서 그 짧은 길을 너무도 길게 가고 있다.

아이들은 하나, 둘 교문을 들어서고, 거리는 한산하니 뜸한 차들만 요란을 떠는데, 우리는 여전히 길에서 둘만의 장난으로 시간을 보낸다. 모든 아이들이 지나간 그 길을 큰 아이(?), 작은 아이 둘이서 남아 노래도 부르고, 손뼉도 치면서 한가한 등교를 하고 있다

한빛이의 경기가 정도가 심해지면서 학교에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무엇을 위해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누구를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인가?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을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인지 물어본다.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큰소리로 맞아준다. 다가와 가방을 챙겨주고, 의자를 빼서 앉혀 주고, 손도 잡아주고, 뺨도 만져보고 하면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인사를 한다. 나는 이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탈진한 듯 쓰러진 아이를 끌고, 밀며 학교에 등 떠미는 것은 아닌지…. 내가 그 고통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보면서 아이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말을 하고 있는지….

매일 우리는 전쟁을 치른다. 아이는 경기로 인해 힘들어 하고, 우리는 그 아이를 잡아 세우느라 안간힘을 쓰면서 아침을 맞는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답을 구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해야 할 일이 이것이라 여기는 어른의 생각과 결정으로 아이는 그 결정에 따라 몸을 맡길 뿐이다.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래를 바라볼 수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과연 우리에게 미래가 주어지기나 할지…. 언제나 긍정적으로 여기고 낙관적으로 살아가려 하지만 긍정은 무엇이고, 낙관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으로 전체가 다시 채색되고 있는 중이다.

길거리에서 경기를 한 녀석을 부둥켜안고서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털퍼덕 누워서 지나는 온갖 시선들을 뒤통수에 맞으면서 길고도 짧은 시간을 아이만 바라보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지켜만 봐야 하는 일이 빈번해 지면서 과연 미래라는 것이나 긍정적인 사고의 힘은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겨난다.

햇살을 받으며 따가운 여름 아침햇살을 받으며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녀석을 데리고 길을 나선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늘상 웃음으로 일어서는 녀석을 보면서 슬픔이고 기쁨을 동시에 안고서 아이의 손을 잡고 간다. 온 몸이 멍투성이로, 얼굴은 빤한 틈이 없을 정도로 부딪치며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를 반복하는 녀석을 보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는 이 아이의 웃음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 줄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 줄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단지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조금 나은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하늘을 품고 살아가는 녀석을 모시고 지내자니 이 녀석과 같아지지 않고서는 절대 서로 닮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웃음만큼이나 환한 웃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1963년 서울 생. 지적장애와 간질의 복합장애 1급의 아이 부모. 11살이면서 2살의 정신세계를 가진 녀석과 토닥거리며 살고 있고, 현재 함께 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내온 것이 무지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라는 것이 일반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즈음에 환상이란 것을 알게 돼 지금은 배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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