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참댁에서 내려다본 악양면 평사리 평야-머얼리 섬진강이 보인다. ⓒ정재은

한눈으로 보아도 뒤로는 지리산의 능선으로 둘러싸여 있고 섬진강을 젓줄삼아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지리산 남쪽 능선의 끝 성제봉 아래 넓은 평야지대가 곧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인데 미점리 아미산 아래에서 동정호까지의 넓은 들판, 만석지기 부자를 서넛은 낼만 한 악양 '무딤이들'이 그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가 위치한 지명인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중국에 있는 지명을 따와서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한다.

최참판댁 전경. ⓒ정재은

이곳에 가기 전에는 우선 소설 토지를 읽고 가야 그 감동과 감회가 새로울 줄 안다.

소설 토지는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최씨 집안의 안주인 윤씨 부인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동학접주인 김귀주에게 겁탈을 당하여 김환(구천이)을 잉태한다. 그 후 구천이는 최씨 가문을 잠입하여 하인이 되지만 최치수의 아내인 별당아씨와 사랑에 빠져 둘이 함께 지리산으로 도망친다. 최씨 가문의 재산을 탐낸 귀녀와 몰락한 양반 김평산의 음모로 최치수는 교살당하고 음모를 꾸민 두 사람은 윤씨 부인에게 발각되어 사형 당한다.

최씨 가문의 먼 외척인 조준구는 윤씨 부인이 콜레라로 죽자 최씨 집안의 재산을 강탈하려 최치수의 외동딸 서희를 몰아내고 마을사람들을 분열시키면서 일본의 힘을 빌어 모든 재산을 손에 넣게 된다. 또한 서희와 자신의 아들 병수를 결혼시키려는 음모를 꾸미자 서희는 충직한 하인 길상과 하께 용정으로 탈출 한다. 서희는 윤씨 부인이 몰래 남겨준 금은괴를 자본으로 장사에 성공하여 거부(巨富)가 되고 길상과 혼인한다. 다시 평사리로 돌아와 모든 재산을 되찾고 광복을 맞이한다

이렇듯 국권상실, 봉건. 가부장제와 신분질서 붕괴 등 19010년대 한국사회의 변화를 평산리 최씨네의 집안을 배경으로 펼쳐 나가는 박경리 선생의 대서사시이다.

서희아씨 별당채 안방 . ⓒ정재은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속의 최참판 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었고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의 모습까지 차곡차곡 재현이 되어 조선후기 우리민족의 생활모습을 담은 초가집, 유물 등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특히 최참판 댁은 토지에 나오는 주인공인 서희가 어릴 적 살던 집으로 소설에 나오는 모양과 유사하게 지어 놓은 주택으로 하동군의 문화상품이다.

드라마 토지 촬영세트장. ⓒ정재은

올해 박경리 선생이 돌아가시면서 그 유명세를 타기도 하여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단순히 소설, 드라마의 배경이자 촬영지라고 하여 느껴지는 흥미위주의 볼거리 장소로는 느껴지지 않았고 서희라는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이 비장하게 느껴졌던, 한민족의 서러움과 한이 몸부림 쳤던 소중한 여행이었다.

촬영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장애인접근불가라고 써 있는 듯하다. ⓒ정재은

* 가는 길 : 대진 고속도로를 타고 하동 IC로 나가 구례, 순천방향으로 계속하여 직진하면 가는 길에 최참판댁 가는 이정표가 연실 우리를 안내한다. 남원에서 구례방향으로 가다가 19번 국도를 타고 화개 삼거리에서 섬진강변을 따라 쌍계사를 지나면 평사리가 나온다.

주차장 입구에 위치한 편의시설을 갖춘 화장실. ⓒ정재은

* 편의시설: 주차장 입구 관광 안내지 앞에 장애인용 주차장과 편의시설을 갖춘 화장실이 있을 뿐이다. 촬영장내와 최참판 댁에서는 편의시설이 없어 장애인의 접근이 어렵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지사에 재직 중이다. 틈틈이 다녀오는 여행을 통해 공단 월간지인 장애인과 일터에 ‘함께 떠나는 여행’ 코너를 7년여 동안 연재해 왔다. 여행은 그 자체를 즐기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심리활동이다. 여행을 통해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기쁨을 갖는다. 특히 자연은 심미적(審美的) 효과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심미적(心美的) 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라는 것을 잠시 접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자연의 많은 혜택과 우리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